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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64> 정유년(1597년) 9월 19일~10월 12일- 승전했지만 막내아들 면 잃어
- 당시 몸과 마음 고통스러움 담겨
- 작전상 서해 안편도로 옮겼다가
- 고하도 다시 와 수군 재건 박차
*정유년 9월 4일부터 10월 8일까지는 일기가 두 개로 중복되는바,뒤에 적은 일기를 앞의 것과 대조해 보기 편하도록 지면 기사에서는 밑줄을 그어 표시하고,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첫머리에 # 표시를 별도로 한다.
9월19일[10월29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칠산도(七山島)를 건너는데,바람은 약하고 하늘은 맑아서 배를 몰기에 매우 좋았다.법성포 선창에 이르니,적들은 벌써 침범하여 간혹 인가에 불을 지르기도 했었다.해 질 무렵 홍룡곶(영광군 홍농읍의 바닷가)으로 돌아가 바다 가운데서 잤다.
#날이 맑았다.일찍이 떠나서 바람이 곱고 물결이 순하기 때문에 순조롭게 칠산(七山) 바다를 건넜다.저녁나절 법성포(法聖浦)에 이른즉 흉악한 적이 육지로 해서 들어와서 인가의 곳곳에 불을 질렀다.해 질 무렵에 홍농(弘農) 앞에다가 배를 대고 잤다.
9월20일[10월30일]
맑고 바람도 순조로왔다.배를 몰아 고참도(古參島,부안 위도)에 가니 피란민들이 무수히 배를 정박하고 있었다.이광보도 와서 만나고 이지화 부자도 왔다.
#날이 맑았다.새벽에 배를 띄워 바로 위도(猬島)에 이르니 피란 배가 많이 닿고 있었다.황득중(黃得中)과 종 금이(金伊)를 보내서 종 윤금을 찾아보라 하였더니 과연 위도 밖에 있었기에 결박을 지워 배 가운데 실었다.이광축,프라 그마 틱 슬롯 무료체험광보가 보러 오고 이지화의 부자도 왔다.날이 저물었기에 머물러 잤다.
9월21일[10월31일] 맑음.
새벽에 출발하여 고군산도(古群山島)에 가니 호남 순찰사는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서 배를 타고 옥구(沃溝)로 갔다고 하였다.
#날이 맑았다.일찍이 떠나서 고군산도(古群山島)에 이르렀다.전라도 순찰사는 내가 왔다는 말을 듣더니 배를 타고 급히 옥구(沃溝)로 갔다고 한다.늦게 광풍이 크게 불었다.
9월22일[11월1일] 맑음.
#날이 맑으나 북풍이 크게 불었다.그대로 거기에 머물렀다.나주목사 배응경(裵應褧)과 무장 원 이람(李覽)이 보러 왔다.
9월23일[11월2일] 맑음.
#날이 맑았다.승전에 대한 장계 초안을 잡았다.정희열이 보러 왔다.
9월24일[11월3일] 맑음.
#날이 맑았다.몸이 불편해 신음하였다.김홍원이 보러 왔다.
9월25일[11월4일] 맑음.
#날이 맑았다.이날 밤 몸이 몹시 좋지 못했다.식은땀이 전신을 적셨다.
9월26일[11월5일] 맑음.
이날 밤에는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날이 맑았다.몸이 좋지 않아서 종일 나가지 않았다.
9월27일[11월6일] 맑음.
송한(宋漢)이 승첩장계를 가지고 배를 타고 올라갔다.정제(鄭霽)도 충청수사(권준)에게 전령(傳令)을 가지고 갔다.몸이 매우 불편해서 밤새도록 고통스러웠다.
#날이 맑았다.송한(宋漢),김국(金國),프라 그마 틱 슬롯 무료체험배세춘(裵世春) 등이 승전에 대한 장계를 가지고 뱃길로 올라갔다.정제(鄭霽)도 부찰사(副察使)에게 보내는 공문을 가지고 충청수사 처소로 떠났다.
9월28일[11월7일] 맑음.
송한과 정제가 바람에 막혀 되돌아왔다.
#날이 맑았다.송한(宋漢)과 정제(鄭霽)가 바람에 막히어 돌아왔다.
9월29일[11월8일] 맑음
송한 등이 바람이 순해지자 다시 떠나갔다.
#날이 맑았다.장계와 정판관(정제)이 다시 떠나갔다.
▶정유년(1597년) 10월
인간 이순신에게 다가온 명량대첩의 후유증은 컸다.미래를 맡길 만하다고 여겨 온 막내아들 면을 잃은 것이다.이 일을 기록하는 그의 일기는 피로 쓰여진 듯하다.서해를 통해 내려와 우수영 쪽 안편도로 진을 옮겨간다.거기서 사태를 수습한 뒤 다시 고하도로 옮겨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한다.해로가 뚫려 당황한 명은 그제서야 황급히 수군을 편성해 진린으로 하여금 조선의 바다로 가게 한다.
10월1일[11월9일] 맑음.
#날이 맑았다.아들 회(薈)를 보내서 저의 모친도 보고 각 집안 여러 사람의 생사도 알아 오게 하였다.심회가 극히 산란하여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병조(兵曹)의 역자(驛子)가 서류를 가지고 와서 아산에 있는 집이 적에게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것이 없다고 전하였다.
10월2일[11월10일] 맑음.
아들 회가 가정 식구들의 생사를 알아볼 일로 올라갔다.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날이 맑았다.아들 회가 배를 타고 올라갔는데 잘 갔는지 모르겠다.심회를 어찌 다 말하랴.
10월3일[11월11일] 맑음.
새벽에 배를 출발하여 도로 변산(邊山)을 거쳐 곧장 법성포로 내려가니,바람이 매우 부드럽고 따뜻하기가 봄날과 같았다.저물어서 법성창(法聖倉) 앞으로 갔다.
#날이 맑았다.새벽에 배를 띄워서 법성포(法聖浦)로 돌아왔다.
10월4일[11월12일] 맑음.
#날이 맑았다.그대로 머물렀다.임선,임박이 포로 되었다가 적에게 빌고 임치로 돌아와서 편지를 보냈다.
10월5일[11월13일] 맑음.
#날이 맑았다.그대로 머물면서 마을 집으로 내려가서 잤다.
10월6일[11월14일]
흐리다가 간혹 눈비가 내리기도 했다.
#날이 흐리고 간간이 눈과 비가 내렸다.
10월7일[11월15일]
구름이 걷히지 않고 비가 오다 개다 했다.
#바람이 순치 못 하고 날도 혹 개였다 혹 비오다 하였다.전라도에는 어디나 적의 자취가 없다는 것을 들었다.
10월8일[11월16일] 맑음.
바람이 순해지는 것 같았다.새벽에…
(이하 글자 빠졌음)
#날이 맑고 바람도 순하였다.배를 띄워서 어외도(於外島)로 와서 잤다.
10월9일[11월17일] 맑음.
일찍이 떠나서 우수영(右水營)에 이른즉 성 안팎에 인가라고는 하나도 없고 또 사람의 자취도 없어 보기에 참혹하였다.저녁에 들으니 해남에는 흉악한 적이 아직도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날이 막 어두워지려고 할 때 김종려(金宗麗),정조(鄭詔),백진남(白振南) 등이 보러 왔다.
10월10일[11월18일]
새벽 2시경 비가 뿌리고 북풍이 크게 불어서 배를 띄우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렀다.밤 10시께 중군장 김응함이 와서 보고하기를 “해남에 있는 적들이 곧 퇴각하려는 것 같다”고 하였다.이희급(李希伋)의 부친이 적에게 포로 되었다가 빌고서 풀려나왔다고 한다.몸이 불편해서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밤을 새웠다.우우후 이정충(李廷忠)이 배로 왔으나 바깥섬으로 도망가 있었기 때문에 만나지 않았다.
10월11일[11월19일] 맑음.
새벽 2시경에는 바람도 자는 것 같았다.첫 나팔에 닻을 올려서 바다 가운데로 나왔다.정찰병 이순(李順),박담동(朴淡同),박수환(朴守還),프라 그마 틱 슬롯 무료체험태귀생(太貴生) 등을 해남으로 보냈다.해남에는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하니 필시 적의 무리가 달아나면서 불을 지른 것이리라.낮에 발음(發音) 안편도(安便島,프라 그마 틱 슬롯 무료체험신안군의 안좌도로 추정)에 이르렀는데 바람도 좋고 날도 화창하였다.배를 내려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 위에 올라가서 배를 감추어 둘 만한 곳을 살펴보았다.
동쪽으로는 앞에 섬이 있어서 멀리 바라보이지 않으나 북쪽으로는 나주(羅州)와 영암(靈岩)의 월출산(月出山)까지 터졌고 서쪽으로는 비금도(飛禽島)까지 통하여 안계(眼界)가 광활하였다.조금 있자니까 중군장과 우치적이 올라오고 조효남(趙孝南),안위(安衛),우수(禹壽)가 계속해서 왔다.날이 저문 후 산에서 내려와 언덕에 앉았으니 조계종(趙繼宗)이 와서 왜적의 정세를 보고하고 또 “왜적들이 우리 수군을 몹시 겁낸다”고 말하였다.이희급의 부친이 와서 포로가 된 경과를 이야기하였다.마음이 매우 아팠다.
저녁 날씨가 따듯하기 마치 봄과 같다.아지랑이가 하늘에서 아른거리고 비가 오려는 조짐도 보였다.초저녁에 달빛은 흰 비단폭 같은데 혼자 봉창에 앉았으니 생각이 천갈래만갈래였다.밤이 들자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자정께에는 비가 내렸다.이날 우수사(김억추)가 군량선(軍糧船)에 있는 사람을 붙들어다가 무릎을 몹시 때렸다고 한다.해괴하다.
10월12일[11월20일]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