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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가 펴낸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 기증한 홍영자 씨 인터뷰
남편 故 이순원 교수가 선물로 받아…"우리 땅에서 제자리 찾았으면"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기증식 모습 가장 왼쪽이 홍영자 씨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기증식 모습
가장 왼쪽이 홍영자 씨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원하는 건 없습니다.중국에서 50년,미국에서 50년,이제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하길 바랍니다."

지난 5월 2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리하이 벨리 한인교회.

백발이 성성한 한 여성이 나지막이 말했다.그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책 표지에 적힌 '사료집'(史料集) 글자를 한참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 사회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韓日關係史料集) -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책을 펴낸 지 약 105년 만에 우리 땅을 밟는 셈이다.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기증식 모습 왼쪽에서 첫 번째부터 조무제 목사,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네 번째가 홍영자 씨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기증식 모습
왼쪽에서 첫 번째부터 조무제 목사,류슬아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네 번째가 홍영자 씨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자료를 기증한 홍영자(83) 씨는 지난 13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귀한 책이 제 자리를 찾아 고국 품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총 4권으로 된 사료집은 집에서 '귀한 책','중요한 책'으로 불렸다.

뮬런버그대에서 동아시아 및 소비에트 정치학 및 역사 담당 교수를 지낸 남편인 고(故) 이순원 박사가 1970년대 초 중국에서 선물 받은 뒤,고이 간직해온 책이다.

홍씨는 "남편이 학생들과 중국을 방문했을 때 남대문 성도교회 소속 지인의 부탁으로 성경책 10여 권을 옌볜(延邊) 지역 동포들에게 전달한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중국 상황을 고려하면 성경을 들고 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한일관계사료집 -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한일관계사료집 -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홍씨는 "(미국) 시민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며 "남편이 도착해 성경을 꺼내 들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기뻐하며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귀한 것을 주는데 보답할 게 없다'며 이 책과 함께 사람들이 만든 도자기,공예품 등을 선물로 줬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교수로 일하면서 책이 얼마나 많았겠어요?그런데도 이 책만큼은 '귀한 책'이라고 꼭 잘 보관해야 한다고 했죠.심부름밖에 한 게 없는데 귀한 선물을 받았다고 늘 그랬죠."

'한일관계사료집'은 현재 완전한 형태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광수의 서언이 실린 제1권 첫장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이광수의 서언이 실린 제1권 첫장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임시정부가 책을 펴냈을 당시 총 100질이 제작됐다고 알려져 있으나,현재 완질로 전하는 것은 독립기념관 소장본과 미국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 정도다.

사료집은 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연대별로 일본의 침략성을 실증하고,식민 탄압의 잔혹성과 3.1운동의 원인 및 전개 과정을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는 '무정',류슬아'방황' 등을 저술한 소설가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가 남긴 글도 있다.이광수는 1919년 7월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회의 주임을 맡은 이력이 있다.

지난해 8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홍씨는 이 책만큼은 그대로 보관해왔다.

제4권 독립운동일람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제4권 독립운동일람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던 중 언론인 출신인 조무제 목사를 통해 '한일관계사료집'의 역사적 가치를 알게 됐고,어떤 조건도 없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무제 목사는 "사료집과 관련한 여러 정보를 모으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는데 정말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조 목사는 "당대 역사와 상황을 볼 수 있는 '한일관계사료집'이 단순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씨는 "남편은 그 누구보다 이 책의 가치와 의미가 널리 알려지길 원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우리 땅에서 제자리를 찾고 사람들과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미국 현지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오랫동안 소중히 보관해 온 자료를 많은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도록 한 기증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기증식 모습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기증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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