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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희생자 유족부녀회,7일 아스타호텔서 창립15주년기념 포럼 열어
올해로 제주4.3이 발발한 지 76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동안 제주4.3 희생자들의 이야기는 여러 증언과 기록으로 전해져왔다.그러나 이는 대부분 남성의 시각에서 쓰여진 이야기들이다.
제주4.3희생자 유족부녀회원 100인이 여성의 시각에서 '4.3이후 제주 여성의 삶과 공동체 문화'를 이야기하는 장이 열렸다.제주4.3희생자 유족부녀회는 창립15주년기념하여, 7일 제주 아스타호텔에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제주여성들의 4.3 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이번 이야기 마당은 '제주4.3희생자 유족부녀회원 100인이 골암수다(말합니다) – 4.3이후 제주 여성의 삶과 공동체 문화'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포럼에 참가한 제주4.3희생자 유족부녀 회원들이 10개 조로 나누어 발표를 진행했다.
4.3이후 제주 여성의 삶과 공동체 문화
각 조별 발표에 앞서,김창후 제주4.3연구소 소장이 주제발표를 맡아 '4.3이후 제주 여성의 삶과 공동체 문화'에 대하여 설명했다.김 소장은 4.3이후 여성들의 삶에 대해 ▲가족제도와 가족관계법,여성의 지위,▲가족 부양,▲교육기회 배제 등으로 나눠 이야기했다.
첫 번째 사례로 '성산읍 신산리 82세 오 모 할머니'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어머니영 농사허멍(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지. 우리 어머니 잠대(쟁기) 지고 밭만 안 갈아봤주(안 갈아 봤지),달링턴 fc 한댄 허는 일은 다 허고(한다고 하는 일은 다 했고). 연날은(옛날에는) 여기 보리가 잘 안 되지. 저 한림 소방(근처), 소섬 소방(우도 근처) 보리 동냥(구걸) 가고. 한림꼬장(한림까지) 보리 허라고, 놈의(남의) 보리 강(가서) 비어(베어) 주면은 쪼끔썩(조금씩) 주잖아. 경허믄(그러면) 그걸로 소섬 강도 경해영 그디강 살멍(우도에도 가서 그렇게 하면서 거기 가서 살면서). 난 열 살이라도 할머니영 집이서 살림을 살아서(나는 열 살이었지만 할머니랑 집에서 살림을 살았지). 우리 동생들은 학교만 졸업허민(졸업하면) 몬딱(모두) 놈이(남의) 애기 돌래(봐주러) 가는 사람, 놈이 집이(남의 집에) 식모 가는 사람, 몬딱(모두) 학교만 졸업허민(졸업하면) 다 가는디."
두 번째 사례는 '표선면 토산리 86세 강 모 할머니'의 사례로 여성의 교육기회 배제에 대한 사례다.
"학교랑 마랑(학교는 커녕) 그때 강습소 댕기는(다니는) 사람들은 이서서(있었어).헌디(그런데),우리 친정아버진 아들도 못 시키는데 똘이(딸이),지집년이(계집년이) 뭐 가느냐 경허멍(뭐 학교 가느냐고 하면서) 강습소도 못 댕겨서.원 우리 강단 센 우리 아버진 똘이옌 허멍(딸이라고 하면서) 원(전혀) 어디 못 가게 허더라고.그것이 나는 너무 얼큰헌거지(억울한거지).오빠는 호썰 시켰주(조금 공부 시켰지).초등학교까지."
김창후 제주4.3연구소 소장의 주제발표에 이어 각 조별 이야기 발표회가 이어졌다.먼저 4조의 발표가 있었는데,달링턴 fc강인화 4·3 여성 유족의 사례 발표는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죽창을 피해 몸 숨긴 어머니가 날 낳고 길러"
1950년 제주시 한경면에서 태어난 강인화씨는 4·3 당시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4·3으로 행방불명된 아버지에 대해 강씨는 "폭도들에게 가족을 잃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 아버지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라며 "당시 결혼한 지 2~3개월 밖에 안 됐을 때 벌어진 일로 아직도 아버지의 시신을 못 찾았습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강씨의 모친은 올해 97세인 4·3 고령 유족이다.4·3으로 남편을 잃고도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불안과 공포를 견뎌야 했던 모친의 경험을 강씨가 이날 대신 증언했다.강씨는 "보초 군인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서 죽창으로 문과 벽을 쿡쿡 찌르며 '아무도 없네' 하며 나가는 모습을 어머니께서 창문 뒤에 숨죽이며 바라보고 공포에 질려서 잠도 못잤다고 합니다.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라고 하며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올해로 일흔 넷인 강인화씨의 소원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불러보는 것이다.아버지의 부재 속 어린 시절을 고난과 역경의 시절로 기억하는 강씨는 "우리집 일손이 모자랄 때면 주위에서 도움을 주던 제주의 수눌음 정신이 없었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조심스럽게 털어놓던 가족 이야기를 마치며 강씨는 "우리 후손들이 4·3이라는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잊히지는 않을지 두렵다"고 했다.강씨는 현재 제주4·3유족부녀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4·3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이날 포럼에는 강인화씨 뿐만 아니라 100명에 달하는 제주4·3 여성 유족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나누고 서로 공감했다.가장의 부재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 그당시 제주 여성들은 학교 대신 밭으로,바다로,일터로 나가야 했다.죽어간 가족들에 대해 억울하다는 말도 못한 채 숨죽였던 지난 날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날 포럼에서 강능옥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서 "교육받을 기회와 재산 분배 등의 권리에서도 여성은 배제돼왔다.여성들은 제주4·3역사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강 부녀회장은 "4·3 이후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서 우리 여성들이 겪은 고통과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라며 앞으로 남은 과제를 짚었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 유족회 회장은 축사에서 "제주4·3 희생자 여성 유족분들은 4.3의 가슴 시린 상흔 속에서도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서로 위로하고 보듬으면서 오랜 노력 끝에 가정과 공동체에 희망의 꽃을 피웠다"며 "이 모진 역경 속에서도 피어낸 삶의 역사는 제주공동체에 자랑스럽고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도 축사를 통해 "4·3 당시 제주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폭력 피해도 묵인과 침묵 속에서 아직까지 조명되지 못한 채 묻혀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4·3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는 전체 희생자의 20%라는 죽음의 숫자만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대신하여 조상범 제주도 자치행정국장이,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을 대신해서 양병우 제주도의회 부의장이,김광수 제주도 교육감을 대신해서 오정자 제주도교육청 정책기획실장이 각각 축사를 대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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