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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일한 지 한 달도 안 돼"…황망한 '코리안 드림'에 외국인 유족들 오열
아리셀 공장,참사 이틀 전에도 화재…"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 소방 당국 경고도
"엄마,엄마 하던 소리가 들려요.제발 내 딸 좀 돌려주세요."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아리셀 공장 참사' 발생 2일차인 지난 26일 오전.화성시청 인근 모두누림센터 2층 유가족 지원실 안에서 곡소리가 새어나왔다.이번 참사로 숨진 중국인 A씨(37)의 어머니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잠시 복도로 나온 그는 서툰 한국말로 "참 착한 딸이었어요.중국에서 15살짜리 손녀딸이랑 사위도 기다리고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시흥시 정왕동에서 홀로 살던 A씨는 아리셀 공장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울산에 떨어져 지내던 A씨 어머니는 참사 소식을 듣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화성에 도착한 것이다.
"한국말 몰라서 피해 더 컸다는 말에 가슴 아파"
사망자 신원 확인이 아직 진행 중이던 지난 26일,센터에 마련된 유족 지원실은 적막했다. 한 중국인 남성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우리 조카가 출입구 쪽에 있었더라면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퇴근시간인데도 애가 왜 전화가 안 올까"라면서 화재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다 끝내 흐느꼈다.28세 딸을 잃은 한 중국인 어머니도 홀로 야외 쉼터에 앉아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기력을 소진한 그의 옆으로 다른 유가족이 다가와 일으켜 세우고는 조용히 센터를 떠났다.이들을 안내한 시청 관계자는 "유족들을 위한 숙소가 마련돼 있어 시신의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거기로 이동하신 분도 있다"며 "(희생자와의) DNA 대조를 위해 부리나케 한국에 입국한 유가족도 있다"고 말했다.
6월24일 오전 10시31분쯤 화성 서신면의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31명의 사상자가 나왔다.사망자 23명은 대부분 그날그날 인력 공급 업체가 보내는 일용직 외국인 근로자로 중국인 17명,라오스인 1명,앙코르라구나한국인은 5명이다.성별로는 남자 6명,여자 17명이다. 26일 오후 기준 사망자 절반 이상은 시신 훼손이 심해 신원 확인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이에 유족들은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DNA 감식 결과를 기다려야만 했다.음식도 넘어가지 않았는지 유족 지원실 앞에는 전날 제공된 도시락들이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사고 발생 사흘 만인 지난 27일 오후 5시,사망자 23명의 신원 확인이 모두 완료됐다. 국과수는 시신 부검 결과 이들 모두 질식사했다는 구두소견을 내놨다.
당시 화성시청 1층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는 영정사진이 없는 빈 단상 앞으로 시민과 정치인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화성 시민 정아무개씨(46)는 "남 일 같지 않다.동네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종종 보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26일 오후 3시쯤 분향소를 찾은 이기철 재외동포청장은 "한국말을 몰라서 더 피해가 커졌다는 얘기를 듣고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며 "국내 체류하고 계신 재외 동포분들이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안전교육,앙코르라구나한국어 교육을 더 강화해 이런 피해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언어 장벽 높은데"…외국인 안전교육,'조심합시다' 수준
"안전교육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참사는 막았을 것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당시 상황이 공개된 공장 내부 CCTV 영상을 확인한 후 시사저널에 이렇게 말했다.영상에서는 리튬배터리 1개에 불이 붙고 첫 폭발이 일어난 지 불과 42초 만에 작업장이 암흑으로 뒤덮였다.이 공장에선 주로 일차전지인 리튬배터리를 제조 및 보관해온 것으로 조사됐는데,불이 난 3동에는 완제품 배터리 3만5000여 개가 보관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하성 교수는 "(리튬 화재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소방관이) 곧바로 진화작업을 하는 건 쉽지 않기에 (작업자들이) 즉시 대피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면서 "업체 측이 화재에 대한 형식 수준의 안전교육이 아닌 실습 위주의 훈련을 실시했다면 42초 동안 대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지적했다.
아리셀 측은 '안전교육이 충분했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이주노동자들의 교육 현장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주물·용접 등 위험한 산업은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지만 업체에선 일만 가르치고 안전교육은 대충 넘기는 일이 다반사다.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실장은 "이주노동자들의 안전교육을 동영상으로 대체할 때도 많고,폭발물이나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선 세분화된 교육을 실시해야 하지만 생략될 때가 많다"고 했다.
언어의 장벽이 높아 의사소통도 어려운 실정이다.최정우 실장은 "언어 장벽도 매우 높은데,앙코르라구나안전교육에서는 '안전모 착용' 수준의 중국어·베트남어 등을 제공할 뿐 복잡한 위기 상황에 대한 교육은 대충 넘겨버릴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이주노동자의 모국어로 장기적인 안전교육이 제공돼야 하는데 사실상 아침 조회 때 한국어로 '조심합시다'라는 당부 수준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라며 "업체는 늘 교육을 실시했다고 주장하지만 작업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그걸 '교육'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업체 측의 지나친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발생한 '예고된 참사'라는 비판도 거세다.참사 이틀 전인 6월22일 해당 공장에서는 이미 불량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당시 자체 진화 후 생산을 재개했고, 119 신고도 하지 않았다.이에 앞서 지난 3월과 이달 초 소방 당국이 현장점검을 한 후 업체 측에 화재 발생과 인명 피해 위험이 있다고 잇달아 경고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특히 3월 점검에서는 화재가 발생한 공장 3동이 '다수 인명 피해 발생 우려 지역'으로 지목됐다고 한다.
아리셀이 지난 5년간 고용노동부의 안전 점검도 받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노동부는 최근 5년간 아리셀에 산업안전감독이나 점검을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아리셀,외국인 사망자 전원 '불법 파견' 정황도 속속
이번 참사로 한국 산업의 구조적 문제도 여실히 드러났다.국내 산업계에선 저출산·고령화로 줄어든 내국인 근로자의 빈자리를 값싼 외국인 근로자로 빠르게 대체했지만 이들의 안전은 취약했다.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국인 취업자는 92만3000명(전체 취업자의 3.2%)으로 사상 처음으로 90만 명을 넘어선 데다,상주 외국인은 1년 전보다 약 13만 명 증가해 역대 최대치인 143만 명을 기록했다.그러나 이들은 주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용접 등 위험한 일에 일용직으로 투입되면서 산업재해 사고 사망률도 높았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산재 사고 사망자 중 외국인 근로자는 10.4%(85명)로,사망한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국내 취업한 외국인 비율의 3배 이상인 셈이다.
아리셀 공장을 둘러싼 외국인 근로자 불법 파견 의혹도 불거졌다.합법 체류자인 외국인 사망자 18명은 모두 인력파견 하청업체인 메이셀 소속이다.그러나 현행법상 제조업체는 '출산·질병' 등 결원이 발생한 경우 등을 제외하곤 근로자를 파견받을 수 없다.또 외국인 고용허가 대상 사업장이 아닌 아리셀은 외국인 고용허가 비자를 가진 노동자가 일할 수도 없다.
아리셀 측은 '불법 파견은 없었다'면서도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형태가 파견과 도급 중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파견은 사용업체가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할 수 있는 반면,도급은 사용업체가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하면 불법이다.이에 고용부는 "현재 파견자들이 어떤 형태로 어디 소속으로 근무했는지 파악하고 있다"며 "이후 산업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하청업체 메이셀은 소재지가 사고가 발생한 아리셀 3동으로 업종은 일차전지 제조업이지만,직업소개업 등록이나 근로자파견사업 허가 사실이 없어 이른바 '무허가 파견업체'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메이셀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이에 법규를 피해 외국인 근로자를 값싸게 이용하다 피해를 키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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