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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고난의 세월을 겪어온 한국 조선업이 다시 르네상스를 맞은 것일까.올 들어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빅3’수주가 급증하면서 실적도 연일 우상향곡선을 그린다.다만 한편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웠던 중국 조선업 기술력이 높아진 데다 노조 파업,고질적인 인력 부족 등 악재도 수두룩해 반짝 호황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HD한국조선해양 목표치 120% 달성
최근 한국 조선업계는 그야말로‘질주’를 이어나가는 중이다.강력한 경쟁국인 중국을 제치고 올 들어 처음으로 수주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영국 조선·해운 시장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7월 한국은 96만CGT(표준선 환산톤수·18척) 상당 선박을 수주했다.CGT 기준 수주 점유율은 40%로 세계 1위다.중국은 57만CGT(30척)를 수주해 점유율 24%로 2위에 머물렀다.수주한 선박의 1척당 환산톤수는 한국이 5만3000CGT로 중국(1만9000CGT)보다 2.8배가량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국내 조선사들은 연이어 수주 낭보를 올리고 있다.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유럽 선사로부터 1만55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을 3조6832억원에 수주했다.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62억7000만달러(약 22조4900억원)를 수주해 연간 목표 135억달러(약 18조6000억원)의 120%를 달성했다.2021년부터 4년 연속 수주 목표를 조기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화오션도 지난 7월 초 중동 선주 2곳에서 각각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4척,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4척을 수주했다.수주 금액은 총 2조1577억원이다.한화오션은 이번 수주를 포함해 올 상반기에만 53억달러(약 7조3000억원)를 수주해 지난해 실적(약 32억달러)을 이미 넘어섰다.삼성중공업 역시 최근 중동 선주로부터 LNG 운반선 4척을 1조4381억원에 수주하면서 22척,49억달러를 따내 올해 수주 목표(97억달러)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다.
때마침 선가(船價)가 우상향곡선을 그리는 점도 호재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8월 5일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187.98로 전년 동기 대비 9% 상승했다.2020년 11월부터 44개월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글로벌 조선업계 최대 호황기였던 2008년 9월(191.6)에 근접한 상태다.신조선가지수는 새로 발주되는 선박 가격을 지수화한 지표다.지수가 오르면 선박 가격도 오른다는 의미라 조선사들이 향후 호실적을 거둘 수 있는 신호로 여겨진다.
변용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대규모 컨테이너선 발주로 수주잔고가 급증하면서 업황 부진 우려가 컸는데,올 들어서도 예상을 깨고 굵직한 발주가 이어지는 모습이다.향후 국내 조선사 수주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위기가 좋다 보니 적자에 시달렸던 조선사 실적도 뚜렷한 회복세다.
HD한국조선해양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28.7% 증가한 3764억원으로 5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매출도 같은 기간 21.3% 증가한 6조6155억원을 기록했다.삼성중공업 역시 올 1분기 779억원,2분기 130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는 분위기다.
두 회사의 연간 전망 역시 밝다.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올해 대폭 개선된 영업이익을 올릴 것이라는 예측이 주류다.올해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1조3389억원,4619억원의 연간 영업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전년 대비 각각 374%,98%씩 증가한다는 예상이다.
오랜 기간 적자를 이어온 한화오션은 올 1분기 529억원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2분기에는 96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내심 연간 흑자도 기대하는 모습이다.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화오션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2872억원으로 2021년 이후 첫 연간 흑자를 달성할 전망이다.방만 경영,저가 수주 여파로 2021년 당시 1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내며 생사 기로에 놓였지만,분위기가 180도 바뀐 셈이다.한승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하반기부터 건조선가가 상승세를 보이는 데다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로 친환경 선박 발주 수요가 늘면서 빅3 조선사 모두 안정적인 실적 개선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환경·AI 기술로 첨단 조선소‘성큼’
K조선이 세계 시장에서 약진하는 비결은 뭘까.크게 세 가지다.
첫째,LNG선으로 대표되는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기술력과 건조 능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마침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선박 신조 발주 수요가 증가해 국내 조선 3사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액화 상태 암모니아나 LNG를 안전하게 운반하는 기술이 적용된 이들 선박은 비슷한 크기의 일반 컨테이너선보다 보통 2배 더 비싸다.중국은 꾸준히 LNG 운반선 시장을 공략해오고 있지만,인도된 선박에서 고장이 나는 등 문제가 빈번해 선주들이 점차 주문을 꺼리고 있다는 후문이다.2016년 중국 국영 조선소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글래드스톤호가 건조 2년 만에 해상에서 고장 나 멈췄던 것이 단적인 예다.
반면 국내 조선 3사는 고가의 에너지 운반선 건조 기술력에서 중국 조선사보다 앞서 있다.특히 LNG나 암모니아를 싣는‘화물창’제작 역량에서 우리 조선사의 활약이 주목받는다.화물창은 LNG 운반선에 설치돼 있는 LNG 저장고다.LNG를 운반할 땐 이 저장고 역할이 중요하다.LNG가 -162℃ 이하 극저온을 유지하면서 파도,해풍 등 외부 충격도 버티려면 세밀하게 설계된 화물창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혹여 극저온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할 경우 선박 운항 중 LNG가 기화돼 대형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조선사가 만든 LNG 운반선은 대부분 화물창과 선박이 일체화된 사각 형태‘멤브레인형 화물창’을 쓴다.이 화물창과 선박을 일체화하는 과정에서 고도의 용접 기술이 필요한데 국내 조선사들이 이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졌다는 평가다.일본을 비롯한 경쟁국이 주력으로 제작하는 화물창보다 적재 용량이 30~40%가량 많은 것도 장점이다.
기술력뿐 아니라 LNG 운반선 건조 역량도 돋보인다.국내 조선 3사는 연간 50척가량을 건조할 수 있다.반면 중국 국영기업 후동중화조선이 한 해 동안 만들 수 있는 LNG 운반선이 5척 남짓이라 추가 수주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
또 LNG 추진선은 연료 공급 시스템이 중요하다.이 부문에서도 비교우위를 갖췄다는 평가다.LNG 추진 장치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LNG를 일정한 온도와 압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이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국내 조선 3사는 독자적인 LNG 연료 공급 시스템(현대중공업 Hi-gas·삼성중공업 FuGas·한화오션 HiVar)을 갖춰 세계 시장에서 호평받는다.결국 아직까지는 LNG 운반선 기술력에서도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다.
암모니아 추진선의 경우 탄소 배출이나 폭발 위험은 전혀 없지만 암모니아의 독성과 물체를 부식시키는 성질을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선종이다.중국 업계도 LNG 메탄올 등 다른 선종에서 매섭게 추격하지만,선사들 입장에서는 아직 암모니아 운반선(VLAC)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태도로 한국 조선업계를 신뢰하는 분위기다.여기에 암모니아 수요가 증대되면서 관련 선박 발주량도 늘 전망이라 국내 조선 3사가‘블루오션’을 선점해가는 분위기다.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한국 조선사들이 수주한 VLAC 계약 건은 전 세계 VLAC 발주량의 80% 이상을 차지했다.이 가운데 HD한국조선해양이 약 60%를 차지했다.
둘째,LNG선뿐 아니라 잠수함 등 방산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국내 조선업계는 올 들어 미국 함정 시장 진출에 도전했다.국내 조선 3사 중 해양 방산의 양대 산맥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연간 2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일명 MRO(Maintenance·Repair·Overhaul,유지·정비·보수) 사업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미 MRO 사업 대부분은 안보 문제로 인해 자국에서 진행됐다.하지만 내년부턴 해외 조선소로 시범 발주하겠다고 선언했고,이는 국내 조선업체에 기회로 다가왔다.미국이 해외로 MRO 사업을 확대하면 조선업 역량 1위이자 우방국인 한국 조선사가 상대적으로 수주에 유리하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최근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했다.MSRA는 미 함정 유지보수와 정비를 위한 미국 정부와 일반 조선업체 간의 협약이다.이번 협약에 따라 두 회사는 향후 5년간 미국 해상수송사령부 소속의 지원함뿐 아니라 미 해군이 운용하는 전투함 MRO 등 다양한 함정 정비사업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됐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그간 함정 정비사업 진출을 위한 밑작업을 꾸준히 해왔다.HD현대중공업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발주한 이지스 구축함 6척 중 5척을 수주했다.또한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두 단계 이지스 구축함(세종대왕함급,정조대왕함급)의 기본 설계를 유일하게 완수할 만큼 독보적인 함정 기술을 보유했다.이미 서비스를 공급해온 필리핀 함정의 MRO 실적을 바탕으로 아시아,남미 등 권역별 MRO 시장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미국과의 접점도 늘리고 있다.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에는 글로벌 터빈 기업‘GE에어로스페이스’와 함정 추진 체계 개발과 미국 군함 MRO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현재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는 필리핀 함정의 MRO 실적을 바탕으로 아시아,남미 등 권역별 MRO 시장을 확대해나간다는 그림을 그린다.
한화오션은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라는‘정공법’을 택했다.
지난 6월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상업용 도크를 보유한 미국 필리조선소 지분 100%(한화오션 40%,한화시스템 60%)를 1억달러(약 1380억원)에 인수했다.필리조선소는 동부 연안 해군기지 3곳과 인접해 있어 MRO 사업에 속도를 내기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이번 인수로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가 보유한 미국 내 최대 규모 도크를 함정 건조와 MRO 수행을 위한 사업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서재호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한화오션 특수선사업부는 최근 필리조선소 인수로 미국 신조·MRO 시장 진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점차 성장성이 뚜렷해지면 특수선사업부가 재평가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모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은 올해 577억6000만달러(약 80조원)에서 2029년 636억2000만달러(약 88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이를 바탕으로 업계에선 미 함선 MRO 시장 규모를 약 20조원으로 추산한다.전문가들은 미 함정 시장이 조선업계의 미래 수익원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MRO는 보통 군함을 건조한 회사가 선박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유지보수를 맡기 때문에 장기적인 수익성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사 호실적에 더해 군함,MRO 등 방산 분야가 하반기 조선업계 기대감을 갖게 한다.우리나라는 조선업 경쟁력과 지정학적 장점을 보유한 만큼 미국 입장에서 유력한 협력 후보”라는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의견은 눈길을 끈다.
셋째,국내 조선사들이 로봇,인공지능(AI),3D 프린팅 등 첨단기술을 앞세워 생산성을 높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AI 기술이 상용화되면 원가 절감은 물론 인재(人災) 사고 역시 줄일 수 있다.
한화오션은 조선 공정 자동화와 효율화를 위해 대규모 로봇 투자를 단행했다.조선소 곳곳에는 대형 산업용 로봇을 배치해 용접과 그라인딩 작업을 자동화했다.후판 가공 공정은 여러 번의 용접 작업이 필요한데,초고출력 레이저 로봇은 숙련공의 손길이 필요했던 용접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다.그라인딩 로봇은 용접 후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해에는 선박 내부 강관을 용접하는 협동 로봇을 도입했다.안전 펜스 설치 없이도 직원이 근거리에서 로봇을 이용해 미세한 용접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안전성과 작업 효율을 모두 확보했다는 평가다.과거에는 30㎏이 넘는 용접 작업대를 근로자들이 여러 번 옮겨 가며 작업해야 했지만,이제는 자유자재로 꺾이는 로봇 팔 덕분에 작업 준비 시간을 60% 줄여 생산성을 높였다.
한화오션은 앞서 2021년 국내 조선업계에선 처음으로‘디지털생산센터’를 구축하기도 했다.현장 곳곳을 일일이 다니지 않아도 공항 관제탑처럼 거대한 생산 현장을 한눈에 파악해 문제 발생 시 신속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스템이다.건조 중인 블록 위치 등을 드론,사물인터넷(IoT) 센서로 실시간 확인하는 한편,바다 위에서 시운전 중인 선박 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이 과정에서 디지털 트윈 기술이 활용됐다.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기계나 장비,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 세계에 구현하는 기술이다.
삼성중공업 역시 로봇 활용에 적극적이다.
자체 개발한‘키홀 플라즈마 배관 자동용접 장비(K-PAW)’를 국내 최초로 실제 건조 현장에 투입해 배관 용접의 자동화를 이뤄냈다.숙련공이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배관 용접 작업을 로봇이 자동으로 처리하면서 용접 속도가 3배 이상 빨라졌다.삼성중공업은 올해 안에 K-PAW에 AI 기술을 접목해 완전 무인화된 용접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HD현대삼호중공업은 조선업계 최초로 인공지능 기관사를 탑재한 선박을 건조해 인도하는 성과를 거뒀다.AI 기관자동화솔루션을 적용한 18만t급 LNG 추진 벌크선을 H-LINE해운에 인도했다.AI 기관자동화솔루션은 항해 중 기관사·갑판원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
한국 조선업이‘슈퍼 사이클’에 진입했지만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낙관론만 펼쳐지지는 않는다.조선업을 위협하는 요소가 여전히 산재한 탓이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 외 다른 분야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중국 조선업이 벌써 기술력에서 한국을 앞서나가는 분위기가 돼버렸다.2020년대 들어 시작된 인력난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걸림돌이다.메이저 3사로만 수주 물량이 쏠리고 있어 중소 조선사는 여전히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것도 해결 과제다.전문가들은 호황에 심취하지 말고,여력이 있을 때 조선업의 구조적인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제 1 중국의 추격
정부 지원 업은 中 조선업 급부상
조선업에서 중국은 한국의 최고 경쟁자다.10여년 전만 해도,가격 경쟁력 외에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나,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연구원이 한국 조선 산업의 가치사슬 종합경쟁력을 분석한 결과(2023년 기준) 경쟁우위 지수는 88.9를 기록,중국(90.6)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2022년까지 중국을 누르고 1위 자리를 고수했으나,2023년 역전됐다.해당 지수는 경쟁우위 요소,가치사슬,제품별 중요도 등을 가중치로 활용,각 산업의 경쟁력을 종합점수 100점 만점으로 산출한 지표다.한국 조선업은 연구개발(R&D)·설계,조달 부분에서 중국 대비 우위에 있으나 격차가 좁혀졌다.생산 부문은 중국에 역전됐으며,피터 스틸AM(애프터마켓)·서비스와 수요 부문은 큰 격차가 지속됐다.
선종별로 살펴보면 국내 조선 산업은 기술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가스 운반선에서만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컨테이너선 경쟁력은 중국과 동등한 수준이 됐다.유조선은 중국이 2022년에 추월했고,벌크선은 중국의 우위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수주잔량 기준으로도 중국에 밀린다.단일 조선소로는 삼성중공업,HD현대중공업,한화오션,HD현대삼호중공업으로 우리나라 대형 4사가 세계 1~4위다.그러나 조선소 그룹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국 최대 국영조선그룹인 CSSC가 월등한 1위다.다른 조선 중국 국영기업인 코스코그룹,초상기선그룹 등도 10위 안에 있다.
중국은 이들 국영조선그룹을 앞세워 한국과 일본의 조선업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WTO 체제 아래서 공정 경쟁으로 조선업에 대한 지원이 제한적이다.반면,중국은 국영조선사를 중심으로 운영,시장의 규제를 피하고 국가적인 지원을 퍼붓는다.
중국 국영조선사들은 다수의 설계회사,연구소,기자재사,금융사·상사까지 보유했다.배를 건조하는 조선 산업에만 집중된 한국,일본 기업과 규모부터 다르다.고객사에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불황이 닥치면 자국 군함을 건조,막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물론 다른 국가들도 중국과 경쟁하기 매우 어렵다.국내 해운사도 가격이나 납기로 인해 중국 조선사에 상당한 선박을 발주하는 실정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중국 조선업과의 가격 경쟁 상황이 지속된다면,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유한 일부 분야만 유지할 수 있다.중국에 시장을 잠식당하면서 유럽과 일본 조선업처럼 경쟁력 약화의 수순을 밟을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과제 2 인력난
극심한 인력 부족에 노조 리스크까지
2020년대 들어 한국 조선업은‘인력난’이라는 유례없는 위기에 처했다.조선업 불황과 코로나19 유행이 겹치면서 일감이 급격히 줄었다.이때 많은 인력이 조선소를 떠났다.팬데믹이 끝나고 조선업 호황이 돌아왔지만,떠난 인력은 다시 일터에 복귀하지 않았다.숙련된 노동력이 한 번에 현장을 떠나면서 비상이 걸렸다.
결국 지난해 정부가 긴급히 조치를 취했다.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와 법무부가 힘을 합쳐 국내·외국 인력 1만4000명을 충원했다.국내 인력은 산업부가 진행한‘구직자 대상 맞춤형 인력양성’을 통해 2146명을 양성했고,이 중 2020명을 채용했다.나머지 외국 인력은 조선협회 추천 인력 중 법무부와 고용노동부가 비자 심사,피터 스틸고용허가서 발급을 통해 선별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노동력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일부 조선소에서는 숙련공 부족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면서,납기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한화오션의 경우,6월 30일 납기 예정이던 6척의 컨테이너선 인도 일정을 11월 25일로 미루기도 했다.숙련공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이 원인으로 꼽힌다.생산성 하락은 한화오션이 2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력난에 이어 노조 파업 리스크까지 덮쳤다.이른바‘하투(여름투쟁)’위기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7월 18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행위 조정 신청을 했다.임금 인상,성과금 산출 기준 변경,정년 연장,승진 거부권 등을 사측에 요구했다.현재 교섭이 진행 중이다.차후 교섭이 지지부진하면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화오션 노조는 이미 7월 15일 한 차례 총파업을 진행했다.한화오션 노조는 조합원 임시총회에서 86%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시키고 합법적으로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노조는 지난 5월 말부터 임단협 상견례를 시작으로 교섭에 나서고 있지만,사측이 진전된 제시안을 내지 않자 파업을 선택했다.
과제 3 양극화
‘수주 가뭄’중소 조선사 지원 절실
나날이 심해지는 양극화 역시 조선업계 고민이다.일감이 쏟아지는 대형 3사와 달리 중소 조선사들은 수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2024년 상반기 국내 조선업체 수주 건수 중 87.4%가 대형 조선사 물량이었다.대형사를 제외한 중소 조선사의 물량 비중은 12.6%에 그쳤다.양극화는 2010년대 조선업 불황이 길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조선업 경기가 절정이었던 2008년,국내 중형 조선사는 27곳에 달했다.그러나 중국의 부상,금융위기로 인한 조선업 불황이 겹치며 회사들은 하나씩 문을 닫았다.현재 남아 있는 중소형 조선사는 대한조선,HJ중공업,케이조선,대선조선 4곳에 불과하다.이들마저도 수주 물량이 부족해 고군분투 중인 것이 현실이다.
중소 조선사를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금융 지원 부족’이다.신규 수주에 필수인 선수금 환급보증(RG)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RG란 선주가 낸 선수금을 은행권이 보장해주는 제도다.선주가 배를 주문하면 조선사는 대금의 20%가량을 선수금으로 받는다.이후 30% 중도금을 제작 단계서 수령한다.마지막으로 선박 인도와 함께 잔금 50%를 받는 구조다.
RG는 배를 만드는 도중 조선사가 파산할 위험에 대비한 제도다.조선사가 파산할 경우 RG 보장을 해준 금융사가 이미 지급한 선수금을 선주에게 돌려준다.통상적으로 선주는 RG 발급을 받은 조선사만 계약을 맺는다.문제는 금융권이 중형 조선사에는 RG 발급을 꺼린다는 점.정부 지원을 받아 수주를 따내도 RG를 발급받지 못해 계약까지 이어지지 못한 사례도 적잖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산업 구조 변화 절실
R&D·디지털화·금융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K조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크게 3가지 방안을 제안한다.연구개발 투자 확대,공정의 디지털화 그리고 적극적인 금융 지원이다.
우선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연구개발비를 늘려 중국이 아직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점하라는 설명이다.
국내 조선업은 이미 R&D 투자의 수혜를 크게 입은 바 있다.2010년대 들어 정부가 앞장서서 연구개발비를 늘리며 조선 산업에 막대한 자본을 들이부었다.덕분에 LNG 운반선 등 첨단 선박 분야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국내 조선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투자 효과를 본 정부는 다시 한번 대형 투자를 진행한다‘2040년 세계 최고 조선 기술 강국’을 목표로,역량을 모은다.
암모니아 추진선,액화수소 운반선,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중대형 전기 추진선,선박용 탄소 포집 장치,자율운항 플랫폼 등 10대 핵심 과제를 정하고 2조원 가까운 자금을 투자할 계획이지만 여전히 투자 규모가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력난 해결을 위한 공정의 디지털화도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생산 현장의 디지털 전환은 작업장 안전이나 품질·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수다.장기적으로는 한국뿐 아니라,주요 국가의 인력 부족에도 도움이 된다.조선업은 수주 산업이어서 기계화나 자동화가 쉽지 않지만 이게 성공한다면,관련 기술과 제품을 우리나라의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할 수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중형 조선사 금융 지원을 통해‘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라는 조언이 이어진다.민간 금융기관이 중형 조선사 RG 발급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민간금융업체가 참여를 꺼린 탓에,중형 조선사 RG 발급은 사실상 산업은행이 도맡아왔다.다만,산업은행이 발급하는 RG 한도는 이미 채워진 상태다.때문에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민간은행의 RG 발급을 권유해왔다.경남은행,광주은행 등 지방은행이 2023년 케이조선과 대한조선에 RG를 발급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선박 발주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조선사가 RG 발급이 안 돼 수주에 실패하고,부진에 빠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민간금융기관이 지속적인 RG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더 독려해야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 토로다.
최근 급락에도 주가‘이상무’…기자재 업체 주목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도 조선주를 담은 상품의 성과가 단연 돋보인다.신한자산운용의‘SOL 조선TOP3플러스’는 7월 한 달간 19% 상승했다.이 기간 국내 상장한 ETF 중 수익률 1위다.같은 기간 NH아문디자산운용의‘HANARO Fn조선해운’과 삼성자산운용의‘KODEX K-친환경선박액티브’도 각각 13%,9%씩 상승했다.
8월 들어 시장 급락 후 반등하는 흐름에서도 조선주 강세는 두드러진다.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며 코스피가 9% 폭락한 8월 5일 HD한국조선해양(-15%),한화오션(-13%),HD현대미포(-12%),HJ중공업(-12%),삼성중공업(-11%) 등이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그러나 하루 뒤 코스피가 3% 반등할 때,조선주는 반등폭을 더욱 키웠다.HD한국조선해양(10%),피터 스틸HJ중공업(10%),한화오션(9%),삼성중공업(7%),HD현대미포(5%) 등이 지수 대비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며 전일 하락분을 대부분 회복했다.최근 조선주 급락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 기반한 현상으로,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과는 무관하다는 분석이다.
하반기 경기 둔화 우려에도 조선주 성과는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선 조선사에 우호적인 환경이 마련됐다.하나증권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는 짧게는 2년 반에서 길게는 4년 치 수주잔고를 보유 중이다.높은 수주잔고를 기반으로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이는 높은 선가로 이어져 고가 수주가 지속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여기에 글로벌 컨테이너선사의 친환경 선박 발주,카타르에너지 등 주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기업 발주가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이에 따라 신조선가 추가 상승도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으로,주가 상승 여력이 아직 남아 있다.주가만 놓고 보면 현재 주가는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증권가 진단이다.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5개사의 올해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2배 수준이다.내년 실적 추정치 기준으로는 약 1.9배다.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요 5개 조선사의 내년 실적 추정치 기준 PBR은 2배를 밑돈다”며 “과거 주가 흐름을 고려해 PBR이 2배 이하인 구간에서는 매수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뽑은 최선호주는 HD한국조선해양이다.수익성은 물론,현 주가를 고려하면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증권가에서 제시한 HD한국조선해양 목표주가는 평균 23만4600원이다.8월 7일 종가(19만2000원) 대비 약 22% 상승 여력이 있다고 내다본 셈이다.높은 수주잔고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향후 실적이 기대된다는 것.여기에 HD한국조선해양이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도 매력적이라는 평가다.HD한국조선해양은 HD현대삼호의 97%,HD현대중공업의 75%,HD현대미포의 42% 지분을 보유했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HD현대삼호는 수주와 매출,영업이익 간 연결고리가 빠르게 형성된 조선사”라며 “본격적으로 수익성 개선 국면에 접어든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지분 가치까지 감안하면 HD한국조선해양 주가는 아직까지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이어 “현재 HD한국조선해양 PBR이 1.2배 정도인데 1.7배까지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사뿐 아니라 기자재업체까지 일감이 늘어나며 수혜가 퍼져 나가는 분위기다.
조선 기자재 산업은 소수 기업이 독점 납품하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해왔다.조선사 수주 여부와 매출 증가 등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 이유다.주가도 조선주 못지않게 상승폭이 크다.연초 이후 7월 말까지 세진중공업(91%),한화엔진(47%),성광벤드(18%),동성화인텍(11%),태광(11%),한국카본(6%) 등이 시장을 앞서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이 기간 코스피는 4% 올랐다.
시장에서는 기자재업체 중 세진중공업과 한화엔진을 주목한다.글로벌 에너지 전환 속도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가스 수요가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세진중공업은 가스 운반선에 탑재되는 가스탱크를 주력으로 제작하며,한화엔진은 이중연료(DF)엔진을 생산한다.특히 DF엔진 정비가 늘어날 내년부터는 한화엔진의 본격 성장이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증권가는 세진중공업과 한화엔진 모두 40% 정도 상승 여력이 있다고 내다본다.증권가에서 제시한 평균 목표주가는 세진중공업이 1만2000원,한화오션이 1만9000원이다.8월 7일 세진중공업은 8250원,한화엔진은 1만3550원에 거래를 마쳤다.
LNG 시장 확대로 보랭재업체 주가 상승도 기대할 만하다.기체인 천연가스는 액체 상태로 운반해야 같은 면적으로 더 많은 양을 운반할 수 있어 운반 효율성이 커진다.천연가스가 액체 상태를 유지하려면 온도가 -162℃ 이하의 극저온 상태로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보랭재가 필수 기자재로 꼽힌다.동성화인텍,한국카본 등 보랭재를 만드는 업체도 수혜를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다.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조선사와 기자재업체는 같은 방향의 주가 움직임을 보인다”며 “향후 LNG 시장 확대로 보랭재,엔진업체 등 전방위적인 수혜가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김경민·정다운·반진욱·문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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