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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꿈꿔왔던 히말라야 트레킹 대장정에 올랐다.한 달간의 일정이었다.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앞섰다.첫 히말라야 트레킹 치고는 조금 무리한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초보자는 안나푸르나의 푼힐이나,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를 간다고 한다.하지만 나의 첫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는 마나슬루 서킷이었다.
마나슬루 서킷은 약 5,000m 높이의 라르케 패스에 올라,마나슬루(8,156m) 정상을 마주하는 코스다.히말라야 초보자에겐 분명 쉽지 않은 코스지만,나에게는 적게는 2번,많게는 6번까지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든든한 일행들이 있었다.나는 그들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마나슬루 서킷이 끝나면 일행과 헤어져 홀로 안나푸르나 서킷과 푼힐,ABC를 걷기로 했다.처음엔 불안함과 두려움이 무척 컸다.'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내가 어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결국 나는 '어떻게든 잘 헤쳐 나가겠지!'라고 생각하며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매주 산에 올랐고,술도 자제하며 몸과 마음을 단속했다.한 달 동안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우선 추위와 고산병이 복병이었다.추위는 그렇다치고 고산병은 겪어본 적 없어,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짐 싸는 것도 꽤 까다로웠다.침낭을 비롯한 옷,생활용품,비상약품,먹거리 같은 것을 포터의 제한 무게인 15kg에 맞춰야 했다.그저 걷기 위해 떠나는 길인데,필요한 것이 왜 이리 많은 건지….
그렇게 나는 주변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로 떠났다.좀 더 강인하고,겸손한 인간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꿈을 품고서.
영혼의 산 마나슬루Manaslu
마나슬루 서킷 트레킹은 호된 신고식으로 시작됐다.트레킹이 시작되는 마차콜라까지 버스를 타고 200km 비포장길을 달려야 했다.버스는 온종일 덜컹거렸다.우리는 버스에서 10시간을 간신히 버텼다.첫 번째 로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몸과 마음이 온통 거덜 난 상태였다.
히말라야의 첫인상은 강렬했다.규모가 어마어마했다.살면서 이 정도로 큰 산은 처음이었다.마치 내가 소인국의 난쟁이가 된 것 같았다.눈앞의 봉우리는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협곡 사이로는 우렁찬 에메랄드빛 강물이 끝없이 이어졌다.강줄기는 며칠을 가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매일 3~4번의 출렁다리를 건넜고,좁은 절벽 길과 너덜 길을 올랐다.짐을 싣고 지나는 나귀 떼와 셀 수 없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어린 시절 보았던 우리네 시골 풍경의 마을을 지나고 또 지났다.
트레킹 시작 6일차,드디어 고도 3,200m에 올랐다.마침내 신령스러운 마나슬루가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구름은 마나슬루 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걸려 있었다.신비로운 풍경이었다.히말라야 설산은 다가갈수록 멀어진다는 말이 있단다.그 말의 의미가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3,500m 고지인 사마가온에 이르니 마나슬루산군을 병풍처럼 두른 너른 평원이 펼쳐졌다.야크 떼들은 이곳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야크 떼 뒤로는 웅장한 히말라야산맥이 한눈에 보였다.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차츰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일어나 앉기에도 숨이 차고,
일본 어묵칩힘들었다.손발은 붓고,머리는 지끈거리고,속은 메스껍고,가슴은 답답했다.감기 증상까지 겹쳐 총체적 난국이었다.이대로 라르케 패스를 넘고 보름간의 안나푸르나 서킷을 홀로 이어갈 수 있을는지… 앞이 캄캄해졌고,자신감도 무너졌다.
지금까지 일행들은 "역시 젊은 막내가 낫다"며 나를 '쌩쌩이'라 불렀다.그런데 고도 4,000m가 지난 뒤부터 나는 '어이 비실이'로 추락해 버렸다.그만큼 고산병은 나를 끝없이 괴롭혔다.
12일차가 되었다.드디어 라르케 패스를 넘는 날이었다.우리는 새벽 3시 캠프를 나섰다.검은 어둠을 헤치며 느린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등 뒤로 서서히 해가 떠올랐다.햇빛을 머금은 거대한 산은 수호신처럼 우리를 내려다보며 응원하는 듯했다.
출발 6시간 만에 라르케 패스(5,106m)를 알리는 깃발이 저 멀리 보였다.'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표지판에 이르자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언니들과 나는 서로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다.
힘들게 올라온 길이었지만,하산을 서둘렀다.고도 3,800m까지 내려가는 16.7km의 하산길이 나를 기다렸기 때문이다.그런데 걱정과 달리 하산은 무척 수월했다.이 길이 이렇게나 편안하고 즐거울 줄이야!그렇게 12일간의 마나슬루 서킷 트레킹은 이틀간의 하산으로 마무리되었다.
홀로 떠난 안나푸르나 서킷
안나푸르나 서킷의 첫인상은 다소 실망스럽고 충격적이었다.도로는 세계 각국의 등산객들로 굉장히 붐볐고,수시로 드나드는 지프는 끝없이 먼지를 일으켰다.마치 황량한 사막이 연상되는 삭막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일행과 헤어져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도 잠깐이었다.나는 곧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안나푸르나 서킷 2일차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퍼붓던 비는 급기야 눈으로 변했다.3,500m 높이에 위치한 마낭 로지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결국 악천후로 트레킹을 포기하고 내려가는 이들도 꽤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계속 걸었다.결국 쏘롱라 패스(5,416m)를 넘기 전 마지막 로지인 하이캠프에 도착했다.이곳은 전기도,난방도 없는 곳이었다.잠드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마침내 쏘롱라 패스를 넘는 날이 다가왔다.새벽 4시에 캠프를 출발했다.날이 무척 추웠다.옷을 겹겹이 껴입었지만,칼바람이 옷을 뚫고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손발은 금세 얼어 무감각해졌다.너무 아파 눈물이 날 정도였다,마나슬루 서킷을 걸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그때,셰르파 다와가 어설픈 한국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누님,누님,뜨거운 물 드셔요."
그러고선 연신 내 손을 비벼줬다.자신은 얇은 옷에 제대로 장비도 갖추지 않았건만.그의 배려가 고맙고,미안했다.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순간,저 멀리 'THORUNG-RA PASS'라는 푯말이 보였다.그때 나는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이제 끝났다.다행이다"라는 안도감만 들었다.
안나푸르나 서킷 이후,나는 ABC 트레킹까지 무사히 끝마쳤다.ABC에서는 안나푸르나,
일본 어묵칩히운출리,마차푸차레 등 고산의 멋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힘든 건 여전했지만,하얗게 빛나는 히말라야 봉우리를 볼 때마다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은 도전과 포기,인내와 충만함,즐거움과 두려움,고통과 쾌감 등 상반된 수많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던 길이었다.또 매순간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긴 여정 내내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어준 셰르파 다와는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고 보살펴주었다.그가 없었다면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지난 한 달 동안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과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감사합니다,히말라야여!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네팔인들의 친절과 사랑을!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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