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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재능 일찌감치 알았지만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
“부모가 삶으로 보이는 게 진짜 교육”이라고 강조
지난 2월 초 JTBC 오디션프로그램‘싱어게인3-무명가수전’에서 우승한 58호 가수 홍이삭씨는‘고막남친’이라는 별칭으로 힐링 음악을 선사하며 인기몰이를 했다.홍씨가 선교사 자녀(MK·Missionary Kids)로 알려지자 오랫동안 교육 선교사로 사역해온 그의 부친인 홍세기(66) 우간다 선교사는 때아닌‘홍이삭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잠시 한국에 들른 홍 선교사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나 MK 자녀교육법과 선교 이야기에 대해 들었다.
아들 공연에 덩달아 긴장,기회 없는 아프리카 청년들 떠올라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대 총장인 그는 그동안 바쁜 사역으로 이삭씨의 라이브 공연을 본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아들을 직접 응원하기 위해 아내 강학봉(65) 선교사와 현장을 찾은 그는 싱어게인의 파이널 무대에서 이삭씨의 공연을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고 했다.
“아들이 노래 부르는 걸 보는 게 (솔직히) 힘들었죠.익숙하면 좋은데 아들도 긴장하는 것 같았고요.아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져 자신을 펼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어요.한편으론 아프리카에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나더라고요.한국 청년들이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기회가 있는데 아프리카 친구들은 그게 전혀 없거든요.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네요.”
홍 선교사는 우승을 거머쥔 이삭씨가 공연 과정에서 적잖은 고생을 하는 것을 보게 됐다.여덟 차례의 공연 때마다 선곡,근환편곡,근환음원 제작까지 거의 혼자 도맡아 했다고 전했다.그는 “아들이 고군분투한 게 큰 자산이었다.노래뿐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자생할 사람들이 살아남는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며 “다행히 아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뛰어넘어 자신의 노래를 마음껏 불렀는데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고 했다.
너는 음악 말고 대안이 없다
홍 선교사는 아들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아버지가 본 이삭씨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예술적 감각이 있었다.그럼에도 대놓고 음악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아들의 음악 활동을 제대로 뒷바라지해줄 상황이 안됐기에 묵묵히 지켜보며 자녀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길 기대했다.
“아들이 음악을 해야 한다고 꽤 오래전부터 생각했어요.미안하지만 제가 책임을 질 수도 없으니 그런 발언을 하기 힘들었죠.음악학과가 없는 한동대에 간다고 했을 때 말은 못 했지만‘떨어져야 자기 길을 찾는데’싶었어요.여러 시도 끝에 결국 음악인의 길을 간다고 할 때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르지만‘너는 음악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죠.”
부모가 삶으로 보여주는 게‘참교육’
평소 이삭씨는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는데 특별한 자녀 교육법이 있는지 궁금했다.이에 홍 선교사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부모가 삶으로 잘 사는 게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가정은 가족이 온전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에요.자녀들과 편안하게 대화하고 인정·격려해주는 부모 역할이 필요해요.저는 가정예배 드리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어요.대신 교육과 성경 교육이 이뤄지는 학교와 교회를 선택할 때 신중하게 생각했죠.결국 부모가 잘사는 게 교육입니다.부모가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살면 자녀도 자기 길을 갈 것입니다.아들은 잘 웃고 겉으로 반항하는 행동은 안 했는데 자기 길을 찾는‘사춘기’가 좀 길었던 것 같아요.”
MK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국어 교육
범위를 좁혀 MK 양육법에 관해 물었다.교사 출신인 홍 선교사는 1986년 한 교사 수련회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뒤 현재 대표적인 기독교 대안학교로 자리 잡은 별무리학교의 설립 멤버로 좋은교사운동 등에서 다양한 교육선교 활동을 펼쳤다.피푸아뉴기니 교사선교사,필리핀 마닐라 한국아카데미 교장 등을 거쳐 쿠미대 총장에 이르기까지 선교지에서 무엇보다 MK 교육에 힘을 쏟았다.
어릴 때 선교지에서 성장하는 MK 가운데 정체성 혼란 등의 심리적·영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최악의 경우 자녀 문제로 사역을 접는 선교사들도 있다.이런 현실에 대해 홍 선교사는 모국어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자녀 교육을 100으로 보면 70가량은 부모의 양육 태도와 가치가 영향을 미칩니다.한국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본 요소는 모국어와 한국적인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거든요.한국어로 글을 읽고 쓰는 정도의 실력이면 해외에서 사는 어려움 등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어요.선교사들이 자녀를 국제학교에 많이 보내는데 제가 대안도 만들지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죄송하지만‘영어 과잉 교육’이 된 게 사실입니다.영어는 극복 가능한 수준이면 충분하고 모국어 교육이 중요합니다.”
사역에 쓰는 에너지만큼 자녀에게 쏟아야
무엇보다 사역을 핑계로 자녀 교육에 무임승차를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아무리 분주해도 자녀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게 그의 중론이다.안식년도 자녀의 대학 진학 시점과 맞추며 자녀의 한국 재진입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학령기 아이들의 경우 부모는 사역과 비슷한 정도의 에너지를 자녀에게 써야 합니다.특히 자녀가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해요.안식년도 자녀들의 대학 진학 시점과 맞춰서 정하는 등 지혜가 필요하죠.자녀들이 한국에 재진입할 중요한 시기를 준비하고 검증해야 합니다‘믿음으로’자녀 교육을 한다고 해도 자녀들이 스스로 환경을 극복하기엔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저도 아들이 대학에 진입할 때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아서 탈모가 올 정도였으니까요.”
‘무릎 기도’로 학교 운영,근환때론 절규에 가까운 항의 기도도
2018년부터 쿠미대에서 교육 선교를 하는 그는 선교지에서의 보람도 전했다.국제개발구호단체 기아대책 소속 선교사가 1999년 세운 쿠미대는 7개 학과(신학과 농업과 사범대 등)를 보유한 종합대학이다.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학생 수가 적고 직원 월급이 밀리는 등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으나 홍 선교사는 기도로 어려움을 이겨냈다.현재는 학생이 2000명 이상이 되는 등 학교가 팬데믹 이후 오히려 발전하는 은혜를 경험했다.
“학교 운영은 교육과 또 다른 영역이지만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제가 힘든 것 이상으로 학교가 발전했어요.우간다 시골에 있는 학교지만 다른 동아프리카에 있는 난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이들을 키우는 허브 역할도 감당하고 있죠.힘들 땐 저도 도망가고 싶더라고요‘돈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다’고 기도했죠‘도대체 뭡니까’라는 항의에 가까운 절규라고나 할까요.학생들은 새로 생긴 건물에 자부심을 느끼며 기뻐했죠.여러 섬김 가운데 축구팀과 밴드팀을 결성하는 등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요.”
‘아프리카의 친구’로 여생 보낼 것
마지막으로 홍 선교사는 여생을 아프리카에서 잘 사는 게 소망이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프리카인의 친구로 그곳에서 잘 생존하고 학교 개발 및 어린이도서관 사역 등을 통해 아프리카 다음세대를 잘 키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