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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주공아파트〉
박철수 지음
마티 펴냄
1994년 한국을 방문했던 프랑스 대학생 발레리 줄레조는 서울에 있는 아파트 단지의 규모에 충격을 받고,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박사논문 주제로 잡았다.그녀는 논문을 준비하는 5년 동안 프랑스의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했다.프랑스에서 아파트 단지에 대한 연구는 이미 낡아서 새로울 것이 없는 주제가 된 지 오래인데,뭐 하러 그 먼 나라에까지 가서 쓸데없는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한국의‘아파트 단지’에 상응하는 프랑스 단어를 찾을 수 없었던 발레리 줄레조는 답답했어요.
프랑스에서 아파트 단지를 일컫는 용어는‘그랑땅상블(grand ensemble)’이나‘시테(cité)’인데,둘 다 대도시 외곽에 지어진 영구임대주택이자 가난한 사람들(이주노동자)의 주거지를 가리킨다.그런데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그와 반대로 서울과 같은 도심에 지어졌으며 중산층과 상류층만이 소유할 수 있다.그녀는 파리4대학 지리학 박사논문을 획득한 〈한국의 아파트 연구〉(아연출판부,일본 월드컵 최종예선2004)의 한국어판 결론에 이렇게 썼다.“글을 마치며,독자 여러분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가책을 고백하려 한다.그것은 이 모든 연구에도 불구하고‘아파트 단지’에 합당한 프랑스 용어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상징적인 측면에서 프랑스의 단지와 한국의 단지는 오늘날 완전히 대립 구조를 보인다.전자는 도시로부터의 배척과 사회적 지위 실추를 의미하며,후자는 도시로의 통합,일본 월드컵 최종예선사회적 지위 상승을 떠올린다.” 그녀는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아파트 단지가 조만간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있지만,일본 월드컵 최종예선아직까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해요.
〈마포주공아파트〉(마티,2024)는 박철수 교수의 유작이다.〈한국주택 유전자〉(마티,2021)를 통해 한국의 아파트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를 보여준 그는 이 책에서 발레리 줄레조가 희미하게 비추고 말았던,한국 아파트 단지의 기원을 밝힌다.바로 1962~1965년 사이에 준공된 마포주공아파트단지(마포아파트) 이야기다.마포아파트는 한국의 아파트를 문화기술지(文化記述誌) 방법으로 해부한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일본 월드컵 최종예선2011)에도 비중 있게 나온다.이 책의 지은이는 한국의 아파트를 “종교적 열정의 대상”이라고 불렀는데‘정치적 무의식’이라고 하면 또 어떨까요?
군부의 야심찬 실험이자 선전 도구
1961년 5월16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박정희와 군부(국가재건최고회의)는 그달 28일 대한주택영단의 이사장을 내쫓고,군사반란의 수족이었던 육군사관학교 8기생이자 박정희의 2군 사령부 직할 공병대대장 장동운 중령을 새 이사장에 취임시켰다.이후 대한주택영단은 대한주택공사로 개칭을 하고 준장으로 예편한 장동운이 초대 총재가 된다.그해 7월3일,일본 월드컵 최종예선박정희는 명목상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모셨던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을 반혁명 음모사건에 연루시켜 감옥에 처넣고 스스로 의장이 되었어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꿰찬 박정희와 그 일당은 그들이 내뱉은 혁명 공약,예컨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民生苦)를 시급히 해결하고,일본 월드컵 최종예선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공약 4)”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공약 5)”와 같은 것을 어서 내놓아야 했다.자신들이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 정치인과는 다르며,또 2년 뒤 약속한 정권 이양을 번복하고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과물이 있어야 했어요.
“5·16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밀어붙인 대표적인 국가 프로젝트가 마포주공아파트다.마포주공아파트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집단의 야심찬 실험이자 선전 도구였다.” 1962년 12월1일,1차 마포아파트 준공을 치사하는 축사에서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이‘5·16 혁명’을 들먹이며 마포아파트가 “혁명 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 말은 그가 여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입증한다.이 성취가 얼마나 짜릿했는지,박정희는 제5대(1963년)와 제6대(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하고 나서 제7대(1971년) 대통령 선거 광고 사진에,마포아파트의 잔디밭에서 어린 아이와 노는 젊은 부부의 사진을 등장시키죠.
원래 마포아파트 1차 단지 6개 동(450세대)은 분양을 배제한 임대용이었고,2차 단지 4개 동(144세대)은 분양을 계획했다.그러나 대한주택공사는 1967년이 되자 약속을 깨고 1차 단지 전체를 분양으로 전환했다.“마포아파트 건립을 추진한 이들에게 임대냐 분양이냐는 부차적 문제였고,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규모,이 규모가 선사하는 새로운 도시 경관,즉 발전과 등치되길 원한 혁명의 이미지였다.” 무책임한 선전선동 욕구와 급조된 주택정책이 빚어낸 분양의 관행이 향후 한국의 아파트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군사반란 수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국가 발전 목표와 정책을 실행하는 대한주택공사가 최초의 아파트 단지인 마포아파트를 중산층을 겨냥한 분양 사업으로 시작했기 때문에,민영 건설회사들도 그 뒤를 따라 임대사업이 아닌 분양을 당연시하게 되었고,더 많은 이익을 좇아 아파트 단지는 점점 비대해져 갔다.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유럽에서와 같은 공공임대주택(영구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이 말라버리고 말았어요.
이인규가 쓴 〈둔촌주공아파트,대단지의 생애〉(마티,2023)를 보면,마포아파트는 한국 아파트 단지의 시발이면서 재개발의 원조이기도 하다.“‘재건축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것은 1964년에 건설된 마포아파트였다.1987년‘주택건설촉진법’이 일부 개정되자마자 삼성종합건설은 마포아파트 주민의 동의를 100% 받아내고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곧이어 1988년 12월에 마포아파트 재건축조합이 사업 인가를 받았고,3년 후인 1994년‘마포 삼성아파트’가 완공되었다.뒤이어 1966년에서 1969년 사이에 건설된 동부이촌동 공무원아파트도 재건축 논의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만 극성스러운 아파트 재개발의 원인은 비싼 돈을 주고 입주한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이 자신의 아파트 단지를 주거 공간으로 가꾸며 이웃과 함께하는 장소로 만들기보다,이웃 아파트와 경쟁하는 환금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이 또한 아파트를 공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게 만든 잘못 끼운 첫 단추의 영향이 커요.“우리는‘마포아파트 체제’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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