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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경제사
브래드퍼드 들롱 지음│홍기빈 옮김│생각의힘
1870∼2010년까지 140년간
기술발전이 인구증가속도 능가
세계 평균 1인당 소득 8.8배로
이후‘부의분배’최악상황으로
착취·불평등·불공정에 시달려
‘20세기 경제사’에서 브래드퍼드 들롱 UC 버클리대 교수는 1870년부터 2010년까지 역사를 장기 20세기라고 부른다.에릭 홉스봄의 단기 20세기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홉스봄의 20세기는 파시즘과 현실사회주의가 날뛰던,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1990년 소비에트 해체까지다.그러나 저자는 이 이야기엔 기술 혁신에 따른 생활 수준의 향상이란 드라마가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1870년 무렵부터 기술 발전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를 이기기 시작했다.기업 연구소가 들어서 경제성장의 동력을 충전했고,근대 대기업이 나타나면서 발명 성과를 활용했으며 세계화가 본격화하면서 거리를 초월하는 시장이 열렸다.이로부터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보다 모두를 위해 더 많이 생산하는 행위가 더 큰 부를 낳는 시장의 시대가 열렸다.
시장과 함께 인류는 번영했다.2010년 세계 평균 1인당 소득은 140년 전(1300달러)보다 8.8배로 늘어나 약 1만1000달러에 이르렀다.그러나 현재를 유토피아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부의 분배가 1870년보다 훨씬 나빠졌기 때문이다.장기 20세기는 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을 열지 못하고 전쟁과 파괴,착취와 독재,불평등과 불공정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았을까?
저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칼 폴라니 두 사상가를 등장시켜 장기 20세기를 경제성장과 그 분배를 놓고 갈등하는 인류의 여정으로 묘사한다.이 책의 원제를 빌리면,이는‘웅크린 채로 유토피아를 향해’걷는 길이다.하이에크는 시장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주는 것도 시장,가져가는 것도 시장이니 시장을 찬양하라.” 그러나 빈익빈 부익부의 불평등,유전무죄의 불공정,라이프치히 대 맨체스터 시티 fc 통계환경오염과 기후 위기 문제에 시장은 무력했다.그 구원투수가 폴라니였다.“시장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사람이 시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장기 20세기란 하이에크적 시장의 활력이 사회 혼란으로 이어지는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폴라니적 사유가 스며들고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인류가 시장을 길들이는 과정이다.저자에 따르면,이 문제에 대한 최상의 답은 하이에크와 폴라니의 강제 결혼,즉 북대서양의 발전주의적 사회민주주의였다.시장 경쟁을 유지함으로써 성장을 촉진하는 한편,누진세를 통해 거둔 부를 사회 약자들에게 적절히 분배함으로써 불평등을 억제하고,소비를 촉진해 공황이 일어나지 않게 시장을 건강하게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신자유주의가 부자 감세를 통해 고용과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뿌리까지 이를 파괴했다.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실업과 빈곤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으나,투자와 성장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매년 재정 적자가 지속되면서 달러가 고평가되자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고 무너져 러스트 벨트가 출현하고 중산층이 몰락했다.사회주의 해체에 따른 정치적 열광,정보혁명으로 인한 일시적 생산성 향상이 착각을 가져왔으나,2008년 세계 경제 위기와 함께 파멸이 찾아왔다.성장은 느려지고,세계화는 역전되자 대침체와 함께 장기 20세기가 종언을 고했다.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이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날 경제를 말하는 책엔 거대 서사가 드물다.한 해짜리 트렌드 책,초단기 재테크 책,반짝 기술을 좇느라 허덕이는 책들이 대부분이다.이 책은 드물게도 한 걸음 떨어져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뿌리 깊은 문제를 들추고,기나긴 시간의 서사 위에 우리를 자리 잡게 하며,멀리 내다보면서 미래를 향해 우리를 전진시키는 책이다.신자유주의의 실패가 낳은 현재의 곤경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728쪽,3만78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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