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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장편‘오키나와 스파이’
2차대전 패망 일본 오키나와에서
학살된 민간인 조선인 처음 복원
사력 다한‘문학적 목격담’
오키나와 스파이
김숨 지음 l 모요사 l 1만9000원
김숨의 신작 장편‘오키나와 스파이’는 제목에 장정이 보태져 미스터리 스릴러를 연상시킨다.아무렴 김숨이 그 장르에 도전했을까 싶은데,소설을‘겨우’읽어내면 이 소설이 미스터리 호러가 아닐 까닭도 없어 보인다.일본인 화가 아이 미쓰(1907~1946)의 그림‘눈이 있는 풍경’(1938)처럼 소설엔 모든 참극을 지켜보고,보이는 것들 너머를 좇는 눈이 숨어 있다.소설 속 진짜 살인자는 누구인가.총검을 든 소년들인가,군인인가,인간의 본성인가.차라리 섬의 운명이라 하자.그렇다면 본성을,섬을 배후 조종한 자는 누구인가.천황인가,제국주의인가.
‘오키나와 스파이’는‘의문사’로 가득해 있다.한 섬에서 9명이,3명이,7명이 각기 몰살당한다.전조처럼 앞서 1명이 척살 당했고,뒤이어 3명이 자살한다.어느 해 여름,오키나와를 둘러싼 160개 섬 가운데 100㎞ 떨어진 섬에서의 일이다.숲이 출렁이는 섬,빛으로 가득한 섬,물이 달고 맛있는 섬,흙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섬,산양,돼지,소,닭 가축들 사랑스럽고,섬의 비옥한 흙으로 빚은 듯한 얼굴,섬의 물로 빚은 듯한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의 섬.그러나 순간 바뀌었다.“섬 어디에도 인간은 없다.”
먼저 이 섬 북쪽에 위치한 소목장의 주인인 우치마네 가족과 일꾼,지인 9명이 6월말 초여름밤 들이닥친 군인과 십대 소년들에 의해 척살 당한다.아홉 중 셋은 여자고,하나는 1살 아이다.“한 명 한 명 전부 죽인다”는 달빛 아래 명령과 함께,한 명씩 총검에 찔려 죽는 장면이 한 토막씩 이어진다.주검과 현장이 불타기까지 소설은 이를 재현하는 데 가차 없다.소년들은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
두 번째,다복한 집안에서 자란 요미치네.전장에 나간 세 형제 중 혼자 살아남았다.남편 닮은 아이가 많을수록 더 살기 좋은 섬이 될 거라 믿는 요미치의 아내 게이코.아직 아이는 1살 된 아들 하나뿐.셋 다 찔려 죽는다.
“아기는 살려주세요,캠 스터디아기는 살려주세요…”(게이코)
“아기도 죽이라고 했어.” 소년들은 말한다.
세 번째,캠 스터디고물상을 하던 조선인 일가족 7명.조선인 사내가 일을 찾아 제발로 오키나와로 건너온 게 19살 때다.이 섬까지 온 게 2년 전.아내가 오키나와 사람이다.본토 출신 전남편과의 첫째 아들 히데오는 지금 아버지를 “삼촌”이라 부르고 이복동생 넷은 엄마에게 묻는다.“일본인은 일등,오키나와인은 이등,캠 스터디조선인은 삼등.엄마,그런데 나는 조선인이에요?” 이등 엄마,삼등 아빠는 막내 출생신고도 아직 못했다.이제 고향만큼이나 오키나와 본섬이 그립다던 사내 나이 쉰한 살.
세 사건엔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1945년 6월29일 9명이,천황이 항복 선언을 한 이튿날 3명이,항복 선언을 하고도 닷새 더 지난 8월20일 7명이 군인과 소년들에게 “처형”될 때,“미군 스파이”로 내몰렸다는 사실이다.
명확히 다른 점도 있다.우치마네도 요미치네도 죽을 줄 몰랐던 반면,조선인 사내만은 분명하여 살고자 도망쳤으나 추적되어 죽었다.섬엔 조선인 사내를 숨겨준 이웃도 있었고,이런 주민도 있었다.“(조선인 숨긴 곳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 마을 주민 전부가 스파이가 된단 말이에요.”
소설‘오키나와 스파이’는 1945년 6~8월 오키나와 부속 섬 구메지마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토대로 쓰였다.지난해 3월 김숨이 처음 오키나와를 방문하고서 현지 미술관에서 조선인 구중회(다니카와 노보루)씨 가족 이야기를 다시 접하면서 장편은 시작됐다.
김숨은 극악무도한 학살 현장으로부터 시간을 되돌리며 진상과 배경을 추스른다.우치마네가 몰살당한 날의 아침,이틀 전,한달 전,캠 스터디열달 전….일제의 패색이 짙던 1945년 6월 미군이 이 섬까지 닥쳤다(오키나와 본섬은 4월에 점령됐다).서른 남짓 주둔해 있던 일본군은 섬사람을 동원해 방어한다.동시에 미군에 협력했다며 주민들을‘스파이’로 몰아 죽인다.섬 소년들을 “인간 사냥꾼”으로 앞세웠다.문제는 실제 스파이 활동의 여부가 아니다.주민 전체를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가둬 통제하는‘병영 제국’의 본질이다‘스파이 장부’를 만들고 처형을 명한 건 기무라 부대장이지만,스파이라고 밀고한 주민,서로 협박하는 주민이 있었다.인근 섬들에선 미군에 맞서 집단 자결을 명령받고 자해적 살육이 벌어졌다 하니,소설은 옆 섬의 끔찍한 이야기를 소문처럼 전하고,일본의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는 현지 증언 취재해‘오키나와 노트’(1970)로 전한 바 있다.
이 소설은 김숨의 전작들과 퍽 다르다.예의 문학적 그로테스크가 아니라,참상을 한 컷 한 컷 동원 가능한 모든 언어로,사력을 다해 묘사한다.조용한 하루가 전개되고,페이지를 넘기니 죽는다.오키나와 전사자가 아닌 조선인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처음 국내 문학에서 다뤄지면서 감당한 방식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모순적) 현실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오키나와 문제”라고 지적했었다.히로시마 원폭으로 그해 숨진 이들(14만명)보다 1945년 4~6월 오키나와에서 죽은 민간인이 더 많다.오키나와를 제물 삼아 일본은 평화를 얻었다.그 구조에 은폐된 조선인의 죽음이 수만이다.추정치일 뿐이다.그래서‘의문사’다.인간의 야만성,비겁하고도 존엄한 생명력은 학살 현장으로부터 시계를 태초까지 되감을지언정 납득이 될까.그러니‘의문사’다.
전쟁 말기 일본군 위안소가 미군용으로 바뀐다거나 “미군보다 패잔병이 된 일본군이 더 무서웠다는 이야기”는 오키나와 문학을 국제 무대에 알린 메도루마 슌이 친인척한테 들은 회고담으로도 접할 수 있다.모순의 섬 오키나와에 견주면,400쪽 안 되는 김숨의 소설은 폭이 좁다.논문도,르포도,하물며 증언록도 아닌‘오키나와 스파이’는‘목격담’이기 때문이다.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작가의 말’을 되새길 만하다.그 감정대로 이제 독자의 시간이 오기 때문이다.
“너무도 분명한 악과 악행과 악인을 상상하는 것이,쓰는 것이 쉽지 않다.그런데 이 소설을 어떻게든 끝맺으려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상상해야 했고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써야만 했다.결국는 내가 나 자신에게 상상하게 했고 또 쓰게 했지만,쓰고 싶지 않아서 저항하고 있는‘나’는 여전히 있다.”
소년들은 작품 속에서 아기를 죽일 때마다 한 군인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내가 중국에서 우는 아기를 어떻게 죽였는지 알아?공중으로 휙 던져 총검으로 받았지’
잔인해서 인용하고 싶지 않았지만,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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