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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회사 전전하며 생계 이어가는데 매진.건강은 못 돌봐
암세포 간·뼈로 전이.비급여 의약품으로 치료 이어가
3주에 한번 병원비 180만원.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가 전부

지난 11일 계속된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최희숙(가명·66) 씨가 가발을 쓰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박성현 기자
지난 11일 계속된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최희숙(가명·66) 씨가 가발을 쓰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박성현 기자


가족의 무관심은 가장 강력한 폭력 중 하나다.9년 전 최희숙(가명·66) 씨가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고 돌아온 날,남편은 가만히 누워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병원에 같이 가주는 것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냐?'는 한마디를 기대했던 마음이 상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끝내 남편과는 4년 전 갈라섰지만 '가장' 역할을 해오며 쌓인 병들은 아직 희숙 씨를 괴롭히고 있다.

◆경제력 없는 남편 대신 가장 노릇.생활고 계속돼

어릴 적 희숙 씨의 집은 동네에서 유명한 부잣집이었다.은행을 다니던 아버지는 대전에서 친구와 함께 주유소,택시 사업 등을 했고,벌이도 대단했다.그 덕에 1남 4녀 중 막내였던 희숙 씨는 고생이라는 걸 모르고 자라왔다.

하지만 희숙 씨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아버지 친구의 방만한 경영 탓에 하던 사업이 모두 망해 버렸고,그 여파로 가족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던 언니 오빠들과 달리 희숙 씨는 대학도 가지 못하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희숙 씨는 28살 때 대구로 왔다.친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뒤 재혼을 한 아버지가 대구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돼 희숙 씨는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됐다.

막상 결혼 생활을 시작해 보니 남편은 심하게 무심한데다 경제력도 없었다.그는 대신동 인근에서 장사를 하기도 하고,친구와 함께 부동산 사무실을 열기도 했으나 생활비를 집에 들인 일을 없었다.오히려 희숙 씨에게 용돈을 타 가는 실정이었다.

희숙 씨는 보험회사와 무역회사 등을 다니며 생계를 꾸려갔다.경제활동뿐 아니라 살림과 딸 수정(가명·37) 씨를 양육하는 것도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돈을 벌어도 생활은 늘 마이너스였고,저축은커녕 집을 살 때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해 살던 아파트도 경매로 넘어갔다.

◆몸 관리 소홀했던 탓에 암 재발해.고액의 비급여 의약품 부담 커

생활고를 겪던 희숙 씨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15년이다.가슴에 이물질이 자꾸만 잡혀 병원에 가보니 유방암 진단이 나왔다.당시에는 가입해 놓은 보험 덕에 의료비 부담이 크지 않았고,무사히 수술도 마쳤다.

암의 경우 재발 위험성이 커 수술 이후에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했지만 희숙 씨는 곧바로 생업에 뛰어들었다.지인에게 권리금을 매달 정산하기로 조건을 달고 술집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이 일을 하면서 그는 밤낮이 바뀌었고,주방일을 하며 평소 쓰지 않았던 근육을 써 어깨 회전근개파열도 왔다.

기어코 지난해 8월,makise잊고 있던 병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간과 뼈로 전이가 된 것이다.이미 수술은 힘든 상태였고,다행히 임상연구를 통한 항암치료가 가능했다.

문제는 치료에 쓰이는 약들이 모두 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의약품이라는 점이다.이로 인해 3주에 한 번씩 치료를 받을 때마다 약 180만원의 병원비가 든다.제약회사에서 약을 쓸 때마다 2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남은 금액도 희숙 씨에겐 부담이 크다.이미 그는 암이 재발된 후부터 카드 여러 개를 사용해 돌려막기식으로 병원비를 감당했고 한계점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현재 희숙 씨에겐 지난 3월부터 받기 시작한 기초생활수급비 75만원이 수입의 전부다.술 장사를 접은 뒤 악세사리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빌렸던 대출금도 약 4천500만원이 남았다.딸과 언니들도 본인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 희숙 씨를 돕지 못한다.

굳이 없는 돈을 쓰면서까지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며 처음엔 치료를 거부했다는 희숙 씨.다행히 의료진의 설득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고,조금씩 몸 상태가 호전되자 삶에 대한 기대도 다시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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