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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개혁특별위원회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개혁특별위원회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앞으로 상급종합병원(대형 병원)으로 지정돼 각종 혜택을 받으려면 중환자실 병상을 지금보다 최대 15% 늘려야 한다.중환자 진료 인원은 지금보다 최소 16% 늘려,월드컵 망원동전체 진료 환자 가운데 중증·응급 환자 비율이 절반 이상이 돼야 한다‘빅5(5대 대형 병원)’를 포함한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이 그 설립 취지대로 고난도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와 희소 질환자 진료·수술에 집중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5차 회의를 갖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필수·지역 의료 극복을 위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신청한 대형 병원을 대상으로 오는 9월부터 3년간 시범 사업을 한 뒤 2027년 초 제6기 상급종합병원 지정(3년 주기) 때 이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에 두드러기,복통을 호소하는 경증 환자가 몰려 정작 치료가 시급한 중증·응급 환자 치료가 지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그동안 의료계에선 “우리나라는 빅5와 동네 의원의 환자 특성이 거의 같다”,“대형 병원의 절반이 감기,월드컵 망원동두통 환자”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 환자 중 중증·응급 환자 비율은 39% 정도다.61%는 중등·경증 환자다.상급종합병원의 평균 중환자 병상(105개)도 일반 병상(1053개)의 10%밖에 안 된다.상급종합병원의 교수들은 “응급 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응급실 뺑뺑이’사태도,빅5의 암 수술 대기 기간이 1년이 넘는 것도,경증 환자의 대형 병원 점령이 주 원인”이라고 했다.

그동안 대형 병원들이 비(非) 중증 환자를 더 많이 받을 수 없는 구조적 원인이 있었다.대형 병원은 값비싼‘비급여 진료(건강보험 미적용)’가 엄격히 제한된다.건강보험공단의 지원과 통제를 받는 급여 진료가 대부분이다.진료·수술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그런데 대형 병원에 지급되는 의료 행위별 수가는 해외 주요국에 비해 절반에서 10분의 1 정도로 낮은 편이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수는 “저수가로 인해 빅5 등 대형 병원은‘1분 진료’로 병원당 하루 1만명 안팎의 외래 환자를 보는‘박리다매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우리나라가 해외 주요국보다 의사 수는 절반 이하지만 병상 수는 2배 이상인 원인”이라고 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대형 병원들은 인건비가 많이 드는 전문의 대신‘장시간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전공의를 다수 쓰면서,최대한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 병상 수를 경쟁적으로 늘려왔다는 뜻이다.의료계 인사들은 “대형 병원 입장에선 치료가 까다롭고 장시간이 소요되는 중환자보다 무난한 경증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했다.

이에 정부는 “2026년까지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의 중환자 병실 비율(10%)을 미국의 4대 병원 중 하나인 존스홉킨스대병원 수준(17%)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정부는 이를 위해 2026년까지 국내 대형 병원의 일반 병실을 최대 15% 줄이고 중환자 병실은 더 늘리게 하겠다고 밝혔다.전체 환자 중 중증 환자 비율이 최소 50%(현행 34%)가 돼야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가능하도록 기준도 바꿀 계획이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면 환자 질과 무관하게 똑같이 지급하던‘규모별(종별) 수가 가산율’제도도 폐지하기로 했다.지금은 상급종합병원이 중환자를 보든,월드컵 망원동경증 환자를 보든 의료 행위별 수가 가산율(15%)은 똑같다.대신 심뇌혈관 질환,고위험 분만,소아 응급 등 중증·응급 질환 진료를 많이 하고,월드컵 망원동치료 성과가 좋은 병원일수록 수가와 인센티브를 더 얹어주는‘차등 지급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이와 함께 전공의 비율이 40%로 높은 대형 병원 의료진 구조를 전문의와 진료 지원(PA) 간호사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정부는 그러면서 “중환자 진료 보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대형 병원이 중환자 치료에만 전념하게 하려면 관련 진료·수술 수가를 대폭 인상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정부는 응급 환자가 들어올 때를 대비해 당직 근무를 하는 의사,간호사의‘대기 시간’을 보상하는‘당직 수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지금까지는 수가 지급은‘치료 시간’기준으로 이뤄지고‘대기 시간’은 제외됐다.또 중환자 응급 수술 수가를 최대 300%,심장 스텐트(혈관 확장) 시술 수가도 최대 2배 올리겠다고 발표했다.이를 위해 앞으로 5년간 10조원 이상의 건보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의료계 일각에선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이날 정부 발표의 실현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재원인데,구체적인 재원 조성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한 빅5의 신경외과 교수는 “정부가 발표대로 실행을 하려면 건보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지금 전공의 한 명을 대체하려면 전문의 2~4명이 필요한데 여기에 드는 인건비만 최대 16배로 늘어난다”고 했다.정부가 법령 개정으로 경증 환자의 대형 병원 이용을 제한하거나 이들의 치료비 부담을 대폭 늘리지 않는 한 경증 환자 쏠림 문제는 계속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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