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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기업들,비상 대응
식품 회사 오리온의 감자 연구소 아그로팀 13명은 올해 초 환호성을 질렀다.10년 전 착수해 최근 박차를 가한 감자 신품종 연구에 결실을 본 것이다.이들은 감자 유전자 450개를 가지고 약 50만번의 조합 테스트를 하며 최적의 결합을 찾았다.이렇게 탄생한 신품종 감자의 이름은‘정감.앞으로 오리온의‘포카칩’과‘스윙칩’은 이 감자로 만들어질 예정이다.2000년 개발한‘두백’품종에 이어 24년 만의 감자칩 원료‘세대교체’가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오리온이 이렇게 새로운 감자 품종 개발에 매달린 것은 기후변화 때문이었다.이상고온 등의 영향으로 국내 감자 생산량은 2019년 69만t에서 2022년 48만t으로 급감했다.앞서 오리온은 경쟁사 제품을 이기기 위해 강원도에 살다시피하며 전분량이 높고 튀겼을 때 식감이 휼륭한 감자 품종을 만들었는데,이상기후로 감자의 맛은 물론 수확량도 늘려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기후위기 불똥이 튄 건 감자뿐만이 아니다.커피와 땅콩,페란토레스인삼 등 여러 농작물이 극한의 기후변화에 버틸 수 있는 품종 개발이 필요해졌고,이를 재료로 사용하는 식품 기업마다 초비상이 걸렸다.예측할 수 없는 날씨 변화가 농작물의 수확량뿐만 아니라 맛까지 흔들어 놓는 상황에서 식품 업계와 농작물 연구 기관들은 신품종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고온 잘 견디는 감자 찾기 나선 기업들
전 세계 식품 기업 중 감자 품종까지 자체 개발하는 업체는 오리온을 비롯해 미국의‘펩시코,페란토레스일본의‘가루비’세 곳뿐이다.감자칩‘레이즈(Lay’s)’를 만드는 펩시코는 인건비가 싼 베트남 달랏 지역에서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하지만 베트남은 열대기후이기 때문에 고원 지역에서 건기에만 재배가 가능했다.동남아 지역의 이상고온이 갈수록 극심해지자 펩시코는 열대 농경 조건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감자 품종‘FL2215′‘FL2027′을 개발했다.
감자칩을 생산하는 가루비도 기후위기와 질병에 강한 신품종을 개발했다.가루비는 일본 홋카이도에 감자 품종 개발 연구소를 설치하고 2017년 신품종‘포로시리’를 개발해냈다.가루비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생기는 해충과 질병에도 강한 감자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고 했다.
◇기온 변화 취약한 커피도 신품종 찾기 몰두
주요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과 베트남은 각각 가뭄과 폭염으로 극심한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커피 원두는 기온이 오르면 전염성이 강한 곰팡이 질병인‘커피녹병’에 걸리게 된다.영국의 비영리 자선단체 크리스천 에이드(Christian Aid)는 2100년까지 기온이 섭씨 1.5도만 올라도 커피 생산지가 지금보다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타벅스는 작년 10월 커피녹병에 강한 아라비카 커피 6품종을 개발했다.기존 아라비카 품종은 산미가 낮아 인기가 많지만,기온 상승에 예민한 편이었다.스타벅스는 개발된 신품종 원두의 묘목을 자사가 관리하는 커피 농가들에 나눠주고,주요 거래처 등에 판매하고 있다.
2022년 식물생명과학 분야 학술지인‘네이처 플랜트’에는 라이베리카 커피 품종이 기후변화에 잘 적응하는 품종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따뜻하고 낮은 고도에서도 잘 자랄 수 있다는 특징 때문이었다.최근 우간다 국립농업연구원(NARO)은 개량 품종인 라이베리카 엑셀라를 개발하기도 했다.
◇폭우에 강한 땅콩,고온 견디는 인삼도 개발
농작물 종자는 대를 거듭할수록 생산량이나 품질 등이 저하되는데‘우도 땅콩’의 종자도 30년 이상 지나 조금만 기온이 변해도 잘 자라지 않는 문제를 갖고 있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농촌진흥청은 우도 땅콩 신품종‘우도올레-1’을 개발하고 시범 재배에 나섰다.기온 변화와 병충해에 강한 신품종은 시범 재배 결과 수확량이 15% 늘어났다고 한다.
인삼도 마찬가지다.충남농업기술원은 인삼약초연구소에서 신품종‘금선’을 개발했다.고온에 잘 견디는 품종이었다.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양태진 교수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인삼 유전체 정보 해독을 해냈다.또 품종을 개발할 때 활용할 수 있는‘유전자칩’도 개발해 개체마다 품질이 균일하고 병충해에 강한 금선 품종 개발에 도움을 줬다.
식품 업계에서는 이제 신품종을 개발하는 데 가장 큰 목표는 양보단 적응력이라고 입을 모았다.권승구 동국대 식품자원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농촌진흥청 주도로 소비자가 원하는 품종의 개발을 진행해왔지만,기후위기가 피부에 닿을 정도로 현실화한 상황에서 기업과 국가 기관들이 신품종 개발에도 나서면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