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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끝>불법사채 방치 韓,독한 규제 日(上) 한국편“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습니다.”
2021년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했던 직장인 이철민(가명·33) 씨는 올 2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그는 조직에서 나온 뒤 지인과 함께 직접 조직을 차렸다가 2022년 10월 그만뒀다.
이 씨는 한국에서 불법사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대변한다.한국에선 대부업 등록이 식당을 차리는 것보다 쉽다.자본 요건인‘통장 잔액 1000만 원’은 등록할 때 한 번만 증명하면 된다.이후 출금해도 등록이 취소되지 않는다.이론상 같은 돈을 입출금하며 대부업체를 무한정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손해배상 공제료,배지환 kbo등록 수수료,배지환 kbo면허세 등 약 33만 원을 더 쓰면 등록증을 구할 수 있다.불법사채 조직은 이런 등록증을 약 200만 원에 사들여 여러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렸다.이게 수많은 피해자를 속인‘정식 대부업체’라는 이름의 실체다.
원래 정부는 최소 자본 기준을 5000만 원으로 정할 방침이었다.국회에는 이를 3억 원으로 정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하지만 논의 과정에서‘허들이 높으면 영세 대부업체가 폐업하고 음지로 숨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렸다.결국 2015년 개정된 법에는 최소 자본 기준이 1000만 원으로 정해졌다.
자본금을 여러 업체를 설립하는 데‘돌려쓰기’할 수 있다는 지적은 그때도 나왔다.“등록 이후 자본금 유지 의무를 추가하자”는 국회 보고서도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태생부터 한계가 명확했던 자본 요건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
불법사채 피해자를 돕고 있는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믿을 수 없는 대부업체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일본처럼 부채를 뺀‘순자산액’만 자본금으로 인정하고,설립 기준액도 최소 3억 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채로 벌어들인 수익을 환수하는 건 더 어렵다.현행법으론 법정 상한(연 20%)을 초과한 이자만 범죄수익으로 추징할 수 있다.불법사채를 하다 걸려도 빌려준 돈뿐 아니라 이자도 20%까지는 보장받는 셈이다.
따라서 불법사채를 뿌리 뽑는 데엔 금전적 불이익이 더 효과적이라는 제언이 나온다.벌금을 올리고,불법사채 계약 자체를 무효화해 업자에게 원금도 돌려주지 말자는 것이다.
정부는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법 개정엔 신중한 태도다.그 대신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불법사채 피해자 4명이 업자를 상대로 낸 계약 무효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공단은‘반사회적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명시한 민법 103조를 근거로 계약 무효를 주장할 방침이다.단,지금껏 이 조항으로 계약 무효가 인정된 사례는 없다.박 회장은 “일본이나 독일처럼 불법사채 계약을 무효로 해서 원금까지 뱉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수사 경찰과 전문가들은 채무자들이 불법사채를 접하는 주된 창구로 대부중개 플랫폼을 지목했다.피해자들의 증언도 일치했다.
대부중개 플랫폼은 대부업체 광고를 모아 보여주는 사이트다.약 30개가 영업 중인데,모두‘정식 대부업체만 광고 중’이라고 홍보하고 있다.하지만 취재팀이 검증한 플랫폼 광고 업체 62곳 중 36곳이 불법사채 조직과 손을 잡고 있었다.
정부와 플랫폼 업계는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아무나 플랫폼에 광고를 올리지 못하도록 플랫폼 업체들은 2017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등록증 제출을 의무화했다.대출 상담을 위해 플랫폼에 남긴 연락처를 업체들이 마음대로 열람하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2월부턴 연락처를 못 남기게 바꿨다.
대형 플랫폼 5곳을 회원사로 둔 대부중개플랫폼협의회 관계자는 “협의회 소속 플랫폼들은 등록증 사본을 확인하고 본인인증을 거친 뒤에 광고를 내보낸다.폐업한 업체 광고가 노출되는 것을 걸러내기 위해 매주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구멍’은 여전했다.불법사채 조직이 바지사장 명의로 등록증을 받고 본인인증까지 시키면 광고를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것.플랫폼에서 채무자 연락처를 직접 볼 수 없더라도 채무자가 광고를 보고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플랫폼 광고를 보고 전화한 이용자가 불법사채 조직에 넘겨져도 플랫폼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플랫폼은‘대부중개업자’로 분류되는데,지금처럼 광고만 올려주는 건‘불법 중개’행위로 처벌하기 어려워서다.관리·감독도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 있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부중개업자가 광고만 하는 건 해외엔 없는 영업 방식”이라며 “법에 명시된‘중개’행위를 폭넓게 해석하거나,그게 어렵다면 지자체가 아닌 금융당국이 직접 플랫폼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1)
‘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2)
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GKw-RO8lUHo)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김호경 기자
▽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
▽영상: 송유라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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