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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개 기업 세운 시부사와,"日 경제의 아버지"로 칭송받아
"경제활동과 도덕 양립" 강조했지만 한반도서는 물자 수탈·금융 장악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3일부터 일본 지폐에 새 인물들이 등장한다.그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큰 1만 엔 권의 주인공이 일제강점기 한반도 경제 침탈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이자 침략 전쟁의 근본이 된 '탈아입구' 사상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에 이어 1만 엔을 장식하게 된 이는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경영인 시부사와 에이이치다.
그는 '일본 근대 경제의 아버지'로,마르티니크 대 코스타리카"도덕 경영"을 실천하고 전파한 인물로 칭송받는다.
시부사와는 1840년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논어' '대학' 등 고전을 익혔고,메이지 신정부의 관리가 되어 근대 일본의 틀을 갖추는 데 앞장섰다.27살 무렵에는 파리 만국 박람회를 시찰하고 유럽 자본주의를 체험했다.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에 눈을 뜨게 된 계기였다.
귀국 후 메이지 신정부에서 대장성(大蔵省)·개정국을 거치며 조세·화폐·은행·회계 체계를 개혁했다.1873년에는 "상업이 부흥해야 나라가 선다"는 신념하에 관직을 떠나 철도·가스·전등·방직 회사 등 500여 개 기업을 설립했다.
대형 종합건설사 '시미즈건설'에서는 자문 역을 맡았는데,저서 "논어와 주판"을 기본 경영 이념으로 삼았다.경제활동과 도덕을 양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요지다.
시미즈건설의 미야모토 요이치 회장은 "경영 판단을 할 때,시부사와 씨에게 지도받은 사고방식이 언제나 근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대 일본 경제의 기초를 만든 것은 시부사와 씨라고 생각한다.회사가 시부사와 씨의 얼굴이 들어간 1만 엔 지폐를 많이 벌어들일 수 있게 (경영) 전제인 '논어와 주판' 사상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그는 연수 등을 통해 시부사와의 경영 철학을 젊은 사원들에게도 교육하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가 1만 엔의 주인공이 된 후로 '논어와 주판'을 읽으며 그의 사상을 공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NHK는 보도했다.서점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매대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저서가 가득 놓여 있으며,원본뿐만 아니라 현대 문체로 개정된 번안 본과 만화로 쉽게 풀어쓴 책도 출판됐다.
또 시부사와의 자손이자 경영 컨설턴트 회사 등을 운영하는 시부사와 겐(63)은 '논어와 주판'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세상이 지속가능한 번영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도 필요하고 도덕관도 소중하므로 이를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내용이 시대의 흐름과 부합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시부사와는 도쿄양육원·일본 적십자사 등 600여 개의 자선기관을 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며,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26년·1927년 연이어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의 행보는 달랐다.일본의 정치·경제·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인선과 경부선 등 철도를 놓고,이를 통해 한국의 농림·수산·광물 자원을 수탈해 일본으로 반출했다.
한국의 화폐 경제에도 침투했다.시부사와는 대한제국의 허가 없이 자신이 은행장을 맡은 제일 국립은행에서 일본 돈으로 교환 가능한 1엔·5엔·10엔 지폐를 멋대로 발행하기도 했다.조선에 독립적이고 근대적인 재정 시스템이 없는 틈을 파고들어 주요 민간 은행 자리를 꿰차고 금융권을 장악한 것이다.
사생활에서는 여성 편력 의혹이 제기된 바 있으며,한 일본 매체에 따르면 집 안의 종에게도 손을 댄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