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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
가세 기울며 학업·알바 병행… 영어학원 복사업무하다 사업 위해 필리핀행
야시장 떡뽁이집 개업 첫날 2인분 팔고 통곡… 관련책 탐독하며 '전화위복'
국내 첫 비건 시즈닝으로 승부수… 문전박대 딛고 세계 10개국 수출 성과
벌써 세번째였다.어렵게 찾아낸 위탁생산(OEM) 제조사에서 또 문전박대를 당했다.식품 제조업에 뛰어든 서른 두살 여성 사업가.업계에서 잔뼈 굵은 사람들이 모두 손을 저었지만.미련한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그는 직접 취합하고 공들여 분석한 데이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당시 미국 현지에서 소스류 중에도 매운 소스의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간장이나 마요네즈와도 격차를 벌였다.소금·후추가 아닌 시즈닝(분말 형태의 양념)의 성장은 검색량과 미디어 노출량 모두 눈에 띌 정도였다.뉴욕의 세련된 인플루언서가 김치를 담는 영상이 사람들의 스마트폰 화면에 떠올랐다.방탄소년단(BTS)과 영화 '기생충'의 나라는 김치의 나라로 새로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치 시즈닝'으로 K-푸드의 주역이 된 안태양(39·사진) 푸드컬쳐랩 대표를 서울에서 만났다.그는 '아마존 칠리 파우더 부문 판매 1위','현재 몽골과 중동 등 10개국 이상에 수출' 등 전례없는 기록을 쓰고 있는 사업가다.tvN 토크쇼 '유퀴즈 온더블록'에 출연해 대중에게도 그의 이야기가 알려졌다.사업 말고 안태양,개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추진력이 있고 승부욕이 강한 성격이에요.초등학교 때는 핸드볼 유망주였는데,체력의 한계를 느껴서 중간에 그만 두게 됐어요.운동만 했으니까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당장 학과 공부도 따라잡을 수가 없더라고요.중학교 내신으로 거의 전교 꼴찌라서 인문계 고교 진학도 어렵게 했을 정도였어요.그러다 오기가 발동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죠.초등 교과서까지 구해서 외울 정도였어요."
그러자 서울의 명문 대학을 목표로 할 수 있을 만큼 학업 체력도 자랐다.하지만 운동을 그만둬야 했던 때처럼,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3 때 금형 제작 일을 하던 부친의 사업이 기울었다.집안에 있는 물건들에는 말로만 들었던 '빨간 딱지'가 붙었다.수시 1학기에 서울여대 경제학과 합격 통지를 받고는 고3 내내 아르바이트(알바)를 했다.
대학에서도 한 학기를 다니면 다음 학기엔 알바를 해서 등록금을 벌어야 또 한 학기를 다닐 수 있었다.하루에도 두세곳의 알바를 구해서 거의 열시간씩 일을 해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가 어려웠다.친구들이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학원에서 복사하는 일을 하며 시급을 받았다.영어 공부가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 것도 돈이 드는 일이라서 포기했었다.
"학원에서 만난 동료가 유학생 출신이었는데 저한테 필리핀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요.그 때 수중에 300만원 정도 있었는데 그걸 들고 마닐라로 갔어요.학교에서 휴학을 너무 많이 해서 자퇴 처리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고민하다가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필리핀에서 사업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어요.저는 서울에서 그다지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잘난 친구들이 부모의 돈과 '빽'으로 쌓고 있는 스펙과 경력이 그에게는 없었으니까.그렇다면 고유한 '누군가'가 돼야 했다.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이었다.당시 동남아로 이주한 한국인들이 한국 음식점을 많이 차렸는데 필리핀 친구들이 거기 관심이 많다는 걸 느꼈다.야시장에서 떡볶이를 팔면 잘될 것 같았다.서울에 있던 여동생까지 월셋방 보증금을 빼서 합류했다.떡볶이 가게 이름이 지금의 K-푸드 브랜드가 된 '서울시스터즈'다.
"정말 반응이 안좋았죠,쪽박(웃음).첫날 100인분을 준비했는데,2인분 팔았어요.영업 끝나고 98인분의 떡볶이를 버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그 다음날이요?한 5인분 팔았나.TV에서 보면 음식 장사는 정말 쉬워보여요.아이템만 좋고 감만 있으면 다 대박나고 손님들이 줄을 서고 돈 많이 벌고."
한국에 있는 부모님한테 연락을 해 장사에 관한 책만 30권을 비행기로 부쳐달라고 해서 받아 보았다.공부하고 고민하고 또 고쳐가면서 일했더니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가게는 3년 만에 8개 야시장에 매장을 낼 정도로 커졌다.2012년에 현지 최대 유통사 GNP트레이딩에 서울시스터즈 지분을 넘기고 회사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합류했다.그 곳에서 한국식 베베큐 식당과 한국식 치킨집 론칭을 했다.
큰 조직에서 일을 해보니 떡볶이 장수보다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2017년 독립을 결심하고 푸드컬쳐랩을 설립했다.2020년엔 미국 아마존에서 그가 만든 김치 시즈닝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김치 시즈닝 개발에 3년이 꼬박 걸린 셈이다.
"제조업체들에서 그렇게 반대한 이유도 알아요.국내 최초의 비건 시즈닝인데다.식품의 경우 뷰티 제품과 달리 제조 기준이 까다롭고 초도물량도 훨씬 많아요.게다가 물류비 때문에 가격을 어느 수준으로는 올려야 했고,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프리미어리그 순위그 가격이 타당하다는 인상을 주려면 제품력만으로는 안되잖아요.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미국 수퍼에 갔더니 동일한 제품이면서 '글루텐-프리(Gluten-Free)'이거나 '비유전자 변형 식품(Non-GMO)'이면 가격이 훨씬 비싸고 고급 상품으로 인정받는 거에요.김치 유산균이 밀가루 음식 속 클루텐을 분해해서 소화를 돕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기 때문에 '이거다' 하고 생각했죠."
제품에 들어가는 유산균을 100% 식물성으로 만들었다.이를 위해 학계의 도움도 받았다.분투 끝에 국내 양념 소스 중 최초로 비건 인증을 받았다.제품은 아마존 출시 직후 초도물량이 '완판'됐고,약 7개월 만에 일본의 '시치미',베트남의 '스리라차' 등 각국의 대표 시즈닝들을 제쳤다.
이후에는 김치 시즈닝을 활용한 김부각,우동,짜장면,김치 육포,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프리미어리그 순위스낵,아몬드 그리고 캔 김치까지 출시해 호평을 받았다.K-푸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그의 꿈도 커졌다."이젠 미국에서도 페퍼 페이스트가 아니라 '고추장(GOCHUJANG)'이라고 쓸 정도로 K-푸드가 알려졌어요.하지만 오뚜기 케첩,하인즈 케첩 하는 대표 브랜드는 아직 없거든요.그런 K-푸드 대표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그리고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템을 베끼지만 말고,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대기업의 데이터를 더해 시너지를 내고,또 지분 투자 등으로 같이 '윈윈(win-win)'하는 시스템이 구축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