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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6·25입니다.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합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이 두 문장에서 시작됐습니다.최근 정치권을 달구는 자체 핵무장론 얘기입니다.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 이 글을 올리자 국민의힘 당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핵무장론에 대한 의견을 내놨습니다.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일본처럼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며 반 발자국 떨어진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금은 핵무장에 앞서 워싱턴 선언의 실효성 확보를 통해 대북 핵억제력을 강화할 때"라고 선을 그었고,윤상현 의원도 "한미 간 핵 공유 협정으로 사실상 핵무장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시기상조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나 의원만 홀로 '자체 핵무장론'을 펴고 있는 걸까요?아닙니다.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북핵 해법은 남북 핵 균형 정책뿐"이라고 강조했고,오세훈 서울시장도 "북한은 이미 핵을 소형·경량화했다.핵을 갖지 않은 이웃 국가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끌려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유승민 전 의원도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권리가 가장 완벽하게 적용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며 비핵화를 위해서라도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이쯤 되면 보수 진영 내에서도 핵무장론에 대한 찬반 여론은 팽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핵무장론이 대두된 건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심지어 그 뿌리는 이승만 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북한은 6·25 전쟁 이후 형성된 한미 군사동맹에 대응해 핵 개발을 시작합니다.1955년 '핵물리연구소' 창설이 그 시작이었죠.이듬해 소련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하며 연구용 원자로를 들여옵니다.이승만 정부 역시 1955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고 연구 인력 양성에 나섭니다.
우리의 핵무장론이 본격화한 건 박정희 정권 때 일입니다.미국 정부는 1969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베트남 전쟁으로 촉발된 반전 여론에 떠밀리듯 호응합니다.'세계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몸을 사리겠다는 것인데,그 결과 한반도에 불똥이 튑니다.주한미군 철수 계획이라는 엄청난 후폭풍이 밀려든 것이지요.
박정희 정권은 당황했습니다.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철수를 목격하고,베트남 전쟁에 대규모 파병을 하고도 '주한미군 철수'라는 뜻밖의 통보를 받았으니까요.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그래서 '핵무기 개발'을 선언한 것이죠.1972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당시 핵보유국들은 자신만의 특권적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심지어 1974년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더 이상 핵보유국이 늘어나선 안 된다는 판단하에 정보기관과 외교관 등 다양한 루트로 한국의 핵개발을 저지했습니다.한미동맹 파기까지 위협하며 '결정적 제재'를 앞세운 미국의 압력 끝에 한국은 1975년 NPT에 가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 사건으로 서거하기 직전까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박 전 대통령은 1975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실제로 개발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굴 소금물박 대통령은 한 전 비대위원장의 주장과 유사하게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 놓자'는 목표하에 핵개발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후 한국의 실질적인 핵개발은 주춤했습니다.하지만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한 후 핵무장론은 수시로 수면 위를 오르내렸습니다.2017년 대선 당시 한국의 핵무장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습니다.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1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자체 핵보유'를 언급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현재 달아오르는 핵무장론은 과거의 경우와 두 가지가 다릅니다.먼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 동맹에 준하는 상호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질 경우 '실질적 핵보유국'인 러시아가 참전할 명분이 생겼다는 점입니다.아직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핵탄두를 탑재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도 아직은 미완성이라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다릅니다.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가별 사용 가능 핵탄두 수에서 러시아는 미국(3,708개)보다 훨씬 많은 4,489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한미동맹에 따라 미국이 제공하기로 약속한 '유사시 핵우산'이 북한을 상대로는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지만,과연 러시아를 상대로도 정상적으로 펴질지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입니다.미국 본토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 위험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죠.따라서 우리는 '북러동맹의 카운터 펀치'로서 자체 핵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우려는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우리 정부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시사한 바 있습니다.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한국의 독자 핵무장에 대해 회의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백악관에 돌아온다면 극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이 밖에 미국의 전직 당국자와 언론에서도 한국의 핵무장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예전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여기에 여론도 우호적입니다.27일 통일연구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국민의 66%는 한국의 자체 핵무기 보유를 찬성했습니다.특히 핵무기 보유(44.6%)와 주한미군 주둔(40.1%) 간 양자택일 질문에서 올해 처음으로 핵무기 보유 선호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그러면 우리는 맘만 먹으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걸까요?국제사회의 제재와 상관없이 기술만 놓고 본다면,이미 2015년 무렵 "2년 내 핵폭탄 100개도 만들 수 있다"(서균렬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전문가의 평가가 있었습니다.이미 핵원자력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이룩했고,상당량의 사용 후 핵연료를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재료 수급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미동맹과 NPT 회원국으로서 우리 스스로 한반도 비핵화를 거부했을 때 맞게 될 충격파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입니다.수출 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우리 경제의 체질상 핵개발 선언 이후 가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무역 제재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 우세합니다.실제 수차례 자체 핵무장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론도 있습니다.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현재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차원에서의 대북 추가 제재 채택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핵무장을 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제재 채택을 추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현재의 불안한 정세를 감안했을 때 미국도 우리의 핵개발을 용인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또 "한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굴 소금물NPT 탈퇴만으로는 미국의 제재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여곡절 끝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북한이 섣불리 허튼 생각을 하긴 힘들어질 가능성이 큽니다.실제 우크라이나는 1994년 세계 3위 규모의 핵무기를 포기했습니다.그리고 30년 뒤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습니다.만약 당시 비핵화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물론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겠지만,상황은 지금과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억제력 측면에선 분명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과연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가 핵균형에 기반한 평화와 안정을 찾을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북한과 러시아가 과연 한국의 핵개발을 지켜만 보고 있을까요?핵개발 과정에서 더 큰 위협과 안보지형의 지각변동은 불 보듯 뻔합니다.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요동쳤던 안보 정세를 생각해보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을 기른다는 명분.하지만 그 힘을 기르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평화의 균열.참으로 난제인 자체 핵무장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은 단순한 이슈몰이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심사숙고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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