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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프린터·과학잡지 등에 쓰이는 종이 두께
더 얇으면 휘고,더 두꺼우면 자국만 생겨
1930년대 미국 출신의 캐나다 신경외과의사 와일더 펜필드가 처음 고안한 호문쿨루스 모형을 보면,두 손이 다른 어떤 신체 부위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손이 자극에 가장 민감한 부위라는 뜻이다.실제로 손가락에는 신체의 다른 어떤 부위보다 통증을 감지하는‘통각 수용기’라는 신경세포가 많이 밀집돼 있다.과학자들은 손과 손가락은 우리가 세상과 접촉하는 가장 중요한 신체 수단이라는 점에서,이를 인간 진화의 산물로 해석한다.
덴마크 공대 카레 옌센 교수(물리학)가 이끄는 연구진이 실험을 통해 이런 호기심 어린 의문을 푼 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피지컬 리뷰 E’에 발표했다.이에 따르면 칼날처럼 손가락을 벨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종이의 두께는 65㎛(0.065㎜)였다.
연구진은 실험을 위해 휴지,길 뱃살잡지,길 뱃살사무용지,책,명함,사진 용지 등 다양한 두께의 다양한 종이를 모았다.이어 사람 피부 대신 피부와 같은 밀도의 탄도 젤라틴 판에 이 종이들을 다양한 각도로 그었다.젤라틴은 동물의 가죽,연골,길 뱃살힘줄을 구성하는 단백질인 콜라겐에서 추출한 물질이다.이 가운데 탄도 젤라틴은 돼지 근육과 비슷한 성질을 갖게 만든 것으로 탄도 실험에 쓰이는 물질이다.
실험 결과 65㎛ 두께의 종이로 15도 각도에서 젤라틴 판을 그을 경우 종이의 절단력이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65㎛는 프린터용 도트 매트릭스 용지나 네이처,사이언스 같은 과학잡지에 쓰이는 종이의 두께다.
왜 하필 이 두께의 종이가 가장 위험할까?연구진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첫째는 이보다 더 얇을 경우엔 종이가 휘어지는 등 모양이 변형될 수 있다는 점이다.둘째는 이보다 더 두꺼우면 압력이 종이 전체에 분산돼 충격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종이에 베인 손가락 상처는 출혈이 거의 없다.종이는 피부 깊숙이 침투하지 못하고 피부의 상층부인 표피와 진피층에만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따라서 겉으로 보기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길 뱃살통각 수용기가 몰려 있는 부위여서 생각보다 통증이 심하다.출혈이 거의 없는 점도 고통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응고된 피는 상처를 봉합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피가 나오지 않으면 손상된 신경섬유가 계속해서 노출돼 만질 때마다 통증을 느끼게 된다.
종이 자체의 특성도 통증을 더해준다.종이의 끝은 겉으로 보면 매끄럽지만 실제로는 톱니처럼 들쭉날쭉하다.따라서 매끄러운 칼날보다 세포를 손상시키는 범위가 더 넓다.
종이칼은 손가락이 아닌 다른 물건도 자를 수 있을까?
연구진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두께 65㎛의 종이칼을 실제로 만들어 성능을 시험해 보았다.종이는 쓰고 버린 도트 매트릭스 용지를 사용했다.
그 결과 종이칼은 오이,사과,길 뱃살심지어 닭고기까지 자르는 놀라운 절단력을 보여줬다.연구진은 “종이칼날은 일회용이며 자석과 클립으로 고정시킬 수 있고 손잡이도 있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연구진은 “이 정도면 종이칼이 집에서 요리나 원예 등의 일을 할 때 기존의 금속 칼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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