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각석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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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典曰 蠻夷猾夏 二(夏)夷之防 明矣尙矣
春秋大一統者 乃以扶陽抑陰 尊王出伯(覇) 崇華夏攘夷狄 顯忠良誅亂賊者 此也 其尊崇炪(黜)攘 不亦凜二(凜)爾乎 盖皇極刱國(?) 王才拱傳 摠若干紀峕(時) 則聖人作興 任天下而爲君師 此包羲神農黃帝 爲三皇之紀 摠先世幾年 少昊顓頊帝嚳堯舜氏 以悳相承 此之五帝之紀 摠幾歲已 夏后受舜禪 商湯續禹服 周武王伐湯業 此三王之紀 摠幾世年 漢祖眦(?)周王之隙 仍起成帝 傳幾世 而曺(?)瞞綴(?)羿莽 暫(?)竊神器 然昭烈仗義 克終 總幾年 晉武値炎興 綿歷幾年 五胡亂華 宋齊梁陳 僅保名位 摠幾年 隋一 幾年 李淵父子 自發爲唐 傳幾世年 趙宋氏康紀 亦幾年焉 諸猲嚙宋 遂遇鐵木兒 蝕之焉 大明享天 傳幾世幾年 然努(?)哈(?)赤(?)蝕之 庶(?)幾絶
嗚乎 天道 非耶 是耶 奈皇昊不振何 或將永曆之連續耶 然四海洪洞 百蠻(?)跳梁 抑何峕(時)以定耶 且无乃六万來年 斯(?)入禽獸耶 曰今天地大閤閉 機栝在何(?) 必復見獯戎狄(?)夷(?)大統 以烘(?)燿瀁(?)溢(?)之日也 然自不勝憤怨 瀝血飮泣 陟此南嶽之天王 以寫(?)万世天王之統 嘻噫 悲夫
崇禎六甲子秋七月壬子朏 罔僕遺民
孤竹墨熙撰 花山權倫書
■번역본
서경 「제전(帝典)」(「순전(舜典)」)에 “만이(蠻夷)가 중하(中夏)를 어지럽혔다.”라고 하였으니,중하와 오랑캐가 사방을 경계로 한 것이 분명하고도 오래되었도다.춘추의 대일통(大一統)은 곧 양(陽)을 부지하고 음(陰)을 억제하며 왕도(王道)를 존숭하고 패도(覇道)를 내치는 것으로 화하(華夏:중화문명)를 숭상하고 이적(夷狄)을 물리치며 충량(忠良)을 현양(顯揚)하고 난적(亂賊)을 주벌(誅罰)하는 것이 그것이니,그 중하를 존숭하고 오랑캐를 물리친 것이 또한 늠름하지 않은가.
대개 황극(皇極)이 나라를 창업하고 왕도(王道)를 행할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받들어 전하였는데,총 얼마 동안의 기년(紀年)이 지난 뒤에는 성인이 태어나 천하를 책임지고서 임금과 스승이 되었으니,이것이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가 삼황(三皇)의 기년이 되며 모두 상고시대의 여러 해이다.소호씨(少昊氏)·전욱씨(顓頊氏)·제곡씨(帝嚳氏)·당요씨(唐堯氏)·우순씨(虞舜氏)가 덕으로 서로 계승하였으니,이것이 오제(五帝)의 기년이며 모두 몇 년이다.
하후씨(夏后氏)가 순(舜)임금의 선양(禪讓)을 받았고,상(商)나라 탕(湯)임금이 우(禹)임금의 하(夏)나라를 계승하였으며,주무왕(周武王)이 탕임금의 상나라를 정벌하였으니,이것이 삼왕(三王)의 기년이며,
nba 라이브 중계모두 몇 대 몇 년이다.
한고조(漢高祖)가 주나라 천자가 쇠미해진 틈을 엿보고서 일어나 황제가 되어 몇 세대를 전했는데,조만(曹瞞)이 유궁후예(有窮后羿)와 왕망(王莽)을 이어 잠시 신성한 기물을 훔쳤다.그러나 촉한(蜀漢)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의기를 떨쳐 잘 끝마쳤으니,총 몇 년이다.
진무제(晉武帝)가 염흥(炎興)을 만나 나라를 일으켜 면면이 몇 년을 이어갔다.오호(五胡)가 중화를 어지럽혀 송(宋)나라·제(齊)나라·양(梁)나라·진(陳)나라가 겨우 명맥과 지위를 보전하여 총 몇 년을 내려왔다.隋나라가 통일하여 몇 년을 지배하였으며,李淵 부자가 스스로 일어나 唐나라를 건국하여 여러 세대 몇 해를 전했다.
조씨(趙氏)의 송(宋)나라는 평안하게 다스려진 때가 또한 몇 년이다.그런데 북방의 여러 오랑캐가 송나라를 침범하여 마침내 타무르(鐵木兒)를 만나 그에게 멸망 당하였다.대명(大明:명나라)은 천명을 누려 몇 세대 몇 년을 전했으나 누르하치(努哈赤)에게 멸망 당하여 거의 명맥이 끊어졌다.
아!천도가 그릇된 것인가?옳은 것인가?어찌하여 황호(皇昊)가 떨치지 못한단 말인가.혹 영력(永曆)이 이어지려는 것일까?그러나 사해가 텅 비었고,온갖 오랑캐가 발호하고 있으니,또한 어느 때나 안정될 것인가?장차 6만 년을 전해 온 문화가 이에 금수(禽獸)의 지경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천지가 크게 닫혔다고 하는데,다시 열리는 기미는 언제쯤일까?오랑캐를 크게 통일하여 문명이 밝게 빛나고 넓게 퍼져가는 날을 반드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스스로 울분과 원통함을 금치 못하고서 피를 토하고 울음을 삼키며 이 남악(南嶽:지리산) 천왕봉(天王峯)에 올라 만세 천왕(天王)의 대일통을 기록한다.아!슬프다.
숭정(崇禎) 후 여섯 번째 갑자년(1924) 가을 7월 임자일 초하루 나라를 잃은 유민 고죽(孤竹) 묵희(墨熙)가 짓고,화산(花山:안동) 권륜(權倫)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