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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없는 충북 진천에서 즐기는‘湖캉스’
바다 없는 충북에서 호수는 중요한 관광 자산이다.충북 진천은 바다 대신 넓은 호수를 품고 있다.초평호가 대표적이다.수변을 따라 둘레길과 하늘다리가 조성된 데 이어 최근 출렁다리까지 개장하면서 초평호 둘레길 코스가 완성됐다.인근에 진천을 대표하는 볼거리 가운데 하나인 옛 돌다리인 농(籠)다리도 자리한다.
농다리는 문백면 굴티마을 앞 세금천(미호천의 지류)을 가로지른다.높이는 1.2m로 낮지만 길이가 약 94m,폭이 3.6m에 이른다.생김새가 특이하다.25개의 교각이 상판보다 넓어 옆으로 툭 튀어나왔다.지네의 발처럼 보인다.
진천 향토사를 기록한‘상산지(常山誌)’에 따르면 농다리는 고려 초기‘임 장군’이 축조했다.임 장군에 대해선 고려 개국공신인 임연 장군이라는 주장과 고려 2대 왕인 혜종(943∼945년) 때 병부령을 지낸 진천 호족 임희라는 주장이 있다.고려시대에 축조됐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리가 1000년 이상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세찬 물줄기를 거스르지 않는 과학적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사력 암질의 붉은색 돌을 유선형으로 물고기 비늘처럼 맞물리도록 올려 교각을 만든 뒤 상판석을 얹어놓았다.크기가 다른 돌을 교차로 쌓아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폭과 두께를 좁게 해 물길의 영향을 덜 받도록 했고 장마 때는 물이 다리를 넘쳐흐르도록 했다.농다리는 큰물에 일부 유실된 적은 있지만 완전히 떠내려간 적은 없었단다.
농다리를 건너면 고개를 만난다.예로부터 용고개,용두봉 등으로 불렸다.고갯마루에 용 조형물이 반갑게 맞이한다.고개를 넘으면 거대한 호수가 눈앞에 나타난다.초평호다.1958년 미호천 상류를 막아 처음 완공했고 종전 댐보다 2㎞ 하류에 다시 댐을 축조해 1986년 준공했다.저수량이 1378만t에 달하는 충북 최대 규모의 저수지다.
호수 주변에 현대모비스가 100억원을 투입해 2012년부터 10년간 가꾼‘미르숲’과 함께 초평호 제1하늘다리(130m),바카라 승률 높이기초평호 둘레길(3.6㎞)이 조성돼 있다.지난 4월에는 중간 교각이 없는 309m의 국내 최장 출렁다리인‘초평호 미르 309 출렁다리’가 개통하면서 제1하늘다리를 순환하는 초평호 둘레길 코스가 완성됐다.미르는 용의 옛말이다.잔 다리(중간 교각)가 많은 농다리와 잔 다리가 전혀 없는 롱다리이자 용(龍)다리를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미르 309 출렁다리 인근에는 맨발로 걸을 수 있는 1.8㎞ 황토 숲길도 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르 309 출렁다리로 향한다.이 출렁다리는 지난 4월 개장했다.국내 최장 무주탑 현수교다.중간에 주탑이나 교각이 없어 다리가 살짝 늘어진 형태여서 출렁거리는 느낌이 크다.다리를 걸어가면 아래로 푸른 물결이 햇빛에 반짝인다.푸른 보석 같은 풍광이다.
출렁다리를 건너 산책로를 따라가면 양쪽에 철근 탑을 세워 케이블로 연결한 하늘다리를 만난다.2012년 건설돼 저수지가 생기면서 끊긴 초평면과 농다리 인근을 연결해 준다.다리를 건너면 초롱길이다.수변탐방로를 걸으면 미르숲으로 돌아온다.
초평호를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초평면 두타산 중턱의 한반도지형전망공원으로 가면 된다.자동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전망대에 오르면 호수의 물길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안내판에는 이 호수의 모양을‘승천하는 청룡’에 비유했다.호수 가운데 툭 튀어나온 지형이 한반도를 닮았다며‘한반도를 품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진천에는 백곡저수지도 있다.1949년 축조됐고 1984년 제방을 증축했다.호수 변 식파정(息波亭)까지 가는 임도는 숲이 울창해 산책하기에 좋다.
식파정은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 뒷산 백곡저수지 수변에 있는 정면 2칸,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이득곤(李得坤)이 1616년(광해군 8년)에 자신의 호를 따 지은 정자다.원래 두건리 앞 냇가에 세웠다.이후 퇴락해 고종 30년(1893) 후손들에 의해 중건됐고,백곡저수지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고 둑 높이기 사업 등으로 수 차례 이건(移建)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식파는‘물결이 쉬어간다’는 뜻으로 욕심을 잠재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이득곤은 벼슬길에 나갈 것을 권유받았으나 혼탁한 정쟁을 멀리하고 향리에 정자를 짓고 은거해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양성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