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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前 국과수 법과학부장
35년 국과수서 마약대응 헌신
박유천·황수정·황하나 등
연예인·재벌3세 투약 밝혀내
프로포폴 모발 분석 첫 개발
“이젠 후학에 노하우 전수
마약과 전쟁 후방서 도울 것”
김은미 전 국과수 법과학부장.지난 2019년 4월,그룹 동방신기 출신 박유천은 마약 투약 의혹이 불거지자 기자회견을 열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는 한편에선 치밀하게 경찰 수사에 대비했다.모발을 탈색·염색하고 체모를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경찰이 진행한 마약 간이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경찰에 자진 출두하는 박유천의 모습은 당당했다.조심스럽게 그의 결백을 타진하는 여론까지 조성되기 시작했다.사건을 종결한 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검사 결과였다.그가 미처 제거하지 못한 다리털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온 것.며칠 뒤 박씨는 마약을 일곱 차례 투약했다고 자백했다.
당시 국과수에서 박유천에 대한 검사를 총괄했던 김은미 박사는 마약 수사의‘셜록 홈즈’라 불린다.그는 박유천 외에도 황수정과 로버트 할리,황하나 등 연예인과 재벌 3세의 마약 투약 사실을 집요하게 밝혀냈다.국과수에서 35년간 마약사범 검거와 마약 수사 과학화에 헌신한 김 박사가 지난달 27일 정년퇴임했다.퇴임식 날 김 박사를 매일경제가 만났다.
이화여대에서 약학을 전공한 김 박사는 “국과수를 직장으로 선택한 건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었다”고 했다.“당시 사기업에선 여성이 안정적으로 오래 일하긴 어려운 분위기였어요.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으면서 이름에‘연구’가 들어가는 곳을 찾다 발견한 곳이 국과수죠.”
김은미 전 국과수 법과학부장.김 박사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들어온 국과수지만 감사하게도 업무가 적성에 맞았다”며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사인을 밝혀내거나 미지의 마약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고 했다.30년 이상을 한 곳에서 일했지만,직장인이라면 흔히 겪는 권태기 한번 찾아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김 박사와 함께 한국 마약 수사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했다.2013년 연구진들과 함께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 모발 분석 기법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인 업적이다.마취유도제로 널리 사용되던 프로포폴은 국내에서 오남용 사례가 늘며 마약류로 분류됐다.당시 관련 논문은 세계법독성학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 마약 검사 기술과 장비가 발전하고 있지만,
월드컵 출국마약 개발·확산 속도는 이를 능가한다고 김 박사는 우려했다.그는 “30여 년 전엔 마약이 300종 정도였으나 지금은 신종 마약만 1200종이 넘는다”며 “기존 마약의 화학구조만 살짝 바꾼 새로운 마약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분자구조가 조금만 변해도 마약이 체내에서 분해되고 작용하는 방식이 달라진다.이에 맞춰 검사 방법도 새로 개발해야 한다.“요즘엔 미국에서 유행하는 마약이 6개월만 있으면 국내에서도 발견돼요.대응 시간이 촉박하죠.”
하지만 국과수의 마약 관련 업무량은 급증하고 있다.지난해 국과수에 접수된 마약류 감정 의뢰는 2018년의 3배,
월드컵 출국하루 평균 530여 건 수준이다.이를 25명 남짓한 인력이 모두 처리해야 한다.“신종 마약의 등장을 예측하고 검사법을 미리 준비하고 싶지만,매일 쏟아지는 감정 의뢰를 처리하기에도 버거운 현실이죠.”
김 박사는 지난 2월 국과수에 마약대응과가 신설된 것은 고무적인 성과라고 말했다.그는 최근까지 국과수 법과학부장을 역임하며 마약대응과 신설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2019년 발생한 서울 강남‘버닝썬 클럽 마약 투여 사건’이후 국과수에 마약 관련 증거물 의뢰가 폭증하기 시작했고,
월드컵 출국지난해 4월 적발된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유통사건은 국민의 불안감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어요.컨트롤 타워인 마약대응과 출범으로 마약 범죄에 좀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김 박사는 퇴임 후에도‘마약과의 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제가 선택한 국과수에서 35년간 후회 없이 일했어요.이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갈 생각이에요.개발도상국에 마약 수사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대학에서 법과학 후학을 양성할 수도 있죠.마약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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