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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매경DB]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매경DB]“저도 지쳤어요.세상에,30분만에 끝낼 수 있는 숙제를 몇 시간이고 질질 끌고 있다니까요.다른 짓을 하거나 빈둥거리고,딴 데 정신을 팔고 있으니까 그런거죠.결국 동생을 제쳐두고 큰 애 옆에 붙어있을 수 밖에 없다니까요.”

아,내 얘긴가 싶었다.아이가 크면 클 수록 매일매일 숙제와 씨름하는 시간이 길어진다.숙제가 많아서는 결코 아니다.길어야 30분,집중하면 10분이면 끝날 숙제를 붙들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큰 아이를 보면 속이 터진다.분명 학교에서는 모범생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왜 엄마 아빠 앞에서는 이렇게 산만한 아이가 되어버리는 걸까.답답한 마음에 “숙제를 다 하지 않으면 TV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하고 윽박질러보지만 소용이 없다.저녁에 퇴근한 엄마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모자랄 판에 한참을 숙제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는 아이를 보면 속상한 마음도 든다.도대체 얘는 왜이럴까,나는 어렸을 때 안 그랬던 것 같은데?(진실은 저 너머에)

사실 이 사례는 프랑스의 아동정신과 전문의인 프레데릭 코크만의 저서‘프랑스 부모들은 권위적으로 양육한다’에 나오는 이야기다.아,리토한국을 넘어 저 멀리 유럽에 사는 부모들도 나와 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숙제 씨름이야 사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 중 하나였는데,최근들어 조금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었다.눈에 띄게 큰아이의 투정과 짜증이 늘어난 것이다.동생에게 하는 행동도 무척이나 공격적으로 변했다.좀처럼 큰 소리를 내며 싸우는 일이 없었는데 물건을 뺏기도 하고,동생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다.자기 분이 풀릴때까지 몇십분이고 통곡을 하면서 울기도 했다.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알아봤지만 전혀 친구관계와 학교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매일 비슷한 일이 반복되니 부모 입장에서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처음에는 걱정만 한가득이었지만,갈수록 첫째에게는 화가 나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둘째가 안쓰러웠다.아이의 정서가 불안한 것 같아 보여 심리상담을 알아봐야하는지 가족들과 논의를 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책을 찾아보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심리상담을 받기 전 착하기만 하던 첫째가 왜 이런 행동을 보일까 싶어 주변인들의 조언을 구해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보거나 책을 뒤져보기도 했다.이때 찾은 용어가‘적대적 반항장애’였다.적대적 반항장애는 화가 나 있고 권위적인 대상과 자주 싸우며,복수심을 지속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분류하는 장애라고 했다.쉽게 화가 나고 과민한 기분,시비조의 행동,앙심을 품는 행동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이러한 상태를 의심해 볼 수 있다는 게 관련 장애에 대한 설명이었다.

어린아이들 다섯명 중 한 명 꼴로 이 장애를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큰딸의 약 일주일간의 돌발행동이 관련 질병에 대한 설명과 비슷했다.적대적 반항장애가 있는 친구들은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상실되어 쉽게 화를 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다.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잦고,어른들이 하는 말에 쉽게 대든다.아이의 행동들이 관련 장애 진단표에 있는 내용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이러한 증상들을 보이는 장본인인 나의 딸 역시 부정적인 기분으로 인해서 고통을 경험한다는 것을 알고는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

다만 나의 아이의 경우 관련 돌발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 일주일 정도로 길지 않았고,학교나 학원,친구들과의 모임에서가 아닌 오로지 집에서만 이런 행동을 보였다.이 경우에는 장소에 대한 거부감이나 특정 인물과의 갈등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사진 제공=픽사베이]
[사진 제공=픽사베이]
큰 아이가 갑자기 집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을까,곰곰히 생각해 본 결론은‘아빠의 부재’였다.더 구체적으로는 아빠의 부재로 인한 큰 아이의 불안도 상승이었던 것 같다.남편이 업무로 인해 한달 이상 해외로 장기 출장을 떠나게 되면서 집을 비웠고,아빠를 무척 그리워하던 큰 아이는 어느새 모든 일에 분노가 가득한 아이가 되어있었다.아빠 대신 할머니가 오셨고 베이비시터도 계셨지만 아무래도 자신에게 어른들이 쏟는 관심이 이전에 비해 부족해졌다고 느낀 것 같았다.이제 학교에 들어간 큰 아이를 정말로‘다 큰 애 취급’해 온 것도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한 원인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장나버린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고쳐줘야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책에서‘마법의 순간’을 보내라는 조언을 찾았다.긍정적인 태도로,하루에 아이와 20분에서 30분정도만 시간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프레데릭 코크만은 이 마법의 순간에는 아이에게 절대 야단을 치지 말라고 했다.만약 이 시간동안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퇴행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화를 내거나 나무라는 대신 대신 잠시 놀이를 멈추고 시선을 다른 곳에 두는 식으로 넘어가라는 조언이었다.부모가 아이에게 전적으로 긍정적인 말만 하고 긍정적인 태도만 보이면서 관심을 기울여주는 거이 이 시간의 주요 원칙이다.

둘째를 할머니나 시터에게 잠시 맡겨두고 첫째와 하루에 30분씩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30분간 화를 참는 것은 엄마 입장에서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화를 내는 대신 큰 아이에게 집중하며 웃고 떠들었다.한번은 둘이 아주 짧은 거리지만 지하철을 같이 타고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고,리토강아지에게 줄 간식을 사러 다녀온 적도 있었다.정말 놀랍게도 3일만에 아이는 변했다.일주일 내내 소리를 지르고 울다 지쳐 잠들던 큰 아이가 다시 깔깔 거리며 이야기를 하다 기절하듯 꿈나라로 떠났다.쥐를 잡듯 동생을 잡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너그럽고 양보 잘하는 멋진 언니가 되어있었다.놀라운 것은 한시간 두시간 질질 끌던 숙제시간이 30분으로 줄어든 것이었다.이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 사이에 남편이 돌아왔다.엄마와 마법의 순간을 보내고 안정을 찾은 딸은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주는 아빠가 돌아오자 더욱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다.여전히 가끔은 큰 소리가 나는 우리 가족은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짧지만 폭풍같은 순간을 겪고 나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 하나 뿐이었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다시 한번 부모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깨닫는다.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이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고 보여주기 위한 노력 역시 나의 몫이다.엄마는 아이의 세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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