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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26] 영화‘툴리’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념화는 사고를 확장한다.새로운 단어를 통해서 우리는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유하게 된다.일례로‘돌봄 노동’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돌봄 또한 노동이고,롯데 야구중계합당한 대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독박 육아’같은 말도 그렇다.일각에서는 자기 아이를 키우는 데‘독박’이라는 단어를 쓰냐며 비판적으로 보기도 한다.하지만 독박 육아라는 단어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육아는 혼자서 하긴 버겁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알게 했다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단어를 자꾸 예전에 없었던 방식으로 조합하며 사고의 한계를 깨뜨린다.

‘툴리’(2018)는 단어의 신선한 조합을 보는 듯한 영화다.육아가 힘들다는 건 대부분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별 감흥이 없다.그러나 장면을 조합하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우리는 육아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육아에 지친 말로는 보모 툴리를 고용하게 된다.[리틀빅픽처스]

두 자녀 워킹맘,셋째 탄생에 멘붕

워킹맘인 말로(샤를리즈 테론)는 고된 육아에 심신이 지쳤다.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데다가 둘째는 발달 장애가 있어서 더욱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여기에 계획에 없던 셋째까지 갖게 되면서 그야말로‘멘붕’이 온다.없는 형편에 야간 보모를 고용하게 된 이유다.

샤를리즈 테론은 육아에 혼이 나가버린 엄마의 상태를 리얼하게 표현했다.[리틀빅픽처스]보통 돌봄 노동을 하러 남의 집에 오는 사람은 자기 영역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데 신경을 쓴다.그건 나쁜 게 아니다.자기 업무가 무엇인지,무엇을 시키면 안 되는지 처음부터 알려주면 고용주나 피고용인이나 서로 오해할 일이 덜 생긴다.

모든 것을 도와주겠다는 보모,롯데 야구중계심지어 ㅇㅇ까지 돕는다는데

그러나 야간 보모인 툴리(맥켄지 데이비스)는 “나는 엄마를 돌보러 왔다”고 말한다.그저 아이를 보는 게 아니라 엄마의 필요를 채워주겠단 것이다.툴리는 매일 밤 갓난아기를 능숙하게 돌볼 뿐 아니라,롯데 야구중계집 안을 청소하고 과자까지 구워준다.말로의 얼굴엔 수년간 사라졌던 생기가 생긴다.식구들의 만족도가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남편은 바쁘다.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게임 삼매경이다.아침에 다시 직장에 돌아가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을 것이다.자기 아내는 육아휴직 중이니깐 특별히 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그 생각은 아내를 지치게 했다.[리틀빅픽처스]심지어 툴리는 말로의 부부관계를 도와준다.말로의 남편이 가진 성적 판타지가 웨이트리스 복장을 한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롯데 야구중계본인이 웨이트리스 차림으로 침실에 올라간다.매우 비현실적인 장면인데,말로는 심지어 남편을 유혹하는 툴리의 옆에서 보조까지 해준다.남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그만큼 말로는 툴리에게 의존했다.

살뜰히 자신을 챙겨주는 툴리의 도움 덕분에 말로는 활기를 되찾는다.그러나 말로와 툴리 두 사람이 술을 마시러 나간 어느 날 밤,교통사고가 발생하고 툴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간 남편은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보모의 도움으로 삶을 회복한 줄 알았던 아내는 과로에 수면 부족으로 몸이 축난 상태란 것이다.그녀에겐 정신 이상 소견도 있었다.툴리라는 보모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모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옆에서 말로를 이처럼 다정하게 지켜봐주던 사람은 누구였을까.[리틀빅픽처스]

돌봄은 소중하지만,삶의 전부가 되게 하면 안 된다

툴리는 사실 말로의 결혼 전 성이었다.고된 육아에 지친 말로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환상으로 소환한 것이다.꿈과 열정이 가득했던 청년기의 본인에게 보모 역할을 맡기고,녹초가 된 현실의 자신을 위로하게 한 것이다.

앞서 남편과 보모의 부적절한 관계는 사실 말로 본인과 남편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었다.그저 부부관계에서도 의욕적이었던 자기 모습을 찾고 싶어 또 다른 자아에 어린 말로의 역할을 맡겼을 뿐이다.

말로의 남편이 지닌 성적 판타지를 채워주기 위해서 웨이트리스 복장을 한 툴리.사실 그날 밤 있었던 일은 말로와 남편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었다.[리틀빅픽처스]“당신 없이 어떻게 지내냐”는 말로의 질문에 툴리는 대답한다.“당신을 돌봐야죠.샤워도 매일 하고 치실도 하고 가끔씩 페디큐어도 받아요.” 반복되는 일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자꾸 자기 공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야 한단 것이다.마음먹고 가는 해외여행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그 전에 틈틈이 숨 쉴 구석을 마련해야 한다.헬스장에 가서 하루에 한 시간 하는 운동만큼이나 업무 도중 스트레칭이 몸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에 채소를 손질하며 음악을 귀에 꽂는 말로의 모습은 그녀의 변화를 보여준다.세 아이와 남편을 챙기는 것 외에 온전히 자기를 돌보기 위한 행동도 곳곳에 끼워 넣는 것이다.남편은 옆에 슬며시 다가와 손질을 돕는다.가정을 세우는 기초 공사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닌 오늘을 함께 사는‘시간의 공유’인 것이다.

영화‘툴리’포스터.[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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