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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페어는 처음이에요.평소에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면 한 작가의 작품이나 특정 콘셉트에 따른 작품들만 보게 되는데,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여러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개막 둘째날 전시장을 찾은 강 양(14·수원시 영통구)은 눈을 반짝 거리며 전시장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평소 미술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는 “디자인쪽으로만 길(진로)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이곳에 와서 순수미술의 세계를 처음 접해보고 다양한 미술 분야를 알게 돼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경기 남부권 최초의 대규모 아트페어‘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이 지난 27일 VIP 프리뷰를 시작한 데 이어 30일까지 4일간의 축제를 이어간다.
화랑미술제는 40여년 전통의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이자 설립 10년 이상의 한국화랑협회 소속 갤러리(화랑)들이 시민과 콜렉터(수집가),바이어(구매자)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문화교류의 장이다.
특히 올 4월 코엑스에서 열린‘2024 화랑미술제’를 이어받아 광교 호수공원에 위치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경기지역의 인프라를 활용해 지역의 미술시장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비서울권에선 부산을 제외하고 처음 열리는 화랑미술제는 화랑협회에도 갤러리와 작가들에게도,시민에게도 실험적인 도전이다.
■ MZ 눈길 사로잡는 트렌디함부터 품격까지…어떤 작품,갤러리 둘러볼까?
이번 미술제에는 한국화랑협회 소속의 서울,경기,대구,슬롯 커뮤 ㅜㅁ부산,슬롯 커뮤 ㅜㅁ울산 등 국내 대표 갤러리 95곳,특별전 포함 60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2천5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랑 받는 블루칩 중진,슬롯 커뮤 ㅜㅁ원로 작가들의 유명 작품부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의 하이라이트(우수) 섹션 선정 작가,독특하고 감각적인 색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젊은 작가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눈길을 끌었다.전시 현장에는 미술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한 20~30대 MZ 콜렉터부터 외국인 관람객,유모차를 끌고 작품을 둘러보는 가족 단위 시민 등 다양한 이들이 모여 들었다.
유명 스포츠카 페라리가 눈길을 끄는 김명진 작가(갤러리가이아)의 작품은 전시 첫날 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판매 신호탄을 쐈다.김 작가는 큰 고래를 중심으로 젤리맨,캔디걸,마법사 등 다양한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세계관으로 유명한 팝아티스트이다.2023 키아프의 우수 작가 중 한 명인 그의 작품 속에는 무한대를 나타내는‘1/9999…9’라는 숫자가 눈에 띈다.무수히 많은 존재 중 하나인‘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돼 희망과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보다 젊고,신선한 축제를 목표로 삼은 이번 화랑미술제에는 1985년생 전후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포진했다‘대왕 오징어’를 소재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며 두터운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남진우 작가(스페이스 윌링앤딜링)가 대표적이다.
갤러리가이아의 김명진 작가와 마찬가지로 2023 키아프의 우수 작가 중 한 명인 남 작가의 작품에는 괴물처럼 보이는 대왕 오징어와 이를 물리치며 정의를 구현하는 듯한 히어로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청작화랑의 젊은 작가들이 선보이는 바다를 주제로 한 상반된 작품들 역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강렬한 색감으로 위압감을 드러내는 양민희 작가의 작품‘홍연’시리즈는 거친 비바람이 불어치는 제주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양 작가는 “바다에 돌을 들여다보면 어떠한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삶을 굳건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굳센 의지와 열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용암의 불타오르는 붉은 색깔은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다시 새롭게 무언가 시작될 수 있다는 작가 스스로의 깨달음이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기라 작가(청작화랑)의‘윤슬’시리즈는 마치 바다 깊은 곳에서 하늘 위를 올려다 보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와이어에 전기를 가해서 색을 입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는 반짝이는 잔물결을 표현한 작가는 밤과 낮 두 가지 시간대의 윤슬을 작품화했다.작가는 바다를 바라보면 유유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우리네 평탄한 일상과 닮아있음을 표현했다.
■ 중진 작가들의 작품이 건네는 품격
젊음으로 무장한 작가들이 감각적이며 화려한 색채를 뽐냈다면 이미 다수의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중진,원로 작가들의 작품은 미술제의 품격을 더했다.
솔로 부스 중 하나인 갤러리 미루나무의 최성환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어린 시절 풍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수박밭에 자리한 원두막에 벌러덩 누워있는 누군가,분홍빛 꽃이 만개한 들판 속 평상에 오손도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 등 가장 한국적인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최 작가의 작품‘산들바람’과‘여름방학’등을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원근법과 조금은 다른 점을 살펴볼 수 있다.새,사람,민들레 홀씨가 모두 같은 크기로 표현된 것이다.최 작가는 “서양 중심의 원근법과 달리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새든 사람이든 꽃이든 모두가 똑같이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여숙화랑 부스에서는 한국 모노크롬의 대가이자 단색화로 유명한 김태호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이제는 고인이 된 김 작가는 대표작‘인터널 리듬(Internal Rhythm)’시리즈는 아크릴을 20층 이상의 레이어(층)로 쌓아올리고 이를 깎아내며 탄탄한 격자무늬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박 대표는 “단색화는 구조 자체가 그림이 된다”며 “이는 한국 작가만이 할 수 있는 특징”이라고 말했다.이와 함께 부스의 한쪽 벽면을 차지한 박종필 작가의 작품은 꽃이 전하는 생기로움을 더했다.그의 작품에는 생화와 조화가 섞여 있다.생화와 조화가 한 공간에 있으면 차이가 없음을 통해 실제와 가상의 믹싱(혼합)을 나타낸 것이다.
토포하우스에선 유니크하고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회화와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빛을 머금은 선명하고 페인팅과 명쾌한 형태가 자유롭고 천진한 아름다움,행복을 발산하는 유준희 작가의 작품부터 19세기 남종화의 대가이자 서예가로 한국화 창시 집안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5대 손인 허준 작가의 현대적 산수화,시각디자이너 출신의 도예가로 팝아트의 제작 과정과 순수 미술의 정신을 아우르는 박선애 작가의 유니크한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 수원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영(young)한 미술제
수원컨벤션센터 1층에서 대표 화랑들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유리창 너머 호수공원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올라간 3층은 보다 다채롭고,수원과 경기도를 기반으로 한 지역적이며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자리 잡고 있다.3층 컨벤션홀에는 토크라운지,F&B 라운지,미디어 라운지,어린이 미술 프로그램과 더불어 각종 특별전이 마련됐다.
화랑미술제 신진작가 특별전‘줌인(ZOOM-IN) 파노라마’에서는 강민기,김종규,손모아 등 화랑미술제의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의 역대 선발 작가 12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이 가운데 이혜진 작가는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인 수원아트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 4기 작가이기도 하다.
로컬문화 콘텐츠 직거래 장터인‘수문장 아트페어’의 청년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수문장 0!아티스트’에도 관람객들의 관심이 이어졌다.감탄사‘oh’와‘young(젊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낸 해당 부스는 10월 있을 본 전시의 프리뷰 형태로 총 4가지 섹션으로 구분됐다.
단색과 추상성을 나타내는‘모노미니’섹션부터‘모노맥스‘칼라미니’를 지나 화려한 컬러감과 독특한 질감의 풍성함으로 무장한‘컬러맥스’까지 단계별,주제별로 시민들이 취향에 맞춰 전시를 즐길 수 있게 구분해놨다.
인정전과 해태를 표현한 이미연 작가의‘메멘토’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체성을 담아냈다.이 작가는 “변하지 않는 영원성의 금과 변화를 경험하는 은이라는 두가지 정체성의 대비를 통해 흐르는 시간 속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 무언가를 시끌벅적 사고파는 재래시장’도 한 편에 자리 잡았다.
“‘화이트 월’이 주는 위계감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유통 방식을 고민했다.그게 바로 사고 파는 걸 넘어선 행위가 이뤄지는 시장”이라는 김월식 무늬만뮤지엄 관장이 기획한‘2024 아트경기 미술장트-오타쿠 바자르’다.
이 곳은 예술작품이 단순히 거래 되지 않는다.한쪽에선‘오타쿠 극장’이 열리고,전시장 안에선 방석을 깔고 앉은 도사가 명리학을 토대로 작품 구입 컨설팅을 해준다.
미술 애호가들이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팔 통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획됐다.경기도 예술과 지역예술인이 어떻게 지속성을 갖고 활동할 수 있을까란 유통방식의 고민을 담은 실험 그 자체를 만날 수 있다.
■ 어린이 위한 도슨트 프로그램에 다채로운 강연까지
전시 마지막날까지 회차별 10명 이내의 만 5세~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나만의 시계를 만드는‘키즈 아트살롱’과 어려운 현대 미술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게 설명하는‘어린이/가족 도슨트’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3층 컨벤션홀 토크 라운지에서는 미술 전문 기자와 변호사,컬렉터,교수 등 다채로운 연사들이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강연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다.
이번 미술제는 그야말로 실험과 도전이다.경기 남부지역에서 처음 열린 이번 대형 아트페어가 미술시장의 불균형을 깨는 단비가 될지 지역 미술인들과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1980년대부터 한국 미술시장에서 컬렉션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온 박여숙 화랑 대표는 “이건희 컬렉션 등으로 현재 미술에 관한 국민 전체의 관심도가 올라갔다.지방은 이러한 구조가 너무 약한데,(‘화랑미술제 in 수원’을 통해) 미술시장의 저변이 확대된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바람직하다”며 “미술관계 기관과의 밀접한 연결이 이어지면 앞으로도 활발하게 수원에서의 미술제가 이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경임 한국화랑협회 총무이사(갤러리 위 대표)는 “처음 이 도시를 접했을 때 특히 광교 호수공원의 매력에 푹 빠졌다”며 “이곳은 경기지역의 풍부한 인프라를 통해 무궁무진한 미술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미술제와 자연의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라 느꼈다”고 말했다.이어 박 이사는 “앞으로 최소 3년간은 꾸준하게 수원에서 화랑미술제를 열 계획으로 미술시장의 저변 확대의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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