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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호 전 건교부 차관,근본 대책 외면한 채 반복되는 난맥에 일침
"동해 가스전도 합리적 의사결정 생략…DJ 정부 벤치마킹 필요"
최근 동해 가스전·가덕도 신공항 등 대형 공공사업을 둘러싼 갈등과 불신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가덕 신공항 사업의 경우 지난해 시사저널이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공동으로 전문가 108명에게 설문한 결과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서울-김포 통합,4대강 사업,레고랜드 등에 이어 최악의 공공사업 5위에 올랐다.올해 들어서는 10조원대 가덕 신공항 부지 공사 1·2차 입찰이 잇달아 무산되며 다시 우려를 키우는 중이다.논란이 재점화하지 않았다 뿐이지 나머지 4개 사업의 후폭풍도 '현재진행형'이다.
인천국제공항과 고속철도(KTX) 등 역사상 손꼽히는 초대형 국책사업 두 건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차관(71)은 6월19일 서울 종로구 집무실에서 가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제는 초대형 국책사업 추진기마다 벌어지는 대혼란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KTX·인천공항 추진 때도 반대 극심
김 전 차관은 건교부 신공항건설기획단장으로서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을,철도청장으로서 2004년 KTX 개통을 마음 졸이며 맞이했다.두 사업의 실무를 진두지휘했기에 책임감이 막중했다.결과는 국민 대다수가 알다시피 대성공이지만,개항과 개통까지 매 순간이 고비였을 만큼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 23주년,KTX가 개통 20주년을 맞았다.두 사업은 국책사업의 최고 성공 사례들로 꼽힌다.격렬한 반대 여론으로 인해 사업 추진 과정이 가시밭길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체감상 찬성론이 3,오르후스 gf반대론이 7 정도였다.정말 힘들게 사업을 추진했다."
반대론의 주요 내용은 뭐였나.
"인천국제공항 때는 현실과 동떨어진 김포국제공항 확장론,지반 침하설 등에 발목을 잡혔다.KTX 추진 때는 무차별적인 부실공사 지적과 경제적 타당성 문제 제기에 시달렸다.정치권과 학계,시민사회계에서 반대가 빗발쳤다."
KTX 사업 당시 철도 인프라나 기술이 열악한 와중에 사회적 공감대도 '제로'인 수준에서 시작한 터라 추진에 더욱 애를 먹었다고 김 전 차관은 회상했다.그는 1997년 5월 시사저널에 게재된 기사(393호 《생사 교차로에 선 '애물' 고속철도》 《부실 고속철도,책임 공방 거세진다》) 스크랩 자료를 보여주며 당시 여론에 대한 설명을 대신했다.
해당 기사에는 '전두환 정권에서 태동해 노태우 정권 때 착공된 KTX 사업은 정치적 의도가 과도하게 개입돼 있기 때문에 불결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새마을호로 4시간대 걸리는 것을 2시간대로 단축하기 위해 이처럼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구조물 일부가 부실하다는 안전 진단 결과가 불길하다'는 등 KTX 백지화론자들의 주장이 주류로 소개돼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KTX 사업이 아예 무산될 가능성도 있었나.
"그렇다.15대 대통령선거 직후 집권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더불어민주당의 전신)는 이전부터 결사 반대해온 두 사업을 백지화하려 했다."
난관을 돌파한 방법은.
"건교부는 오랜 기간 준비해온 두 사업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나도 1987년 사무관 시절부터 관련 업무를 담당한 실무자로서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다.인수위 관계자를 만나 '덜컥 백지화하지 말고 일단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해 달라'고 호소한 기억이 생생하다.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대통령 당선자)이 우리 요청을 받아들여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게 됐다."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두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민간위원회가 각각 구성돼 10개월 동안 중지를 모았다.10개월 후 보완된 계획이 나왔고,이것이 개항과 개통까지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반대를 위한 반대'를 고수하지 않고 국익을 고려해 입장을 바꾸는 결단을 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삼 대단하게 여겨진다."
2001년 3월22일 인천국제공항 개항식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100여 년 전 제물포 개항이 제국주의 세력의 강압에 의한 치욕이었다면,오늘날 신공항 개항은 전 세계를 향한,세계를 중심으로 의지와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주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와 영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인천국제공항은 현재 연간 여객 수용 능력 7700만 명,오르후스 gf화물 용량 500만 톤의 대한민국 대문으로 자리매김했다.올해 말 확장 공사가 마무리되면 연 이용객이 1억 명을 넘어서는 세계 3위 규모 공항으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2004년 4월1일 첫 운행에 들어간 KTX는 우리나라 간선철도망 최고속도를 기존 시속 150㎞에서 300㎞로 두 배 도약시키며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었다.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KTX를 타면 부산(2시간23분)·목포(2시간27분)·강릉(1시간49분)·안동(2시간28분) 등 국내 어디든 점심 전에 도착할 수 있다.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경제·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졌다.개통 20주년을 맞은 4월1일 기준 누적 이용객은 약 10억5000만 명에 이른다.5000만 국민이 한 사람당 스무 번 이상 KTX를 탄 셈이다.
김 전 차관의 주안점은 인천국제공항과 KTX 사업이 난관을 뚫고 성공한 데 있지 않다.꼭 필요한 국책사업은 응당 추진하고 그렇지 않으면 걸러내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담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인천국제공항과 KTX가 어렵사리 성공 궤도에 올랐지만,오르후스 gf이후의 공공사업은 번번이 난맥상을 드러냈다.특히 초대형 국책사업이 섣부르고 무리하게 추진되다 좌초해 사회경제적 혼란,국가 경쟁력 저하 등을 야기하는 일이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왔다.김 전 차관은 "더 심각한 문제는 실패한 사업에 대해 책임지거나 반성하는 선례도 거의 없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동해 가스전,합리적 의사결정 생략해 아쉬워"
공직에서 은퇴한 후 4대강 사업부터 가덕 신공항까지 여러 국책사업의 추진 과정을 지켜보며 든 생각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공무원 후배 등 관계자들에게 (인천국제공항과 KTX 관련 민간위원회를 구성했던) 김대중 정부 시절처럼 하라고 조언했지만,오르후스 gf받아들여지지 않았다.매번 난리를 겪으면서도 실패를 반복하니 안타깝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영일만에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한 후 속도전식으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사업 자체는 매장 가능성이 20%만 되어도 진행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국민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의사결정 구조 없이 발표부터 덜컥 해버린 건 너무 아쉽다."
국책사업 추진의 의사결정 구조가 과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퇴보하는 모습도 나타난다.인천국제공항과 KTX 사업 추진 당시 시민사회가 정부와 정부가 공인한 전문가들을 신뢰하지 않고 사사건건 반대 목소리를 내서 힘들었다.그런데 반대로 요즘 국책사업의 상당수는 메가 프로젝트임에도 별다른 논의 없이 그저 '지역 발전을 위한 일이니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하라'는 논리에 휩쓸려 휘뚜루마뚜루 추진되는 중이다.국가의 예산을 쓰는 일에 이토록 무감각해선 안 된다."
초대형 국책사업의 추진기마다 벌어지는 대혼란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인천국제공항과 KTX 사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복기하고 철저히 벤치마킹해야 한다.제대로 검토해 계획을 세우고 시민사회를 납득시키고 그 바탕 위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시간이 걸릴지라도 이것이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은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은 경북 상주가 고향으로 대구고,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일반 기업에서 근무하다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1987년 건교부 전신인 교통부의 정책총괄 기능을 하는 수송조정국 수송조정과 계획담당 사무관으로 발령받으며 초대형 국책사업 관련 업무를 맡기 시작했다.이어 1990년 수송조정과장에 보임됐다.1987년 10월 '동서전철 타당성조사 실시',1989년 3월 '고속전철 및 신국제공항 건설계획',1990년 6월 '경부고속전철 노선 선정안' 등 KTX와 인천국제공항 사업 추진에 큰 역할을 한 대통령 재가 문서를 직접 작성했다.1999년 12월부터 2001년 5월까지는 건설교통부 신공항건설기획단장을 맡아 인천국제공항 건설과 개항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김 전 차관은 공직에 '늦깎이'로 입문했음에도 뛰어난 업무 추진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으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2001년 2급 승진 후 1년 만에 1급인 건교부 수송정책실장에,다시 10개월 만에 차관급인 철도청장에 올랐다.철도청장으로 있던 2003년 3월부터 2004년 9월까지 KTX의 개통과 안착을 이끌고 건교부 차관으로 영전했다.바쁜 공직 생활 중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영국 리즈대에서 교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수영과 마라톤을 즐기는 스포츠광이기도 하다.공직에서 은퇴하고는 교통 정책을 비롯한 공공사업 분야 최고 전문가로서 자문과 후학 양성 등에 매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