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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를 비롯해 석학 30여 명이 소속된 국내 최초 순수이론기초과학 연구기관인 고등과학원에서만 정년 퇴임하는 석학들이 잇따라 나오기 때문이다.과학계에서는 '고급 두뇌'의 해외 유출에 대한 우려와 65세 정년을 맞는 과학자의 국내 활용 방안 논의 필요성 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26일 과학계에 따르면 2년 뒤인 2026년까지 고등과학원에서 정년을 맞는 과학자는 이기명 교수를 포함해 총 4명이다.이기명·박창범 교수와 입자물리학 권위자인 고병원·전응진 물리학부 교수다.2029년에는 이필진 물리학부 교수가 정년을 맞는다.
박창범 교수는 고등과학원 내 유일한 천체물리학 전문가,리버풀 챔스이기명 교수와 이필진 교수는 고등과학원 내 끈 이론 전문가 3명 중 2명이다.이들의 퇴임으로 고등과학원에서 수십년간 이어오던 천체물리학과 이론물리학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계산과학부',리버풀 챔스'물리학부','수학부' 단 3개 학부로 이뤄진 고등과학원은 이론·기초과학 분야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대학과 달리 교육할 의무가 없으며 오직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다.1996년 앨버트 아인슈타인,로버트 오펜하이머 등을 배출한 94년 역사의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를 본떠 설립돼 장기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기명 교수의 중국행에 이어 정년을 맞는 과학자들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고등과학원 소속 과학자들은 정년 문제로 평생 해오던 연구를 중단할 수도 있다며 불안해 하고 있다.
64세인 박창범 교수는 2021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받은 천체물리학 권위자로 현재 왕성하게 연구 중이다.지난해 박 교수는 우주의 가속팽창을 일으키는 암흑에너지가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질 수 있는 '제5원소'라는 획기적인 주장을 펼쳐 전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우주상수가 암흑에너지라는 그동안의 우주론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이론을 한창 검증 중인 박 교수는 "내년은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결정적인 시기인데 동시에 정년 퇴임해야 해 연구를 이어갈 수 없다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이어 "암흑에너지 연구는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하나의 팀이 돼 관측 데이터를 수십 년 넘게 모으고 분석한 다음에 결과가 나온다"면서 "정년 뒤 연구를 어디서 이어서 할지 의문이 드는 가운데 새롭게 연구원을 고용하기도 쉽지 않다"고 상황을 전했다.
'고등과학원 인사규정'에 따르면 고등과학원 교수 정년은 65세다.석학교수의 정년은 별도로 정하지 않고 있지만 예산 문제로 학부당 석학교수 지정은 1~2명에 그친다.현재 석학교수는 3명이다.
6월 퇴임한 최재경 고등과학원 전 원장은 "이기명 교수를 비롯해 석학교수를 늘리고 싶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어려웠다"면서 "궁여지책으로 임기 중에 일반 석학교수보다 처우,리버풀 챔스계약기간 등에 한계가 있는 고등과학원 내 연구센터별 석학교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센터별 석학교수는 5명이다.
한 고등과학원 교수는 "고등과학원은 IAS를 표방했기 때문에 설립 초기에 정년을 따로 정하지 않았고 암묵적으로 70세를 정년으로 하자는 규칙이 있어 고등과학원 초기 3명은 70세에 퇴임했다"면서 "2000년 초 고등과학원을 부설로 두는 KAIST 교수와 같은 정년 조건을 고등과학원에도 적용하며 65세로 규정에 문서화됐다"고 말했다.이기명 교수도 "최소 70세까지 고등과학원에서 꾸준히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고등과학원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정년의 '딜레마'로 연구를 이어갈 석학들의 해외 유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정년 연장을 거론하기에도 타 대학이나 연구기관과의 형평성 논란,리버풀 챔스청년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 축소 등 쉽지 않은 논의들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재경 전 원장은 "2019년 고등과학원에서 퇴임하고 국내에 연구할 곳을 찾지 못해 약 1년간 홍콩중문대,리버풀 챔스프랑스 낭시대에서 연구를 이어갔다"면서 "올 여름에는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이기명 교수는 "전 세계 학회를 돌아다니다 보면 70,리버풀 챔스80세 학자들도 많다"면서 "그들처럼 계속 연구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국내에 고등과학원을 비롯해 나를 불러주는 연구기관이 없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에 파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의 공세에 대한 우려도 있다.한 대학교수는 "새로 연구소를 만들어줄 테니 중국으로 오라라는 제안을 들었을 정도로 중국의 인재 영입 공세가 어마어마하다"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 사회가 수십년 간 투자했지만 정년으로 연구를 못하게 된 고경력 연구자들이 탐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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