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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安東)에서 안동(安東)으로
살을 에는 추위였다.대륙을 훑고 온 바람이 압록강 변을 서서히 얼리고 있었다.콧등이 시리고 눈시울이 아렸다.손가락이 꾸덕하니 말을 듣지 않았다.볼이 얼얼하더니 이내 말문마저 막혔다.
다만 압록강 물은 얼지 않았다.모든 풍경이 얼어 버려도 결코 얼지 않는 것이 있으니,100여 년 전 혹독했던 한 시대를 거스르고자 강을 건넌 분들의 열망이요,그분들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리라.압록강 변을 거니는 동안 뇌리에는 온통 한 어른의 말씀뿐이다.
'차라리 이 머리 베어지게 할지언정/ 이 무릎 꿇어 종이 되지 않으리라/ 집을 나선 지 채 한 달이 못 되어서/ 벌써 압록강 도강하여 건너버렸네/ 누구를 위해서 발길 머뭇머뭇하랴/ 돌아보지 않고 호연히 나는 가리라/'(국역 ≪석주유고≫ 참고) 2024년 2월,서간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의 <이십칠일도강>(二十七日渡江)을 읊조리며 나는 선생을 애도했다.
◆대의를 향한 망명
나라가 망했다.망국의 치욕과 죄책감으로 큰 어른들이 목숨을 끊었다.그러나 또 다른 어른들은 독립이라는 대의를 품고 두만강,슬롯 무료 스핀압록강을 건넜다.임청각의 주인 이상룡도 망명길에 올랐다.한반도 북녘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니 중국 단둥이었다.고향 안동(安東)과 한자까지 같은 단둥(옛 지명 안동)은 조선 독립 투쟁의 관문이었다.
단둥을 거쳐 상해로,북경으로,만주로 고단한 망명의 여정을 튼 독립지사가 한둘이 아니었다.선생의 선택은 멀리 흐르는 푸른 강물 같았다.굽이쳐 돌아갈지언정 꺾이는 강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나라가 망한 통에 가진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일궈 놓은 것이 있다 한들 그 또한 무슨 쓸모가 있으랴.대장부가 가야 할 길은 오직 대의를 향해 흘러가는 것일 뿐.
1911년 1월,노비 문서를 모두 불사르고 사당에 참배한 뒤 임청각 대문을 나섰다.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였다.경부선과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로 향했다.눈발 속에 고향이 아득히 멀어졌다.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에 도착하니 어느새 봄이 완연한 4월이었다.
선생의 나이 만 53세였다.선생은 이곳에서 신간회 출신 망명 인사들과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의 기반을 닦는 등 온 마음을 모아 항일 독립 투쟁의 길에 나선다.그리고 1925년 9월,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으로 선출된다.
◆대한민국의 집,임청각
고성 이 씨 입향조 이증(李增,1419~1480)은 세조가 단종을 축출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에 터를 잡았다.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것을 자처하는 은일(隱逸) 정신을 택한 것이다.셋째 아들 이굉(李汯)은 '다시 돌아온다'라는 뜻의 '귀래정(歸來亭)'을 세우고,이굉의 동생 이명(李洺)은 형조정랑의 벼슬을 그만두고 '푸른 기운이 영원할 집'이라는 뜻의 '임청각(臨淸閣)'을 세운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진짜 은일 정신은 숨어 사는 것이 아닌,잡다한 세속에 휩쓸리지 않되 대의는 반드시 받들어 따르라는 것을 유산으로 남긴다.
태백산맥의 높고 험준한 고개가 소백산맥과 나뉘는 지점에 강이 흐른다.한반도 영남을 먹여 살리는 낙동강이다.강물이 적시는 땅 어디쯤엔 예로부터 대의와 충의를 생명처럼 여기는 마을이 있다.대한민국 정신 수도 안동이다.안동을 이리 말하는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한 이상룡 선생의 고향인 까닭이다.
임청각은 낙동강 변과 자연스레 이어진 아름다운 집이었다.99칸이었던 대종택은 지금 절반인 60여 칸만 남아 있다.일제강점기 때 철로가 관통한 까닭이다.이를 두고 독립투사가 많이 나온 임청각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일제가 의도적으로 임청각을 관통하는 철로를 깔았다는 주장과 또 다른 여러 주장이 있지만,임청각이 훼손될 때 이상룡의 외아들 이준형(李濬衡,1875~1942)이 전전긍긍하다 부친의 유고를 정리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건 사실이다.
'국무령이상룡생가'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임청각은 더욱 웅장한 모습으로 객을 맞는다.영남산이 가파르게 흘러내린 산맥을 훼손하지 않고 임청각을 앉힌 까닭에 산이 집이고 집이 산인 것이다.선생은 산의 기운과 땅의 기운,그리고 낙동강의 기운을 충만하게 받으며 자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군자정(君子亭)이다.일곱의 돌계단을 디디고 군자정에 오르면 호기롭게 흘러가는 낙동강이 훤히 내다보인다.선생은 강을 바라보며 거스르지 않고 '한길'로 가리라는 의지를 품었을 것이다.나라가 망하자 '한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오직 독립만이 선생의 '한길'이었다.
군자정 문을 연다.어른의 정신이 서려 있으리라.조심스럽다.마음을 정갈히 하여 무릎을 꿇고 현판을 향해 정좌한다.'臨淸閣(임청각)',현판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임청각을 각인시킨다.벽에 빈틈없이 걸린 대통령들의 여느 표창보다 더 큰 권위는 바로 퇴계 이황의 친필 현판이다.
정침(正寢)인 사랑채 마당엔 우물이 있다.하여 사랑채 방은 우물방으로도 불린다.임청각의 너른 기운과 우물의 깊은 기운이 만나 우물방으로 모였을까.임청각의 큰 어른 이상룡,석주의 동생 이상동(李相東,애족장),이봉희(李鳳羲,독립장) 아들 이준형(李濬衡,애국장) 손자 이병화(李炳華,독립장),조카 이형국(李衡國,슬롯 무료 스핀애족장),이운형(李運衡,애족장),이광민(李光民,독립장) 종숙 이승화(李承和,애족장) 모두 우물방에서 탯줄을 잘랐다고 한다.
◆위패 없는 사당
군자정 동쪽 가파른 기슭엔 담이 높은 전각이 한 채 있다.현판도 없고 문마저 굳게 잠긴 은밀한 공간이다.사당이다.선생은 망명하기 전 조상 제사는 나라를 되찾은 후에 할 일이라며 위패를 모조리 땅에 묻었다.유교 사상이 강한 안동,고성 이 씨 가문에서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당 문 앞에 앉는다.충절과 청렴을 상징하는 배롱나무 그늘이 짙다.한길로 흐르는 강물이 여기서도 훤하다.나라가 없으면 가문도 없다는 독립의 염원은 이 사당에서 더 비장해졌을 것이다.순간 위패 없는 사당 전체가 하나의 위패로 보이기 시작한다.강인한 결단과 결의를 품고 사당을 걸어 내려왔을 선생의 마음에 내 마음이 포개진 것일까.울컥 목이 멘다.
선생은 생전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1932년 5월 중국 길림성 서란현에서 만 74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임청각은 흔한 양반가의 고택이 아니다.조선의 지맥을 잇는 영남산의 웅혼한 기운과 낙동강의 강인한 물줄기의 기운이 응집된 집이다.일제에 맞서 조선의 목소리를 낸 국무령 이상룡과 그를 따른 독립 유공 일가를 키워낸 집이다.
보아라,임청각에 피고 지는 무궁화가 어찌 그냥 꽃이랴.나라를 위해 모든 걸 걸었던 큰 어른 석주 선생의 충절과 애국의 상징이 아닌가.어른의 육신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갔을지언정 푸른 정신은 임청각에 남았다.
서간도에서 묻어온 흙과 매서운 바람이 임청각에 이르자 모두 풀어진다.임청각은 서간도를 기억하는 나를 불러 군자정에 앉힌다.경상도 땅 안동과 서간도의 안동이 결코 멀지 않음이다.
글 사진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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