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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렬 in 싱가포르] 정부의 AI 데이터센터 관련 로드맵이 중요한 이유
지난 1월,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인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일본에 클라우드 서비스 인프라 구축을 위해 약 20조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뒤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가 4조 원을,오라클은 11조 원을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일본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올해 발표된 세 회사의 투자 금액을 다 더하면 35조 원이 넘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5월 <한국경제>는 "아시아 데이터센터 허브,일본에 밀리는 이유 직시해야"라는 사설을 통해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산업 기반이 크게 약해진 상태"이고 "환경·에너지 규제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데다,전자파 발생 등 환경꾼들의 허구적 선동도 걸림돌"이라면서 탈원전과 환경 규제가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지난주 MBC는 AWS의 아시아 태평양 및 일본 에너지 환경 정책 총괄과 인터뷰를 했습니다.AWS는 지난해 한국 내 클라우드 인프라에 8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이번 인터뷰에서는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허가를 받는 것도 어렵고,발전소가 완공된 뒤에는 전력망에 연결하는 것도 어렵다"고 하소연했습니다.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른 나라로 투자 순위가 바뀔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한국에 데이터센터 투자가 꺼려지는 건 재생에너지 부족이 핵심 문제라는 겁니다.
<한국경제>는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하고,소두핏 헬멧MBC는 현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어 재생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서로 다른 두 주장 가운데,소두핏 헬멧투자하는 기업에서 하는 말을 좀 더 믿을 수 있지 않을까요?정권이 바뀐 지 언제인데 지금까지 전 정부 탓을 하는 것도 곱게 보이진 않습니다.
<한국경제>와 MBC가 서로 다른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전제조건으로 삼은 건 같습니다.정보통신 대기업(빅테크)들의 대규모 투자,즉 데이터센터 투자유치가 국익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겁니다.수십조 원의 외화가 들어오고,데이터 센터 건설 관련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니 좋은 일이라는 판단입니다.한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생기면 과연 좋기만 한 걸까요?
국가 전력의 7%가 데이터센터로
데이터센터 투자유치에 앞선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겠습니다.싱가포르에는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인 구글,AWS,오라클,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운영하는 70개 넘는 데이터센터가 있습니다.올해만 해도 구글이 50억 달러를 투자한 데이터센터가 완공되었고,AWS는 새롭게 88억 달러를 투자해 데이터센터를 확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싱가포르는 데이터센터를 짓기에 적합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동남아 국가 중 금융과 무역이 가장 발달한 비즈니스 허브인 데다,지리적으로도 동남아의 중심에 있고,16개의 해저 케이블을 통해 대륙과 주변 섬나라 모두를 연결하고 있습니다.정치적으로도 안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진,태풍,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기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기업들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이런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에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지난 2019년에 이미 3년 동안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를 중단한 적이 있었고,이후에도 데이터센터의 총량을 규제하고 개별 기업 투자 계획에 엄격한 심사를 해 일부만 허가해주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인공지능(AI) 시대에 꼭 필요한 데이터센터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다고 정부를 비판하고 있고,일본은 보조금까지 줘 가면서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데 싱가포르는 왜 거꾸로 가는 걸까요?그건 데이터센터가 전기와 물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반면 고용이나 경기 활성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글의 텍스트 검색을 위한 서버 역시 전기를 많이 사용하지만 지금 필요로 하는 AI용 데이터센터는 기존 검색에 비해 3배에서 최대 30배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합니다.데이터센터 하나가 쓰는 전력량이 200mm 반도체 웨이퍼 팹 하나에 필요한 양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해리슨 앤 헌터 에이전시 파트너스가 발표한 '데이터센터 소비전력량' 세계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4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전기를 데이터센터 운영에 쓰고 있습니다.싱가포르 전체 전력 소비량의 7%를 데이터센터가 쓰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데이터센터를 위해 필요한 건 전기만이 아닙니다.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을 이용하는데,대규모 서버의 경우 연간 물 사용량이 2억 갤런(약 75만 톤)에 이를 정도로 많은 물을 사용합니다.이 같은 물을 구하기 힘든 곳이 많아 북극과 가까운 곳에 데이터센터를 짓기도 하고,소두핏 헬멧아예 바닷속에 서버를 만들기도 합니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발전을 위한 천연가스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물은 말레이시아까지 파이프를 깔아서 수입하고 있습니다.물과 전기를 데이터센터를 위한 용도로 쓰기에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더군다나 싱가포르는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적도의 섬나라입니다.데이터센터를 위한 전기를 만들기 위해 천연가스를 태워 탄소를 배출하는 게 기후위기를 불러와 싱가포르를 물속에 가라앉게 만드는 자해적 행위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데이터센터는 넓은 땅을 차지하고 전기와 물을 많이 사용할 뿐 운영을 위해 많은 인원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빅테크 기업의 사업을 위해 땅을 내주고,전기와 물을 공급해 주지만 투자한 만큼의 고용효과가 없는 것입니다.쉽게 말해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데이터센터 규제하는 나라들
지난 5월 말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은 '그린 데이터센터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향후 싱가포르에는 데이터센터가 300메가와트까지만 추가 건설이 허용될 것이며,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경우에 한해 200메가와트가 더 허용됩니다.싱가포르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데이터센터만 짓겠다는 겁니다.
기존 데이터센터에도 에너지 효율을 향상하도록 지도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할 예정입니다.싱가포르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던 빅테크 기업들은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나 인도네시아의 바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자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는 걸 막는 나라는 또 있습니다.유럽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가 있는 아일랜드는 2028년까지 더블린 지역의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불허하기로 했습니다.법인세가 낮아 빅테크 기업들이 수많은 데이터센터를 지었고,그 결과 국가 전체 전력의 28%를 데이터센터가 쓰는 상황에 이르자 제동을 건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는 미국 버지니아주 역시 데이터센터에 대한 허가를 제한하기 시작했고,기업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유럽연합은 오는 9월부터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소비량과 이를 줄이기 위해 취하고 있는 조치를 보고서로 제출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다들 AI시대를 이야기하고,소두핏 헬멧AI를 위한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 게 당연히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데이터센터가 많아질수록 전기와 물을 많이 쓸 수밖에 없고,그 비용은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으로 국민 모두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입니다.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데이터센터 건설에 앞서 나갔던 국가들은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다시 돌아보는 중입니다.
한국전력공사 역시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력 계통에 무리를 줄 수 있음을 파악하고 올해부터 수도권에 신규로 데이터센터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지난해 개정된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5메가와트 이상의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센터에 대해 한전이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데이터센터와 관련된 정책을 기업인 한전에 맡겨 놓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요?
정부가 나서서 데이터센터 관련 규정을 정하고 국내 정보 보안을 위한 핵심적인 것과 불요불급한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데이터센터 운용을 위한 에너지도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로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일본에는 데이터센터를 짓는데 우리는 뭐 하느냐는 일부 언론의 설익은 비판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정부의 데이터센터 관련 로드맵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