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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95] 술과 타액으로 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나무 침대의 삐걱삐걱 소리와 쾌락에 젖은 인간의 교성이 고장 난 자명종처럼 밤새 울려 퍼집니다.어스름한 초저녁부터 달이 도시 저편으로 기울 때까지.욕망의 배설구와 같은 이곳은‘호어 하우스(Whore‘s House)’라고 불리는 성매매 업소.세상의 모든 도덕과 윤리도 이곳에서만큼은 질끈 눈을 감아버립니다.
말초적 자극이 가득한 이곳에 군복을 차려입은 일련의 남성들이 들이닥칩니다.술에 취한 채 벌거벗은 남녀의 머리채를 잡고 사정없이 집밖으로 끌어냈지요.곧바로 이어지는 매질.도덕을 다시 세우려는 신의 군단으로 보였습니다.
이들의 매질은 한집에서 그치지 않습니다.도시 전역에 퍼진 매춘 장소를 급습합니다.거리에는 나신의 남녀가 뒤엉킵니다.교성은 어느덧 고통의 신음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영국 왕 찰스 2세의 공식 정부이자,세간에서‘왕실의 창녀’라고 부르는 여인이었습니다.그들은 적었습니다.“가장 화려하고 저명한 쾌락의 여인에게,가난한 창녀들이 청합니다.” 마치 동료에게 구호를 요청하는 듯한 메시지.
풍자적 청원이 등장한 건 왕실이 그야말로 쾌락으로 가득한 공간이어서였습니다.왕 찰스 2세는 공식적인 정부만 14명을 뒀을 정도였지요.궁정을 두고‘윗것들의 창녀촌’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쾌락에 빠진 정치적 무심함은 역설적으로 영국이라는 나라를 분열에서 봉합하는 단초가 됩니다.
1658년,그의 피난이 어느덧 10년이 되어가던 해.조국 영국에서 다시 격변이 일어납니다.의회파의 수장으로‘호국경(The lord of protector)’으로 군림한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한 뒤,아들 리처드가 그 자리를 계승했기 때문이었습니다.특정 혈통에 의한 권력 계승을 없애고자 했던 혁명의 정신이 오염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호국경’체제는 청교도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입니다.종교적 근본주의 국가였다는 뜻이었습니다.춤,연극,축제 등 모든 향락을 금지하는 욕망을 억압하는 체제.심지어 크리스마스 축제까지 가톨릭 축제라는 이유로 금지하기도 했습니다.욕망의 압력을 느슨히 풀어주지 못하는 국가 체제는 위기를 맞는다는 걸 리처드 크롬웰은 몰랐습니다.잉글랜드 시민들은 외칩니다.“크롬웰은 꺼져라,우린 왕 찰스를 원한다.” 왕가의 복원이었습니다.내전 11년만이었습니다.
찰스 2세의 첫 취임 일성은 정치적 보복이었습니다.아버지를 죽인 올리버 크롬웰의 시체를 꺼내 네 조각으로 잘라 런던 시내 곳곳에 걸었지요.일부 런던 시민들은 찰스 2세가 다시 절대주의 왕정체제를 구축할까 우려하기도 했습니다.찰스 2세의‘절대왕정’은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대신 침실에서 왕의 권위를 내세우기로 하면서였습니다.절대왕정을 추구하던 아버지 찰스 1세가 어떤 식으로 삶이 끝났는지를 그는 잘 알았습니다.의회와 손을 잡고,예민한 종교적 문제는 가급적 테이블에 꺼내지 않았지요.한발 물러서는 정치의 힘을 찰스 2세는 알고 있었던 셈.
바바라 팔머는 찰스 2세만큼이나 호색한이었습니다.시중을 드는 이들과도 자유롭게 잠자리할 정도였지요.우연히 그녀의 침실을 방문한 찰스 2세에게 발각된 일도 있었습니다.관대한(?) 찰스 2세는 그런 바바라 팔머를 용서합니다.자신의 하체가 자유롭듯,파트너의 호색에도 눈을 감을 줄 아는 배포였을까요.그것도 왕의 기질이라면 기질일지 모르겠습니다.
1665년 흑사병이라는 대역병으로 10만명이 죽어 나가고,1666년 런던대화재로 도시 80%가 불에 타버렸지만,잉글랜드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왕당파부터 의회주의자까지 고른 인재 등용이기도 했지요.다섯 사람(클리포드·앨링턴·버킹엄·애슐리·로더데일)의 앞 글자를 딴 CABAL 체제의 시작이었습니다(다만,cabal은 현재 밀실 카르텔을 일컫는 의미로 변했습니다).
찰스 2세는 여러 여인에게 침실을 공유하듯,권력도 여러 사람에게 분배합니다.그는 때로 의회를 해산하고,측근을 통해 정치를 좌지우지하기도 했지만,절대왕정이라는 섬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아버지의 피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찰스 2세의 통치 기간이 25년이나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이었습니다.
왕실이 학문을 직접 양성하는‘왕립학회(Royal Society)’가 창립된 것도 찰스 2세 치세에서였습니다.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별의 움직임을 계산한 에드먼드 할리,세포를 발견해 미시세계의 구조를 드러낸 로버트 훅이 왕립학회의 아이들이었습니다.오늘날 관광지로 유명한 그리니치 천문대 역시 찰스 2세의 손때가 묻은 건물입니다.세계 시간의 표준인 그리니치 평균시가 여기서 나왔지요.
찰스 2세는 자신의 사생아들을 모두 인정하고 귀족 작위를 내려줍니다‘피츠로이’라는 영국의 명문 가문이 이때 나왔습니다.피츠는 중세 잉글랜드 왕실의 언어였던 노르만어로 아들이라는 의미였고,로이는 왕을 뜻합니다.왕의 아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었지요‘왕위계승권’은 없었지만,왕의 자식으로는 인정받은 것이었습니다.
우직한 성격으로 무엇보다 도덕적인 삶을 이상으로 여기던 인물이었습니다.영국 시민들도 너른 마음으로 그를 맞이 합니다.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신념이 심겨 있었습니다.“왕권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
영국 내전 이후 사라진 왕의 상비군을 다시 만든 배경입니다.개신교 국가인 잉글랜드 요직에 가톨릭교도들을 배치하고,더 이상 가톨릭을 믿는다고 처벌하지 말 것을 강요합니다.이에 반발하는 개신교 주교들을 체포합니다.그의 올곧은 신념 속에서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688년 영국 시민은 슬기롭게 국왕을 바꿔버립니다.네덜란드로 시집간 제임스 2세의 딸 메리 2세와 남편 윌리엄 3세를 공동군주로 맞이하지요.무엇보다 그들이 개신교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던 덕분에 훗날 역사가들은 이를‘명예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의회주의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제임스 2세의 비극은 형 찰스 2세의 통치술을 배우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하체의 욕망은 과감히 뽐냈으나,정치적 야망은 숨길 줄 알았던 유연성.사람의 본성과 권력욕을 읽고 이를 이용할 줄 아는 통찰력.국가라는 기계는‘도덕’을 엔진으로 삼지 않는다는 걸,제임스 2세는 알지 못했습니다.
ㅇ영국 왕 찰스 2세는 내연녀를 14명이나 뒀을 정도로 호색한이었지만,역설적으로 이 시기 영국의 국력은 크게 상승했다.
ㅇ대신에 의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찰스 2세는 과학과 문화 지원에만 힘썼다.
ㅇ아버지 찰스 1세가 권위주의 통치로 목이 잘렸다는 사실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ㅇ찰스 2세가 죽은 후 도덕주의를 강조한 제임스 2세가 즉위했는데,그의 엄격함에 반발한 시민들이‘명예혁명’으로 군주를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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