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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의젓하고 잘해 나가고 있다".정신과 의사가 들려준 위로의 말【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서울,경기도 가평,부산,제주,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여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아이의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했다.조용히 아이의 손을 거머쥐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긴장돼?"
"어,상담이라고 하니까 괜히 떨리네?"
"너무 긴장하지 마.그냥 편안하게 얘기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향한 곳은 정신의학과 병원이었다.새학기증후군인지 올해 중학교에 입학 후 부쩍 예민하고 힘들어하는 아들과 함께 찾은 곳이었다.
새학기 적응이 어려운 내향인 아이
아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은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싫다'라며 앓는 소리를 해댔다.친한 친구가 한 명도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며 최악의 반 편성을 탓했다.입학하고 며칠 동안 점심을 혼자 먹었다는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아렸다.더 이상 예전처럼 미주알고주알 쫑알대며 자기 얘기를 쏟아내는 나이가 아니라 격동의 시기를 보내는 중인 아이의 속마음이 더욱 궁금했다.
내향인 아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내내 조급하고 불안했다.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대신 학교에 가서 친구를 사귀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더 이상 아이의 활동 반경에 내가 끼어들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온 산이 연둣빛으로 물들고 만물이 소생하는 이 계절에 시든 잎처럼 축 처진 아들을 보며 도움받을 길이 없을까 고민했다.
"우리 정신과 상담 한번 받아볼까?"
뜻밖의 제안에 남편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뭐든 시간이 해결해 준다며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던 그는 '뭐 그렇게까지?'라고 나를 유난스러운 사람 취급했다.나와 비교해 아이를 마주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남편이라 진지하게 아이의 상태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정신과가 당장 꼭 죽을 것처럼 힘들어야 찾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일렀다.
아이에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고민이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부모인 우리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문제가 있다면 치료를 받고,로우 바둑이 족보없더라도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 같았다.무엇보다 당사자인 아이의 허락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정신과?엄마 생각엔 내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아이도 '정신과'라는 말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정상과 비정상의 정신 상태를 누가,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는지 한참 동안 멍해졌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 가잖아.정신과는 비정상이라 가는 곳이 아니라,맘이 힘들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데야.몸만큼이나 중요한 게 마음인데 소홀히 하면 안 되잖아.너 엄마 아빠한테 못하는 얘기도 있을 테고,의사 선생님과 얘기 나눠보면 어떨까?엄마 아빠도 의사 선생님께 힘든 마음 좀 털어놓고 싶은데."
"금쪽같은 내 새끼 뭐 그런 건가?"
심각하던 아이는 피식 웃더니 내 제안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여 주었다.
정신의학과 예약을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다 깜짝 놀랐다.평소 아이의 알레르기 질환으로 정기진료를 받는 대학병원에 전화했다.정신의학과는 8월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다른 병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초진 예약은 6개월에서 일 년 이상 기다려야 한단다.한 정신의학과 의원은 올해 초진 예약을 아예 받지 않는다고 했다.소아정신과의 사정은 더했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니.예전처럼 정신과에 가는 것을 쉬쉬하거나 흠으로 생각하는 인식은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감기에 걸리고 상처가 나면 병원을 찾듯 마음이 힘들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전 진료 취소 건이 있어 예약할 수 있었다.다행히 그 사이 아이는 맘 맞는 친구를 한 명 사귀었고,빈펄 카지노학교 생활도 제법 적응을 했다.
어쩌면 잘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결석을 하고 찾은 병원에서는 진료 시간 40분 전에 내원을 요청했다.진료 보기 전에 아이와 내가 미리 작성해야 하는 설문이 생각보다 많았다.나는 7페이지,아이는 4페이지에 달하는 질문지를 적어냈다.거침없이 술술 답할 수 있는 문항이 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엔 오랫동안 펜을 들고 있었다.
깨알 같은 질문지를 작성 후 대기실에 앉아 기다렸다.아이의 이름이 호명되었다.아이 먼저 진료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그 뒤 부모만 따로 들어오라고 했다.
온화한 인상의 전문의 선생님이 맞아주셨다.긴장했던 것과 달리 아이는 자신의 속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 같았다.남편과 나도 아이에 관한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또래 친구 사귀는 것을 힘들어하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주 걱정거리였다.
선생님은 남편과 나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인간관계,사회성에 관해 물어보셨다.결국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을 유지하는 남편과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고 나면 기가 빨린다는 나의 대답을 듣고는 '콩 심은 데 콩 나고,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씀을 하셔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상담 후 선생님은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아래 몇 가지 솔루션을 제시했다.
하나.아이와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라.캠핑하거나 자전거 타기 같은 활동이다.힘든 신체 활동 후 쉬는 틈에 속마음을 털어놓기 쉽다.많은 경험이 타인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둘.가족이 넷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아빠와 아들,딸과 엄마(혹은 반대)로 따로 시간을 가져라.화목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울 수 있다.
셋.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줘라.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의젓하고 잘해 나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나는 어쩌면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세 살 아이를 키우던 과거도,열네 살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늘 처음인 우리가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는 건지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었달까.살얼음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다.
전문가의 해결책을 듣고 나니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잡히는 것 같았다.다음 달에 다시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기로 했다.
진료실을 나오자,대기실엔 빈틈없이 환자들이 앉아 있었다.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아빠도 보이고,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20대의 젊은이도 보였다.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을 찾았을 사람들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병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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