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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도·소매시장 '한산'…"카네이션 안팔린다" 한숨
꽃이 '선물'이던 시대 지나…실용성과 가성비가 기준
어버이날 '카네이션' 언급량도 전년 대비 10% 감소

서대문구 근처 꽃집,카네이션을 진열해 놨지만 하나도 팔리지 않은 모습/사진=유지희 기자
8일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 꽃집 골목은 어버이날임에도 한산했다.유리 진열장 너머엔 화려하게 핀 카네이션이 빼곡했지만 가게 안에 손님은 없었다.5월 최대 대목이어야 할 이날,꽃집마다 '곡소리'가 흘렀다.서대문구에서 40년째 꽃집을 운영 중인 양 모 씨는 "경기 불황이라고 해서 지난해의 절반 정도만 준비했는데도 하나도 안 팔렸다"며 "꽃집은 지금이 대목인데 올해는 정말 가게세도 못 내고 죽을 지경이다.어마어마하게 꽃이 남아서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양 씨는 "대학교 길목 가판대에서 좀 팔아볼까 했는데 단속하니 거기서도 팔지 못하고 정말 난감하다"고 덧붙였다.

5년째 이대 인근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아무래도 경기도 안 좋아 작년 대비 30~40% 정도 매출이 줄었다"며 "작년 수요 생각해서 올해 물건 가져왔는데 수요가 안 받쳐주니 재고가 나온다.카네이션은 시즌 꽃이라 안 팔리면 다 버려야 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김모 씨가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카네이션 바구니는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지만 지나가는 이들에게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

카네이션을 가판대에 진열해 놨지만 하나도 팔리지 않은 모습/사진=유지희 기자
마포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송 모 씨는 "우리 가게는 인스타그램으로 입소문을 좀 타서 매출이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닌데 주변 다른 꽃집 사장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며 "5월 어버이날,프라그마틱 슬롯버프스승의날이 대목이라는 건 옛말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꽃집 직원 김 모씨는 "작년 대비 손님이 확실히 많이 줄었다"며 "예전 같으면 이 앞쪽에 있는 바구니들은 다 팔렸어야 했는데 그냥 한두 송이 저렴한 꽃만 조금 팔리고 큰 바구니나 꽃다발은 거의 나가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카네이션을 구매한 이규연 씨는 "부모님이 꽃을 좋아하셔서 준비했는데 한 바구니에 8만9000원 정도 하더라.남자친구 부모님것까지 준비하느라 17만 원 정도 썼다"며 "요즘 꽃값 정말 비싸다.내년에도 꽃을 사야 한다면 시간이 좀 들고 번거롭더라도 도매상가를 가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속터미널역 근처 꽃 도매시장 카네이션/영상=유지희 기자도매 시장도 상황은 비슷했다.이날 오전 9시 30분쯤 찾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꽃 도매시장.예년 같으면 북적일 시간이지만 시장은 한산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 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1~7일 서울 양재 화훼 경매장에서 거래된 카네이션 수는 63만399단으로 지난해보다 9.9% 줄었다.

카네이션에 대한 언급량도 줄었다.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달 8일 부터 전날(7일)까지 한 달간 전년 동기대비 '카네이션' 언급량은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콜롬비아산 카네이션 한 단(20송이)이 1만~2만원,중국산은 8000원~10000원,국내산은 1만5000원~2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었다.

60년째 도매업을 하는 양 모 씨는 "콜롬비아 카네이션 90%가 북미로 수출되면서 현지 가격이 올랐다.기존 도매가가 한 단에 거의 1만500원~1만1000원 사이였는데 지금 1만4500원에서 1만5000원 사이로 4000원가량 인상됐다"며 "손님께 1만5000~1만6000원 정도에 팔고 있는데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다.작년보다 손님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5년째 도매상가에서 일하는 박 모씨는 "지금 시즌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붐볐어야 하는데 절반 이상 줄었다.일 년 중 가장 큰 대목인데 텅텅 비었다"며 "손님도 없는 데다 도매가가 올라서 마진이 1500원~2000원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매시장에는 아예 카네이션을 팔지 않는 상점도 있었다.30년째 도매업을 해온 김 모 씨는 "카네이션 사놔봐야 팔리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기존에 팔던 장미나 리시안셔스,화분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며 "카네이션 있냐고 물어보는 손님도 별로 없더라 이 기세라면 내년에도 굳이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가장 붐비던 '어버이날',꽃 도·소매상에는 팔리지 않은 카네이션과 한숨만 가득했다.카네이션을 사지 않는 이유는 명확했다.비싸기 때문이다.어버이날을 준비한 이들은 하나같이 "꽃값이 너무 비싸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는 '가성비'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짙게 드러났다.생화는 시들고,조화는 쓸모가 없다는 판단에 이들은 실용적인 대체재를 찾고 있었다.

공기업에서 일하는 김예슬 씨는 "부모님이 꽃이 너무 비싸니 절대 사지 말라고 하더라"며 "그래서 올해 꽃 생략하고 용돈만 챙겨드렸다.칠순 잔치 때나 꽃 해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윤정 씨는 "생화는 시들고 조화는 먼지만 쌓이니까 차라리 빵집에서 나온 어버이날 케이크 같은 걸 사서 나눠 먹는다"며 "작년엔 앙금 케이크,재작년엔 카네이션 모양 쿠키,올해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살 생각"이라고 전했다.

프리랜서 배유정 씨는 "작년엔 화분을 사드렸는데 올해는 생략하고 식사만 대접했다"며 "외할머니께는 꽃 대신 고기를 보내드렸다.감사의 의미긴 하지만 부모님도 '꽃 사는 돈 아깝다'고 생각하신다"고 했다.

고속터미널역 근처 꽃 도매시장 에서 팔리지 않는 카네이션을 정리하는 상인/사진=유지희 기자소비 트렌드 전문가들도 이번 어버이날 꽃 소비 부진은 단순한 경기 문제를 넘어 '세대교체'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요즘 세대는 구매 결정 시 '실용성'과 '가성비'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짧은 시간만 유지되는 생화 선물보다는 장기적으로 실용성이 있거나 SNS에 공유하기 좋은 경험 소비로 대체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생활이 바쁘다 보니 가족과 함께 지내지 않는 경우도 많아 당일 의미를 살린 선물을 하기 어렵다.그런 상황에서 경제적 여건도 여의치 않으니 현금이나 실용성을 갖춘 제품을 선호하게 된다"며 "꽃은 축하나 감사의 의미를 담기 위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 기능적 가치가 낮아 요즘 세대는 굳이 지출하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예전에는 선물할 기회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꽃이 의미 있었지만,지금은 실용적인 선물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생화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고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 실용성을 따지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과거에는 꽃 한 송이로도 충분했던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선물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만큼 꽃은 부가적인 것으로 인식돼 지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했다.

유통 현장도 이를 실감하고 있다.한 화훼 유통 전문가는 "전통적인 꽃 소비층이 점차 줄고 있고 코로나19와 물가 인상 등 외부 변수들이 겹치며 도소매시장 자체도 구조적으로 위축되는 추세"라며 "꽃은 이제 메인 상품이 아니라 구색을 갖추는 수준으로 변했다.카네이션의 상징성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 더 큰 선호를 받고 있다.결국,꽃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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