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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배씨가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손인규 기자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기술은 한 번 내꺼 되면 평생 내꺼야.늙어서 일을 못 하기 전까지는 은퇴도 없이 일할 수 있는데 왜 요새 젊은 친구들은 대기업 이런 데만 우르르 몰리나 몰라”

무섭게 치솟는 임대료와 재개발 사업으로 서울 시내 풍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지난 1980~2000년대 번창하며 대한민국 제조업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골목도 그중 한 곳이다.

이 곳은 중구 을지로 인쇄소 골목과 함께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힙한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임대료 상승 등 개발 바람에 철공소는 하나둘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카페,파이코인 상장시기빈티지숍 등이 대체하는 모습이다.이에 문래동 철공소 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주요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문래동 철공소 거리를 지키는 뚝심있는 철공인들이 있다.지난 1983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40년 동안 문래동을 지켜 온 손길배 우진정밀 사장(65)을 만나 그 역사에 대해 들어봤다.

“나는 원래 상고를 나왔는데 첫 직장이 시계 만드는 회사였어요.그런데 여기서 친했던 동료가 문래동에서 창업한다고 나보고 같이 해보자는 거야”며 “사실 그때 문래동을 처음 와봤는데 기계 하나 갖다 놓고 일을 시작한 거예요”

이렇게 시작한 문래동 생활은 1990년 본인의 가게를 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당시에 월급을 한 60만원 받았는데 이걸로는 안 되겠더라고.그래서 모은 돈으로 밀링 머신 기계를 하나 사서 내 사업을 시작한거지”

손길배씨가 본인의 회사‘우진정밀’앞에 서 있다.손인규 기자

상호명을 고민하던 손씨는 당시 장조카의 이름을 따와‘우진정밀’로 이름을 정했다.“형님이 사고로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장조카를 좀 보살펴주다 보니 자식 같아서 그 이름을 쓰게 됐어.그때는 결혼도 하기 전이라 이름을 따올 내 자식도 없었고”

90년대는 우리나라 제조업이 활기를 맞던 부흥기였다.이에 손씨의 철공소는 문을 닫을 날이 거의 없었다.“당시에는 일이 참 많았어요.거의 주말도 없이 일을 해야 납품기일을 맞출 수 있을 정도였어요.그래서 사람 만날 시간도 없었지.그래서 서른넷,당시로서는 노총각이 되어서야 겨우 결혼을 했어요”

결혼 후 딸과 아들을 낳자 일은 더 많아졌다.책임질 식구가 늘어나면서 더 바쁘게 살아야만 했다는 손씨.“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바빴어요.아이들한테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때 그렇게 바쁘게 열심히 살았기에 지금은 경제적으로 큰 걱정 없이 살고 있는건지도 모르고”

손씨가 운영하는 우진정밀은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서도 꽤 규모도 크고 깔끔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여기가 원래 작은 가정집들이 많은 동네였는데 우리는 5개 집을 합쳐서 새로 공장을 지은거죠.하지만 아직 주변에는 작은 가정집을 개조한 작은 가게들이 대부분이고요”

지난 2020년 이렇게 공장을 세운 것이 가장 보람 있고 뿌듯했다는 손씨.현재 10여명의 직원을 데리고 있는 손씨는 제약포장기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부품이 500~600개 정도 되는데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라고 보면 돼요”라며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은 인건비가 싼 중국 등으로 이미 많이 넘어갔어요.우리만의 차별점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죠”라고 말하는 손씨.

손씨는 문래동 철공소를 비롯한 한국의 제조산업이 상황이 많이 안 좋다며 안타까워했다.“지금은 젊은이들이 인공지능이다,카지노 e게임반도체다 이런 것에만 우르르 몰리는데 우리 같은 제조업이야말로 산업의 뿌리”라며 “뿌리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건데 정부도 기업도 사람들도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어 “이름 있는 대기업에 가서 지금 당장 돈 좀 벌면 뭐 해요.나이 50에 회사에서 나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나이 50이면 청년이에요”라며 “여기는 기술을 한 번 배우면 평생 써먹을 수 있어요.내가 일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되지 않는 한 은퇴가 없다니까요”

철공소 일이 예전만큼 위험한 직업도 아니라는 손씨.“예전 90년대만 해도 기계를 다루다 손이 끼거나 다치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자동화돼 그런 일은 많지 않아요” 실제 이곳에서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뿐 쇠를 깎아 불꽃이 튀거나 위험해 보이는 작업 환경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문래동 철공소 골목 모습.손인규 기자

그럼에도 젊은이들의 외면으로 문래동 철공소는 점차 고령화가 되어가고 있다.“여기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60이 넘었어요.그래도 기술이 있으니 웬만한 동년배들보다 벌이가 훨씬 좋아요.본인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오래 먹고 살 수가 있다니까요”

손씨는 우진정밀을 조만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처음에는 내가 은퇴하고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해온 게 너무 아까운 거야.다행히 아들이 자기가 해보겠다고 하니 너무 고맙지 뭐야” 손씨는 일반 회사에 다니고 있는 아들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된 2년 후쯤 회사를 맡길 계획이다.

이와 함께 손씨는 문래동 철공소가 이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철공소 단지 이전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1~4단지로 구성된 문래동 철공소 거리는 총 9만평에 이른다.많을 때는 1500개 정도까지 됐지만 현재는 1000개 정도가 남은 상태라고 한다.

손씨는 남은 철공소들이 다 같이 함께 이전할 산업단지를 찾고 있다.“여기 1000개 정도 철공소가 남았는데 이 중 900곳 정도 사장님들이 이전하는 거에 찬성한다고 사인을 했어요.지금 상태로 놔두었다간 하나둘 뿔뿔이 흩어지거나 사장님이 은퇴하면 그냥 사라지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손씨는 “지금보다는 조금 멀더라도 번듯한 산업단지에 들어가 문래동 철공소의 명맥을 이어야죠.그게 우리 같은 선배들이 해야 할 일 같아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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