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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파운더스 펀드의 공동 설립자인 피터 틸이 지난 2022년 4월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2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AFP]

“경쟁은 패자들이 하는 것이다.독점하라” -피터 틸 저서‘제로 투 원’中

미국 방산 인공지능(AI) 선두업체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이하 팔란티어)의 창업자인 피터 틸(58)의 경영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할 때 홀로 독보적인 발상을 하고,남들과는 다른 발굴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 과감히 투자하는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틸의 명함은 팔란티어 창업자이자 회장에 머물지 않는다.그는 미국 핀테크업체 페이팔,방산AI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벤처캐피털 회사 파운더스 펀드의 공동 설립자이자 페이스북의 첫 외부 투자자이기도 하다.이 외에도 리프트(승차공유서비스),딥마인드(구글 AI조직),스포티파이(음원스트리밍서비스),스페이스X(머스크의 로켓발사 업체)등 셀 수 없을 정도의 회사에 투자했다.그가 투자한 기업들만 200곳이 넘는다.

특히 틸이 설립한 팔란티어는 미국 주요 정부 기관들을 쓸어 담듯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AI를 접목한 플랫폼을 미 국방부에 제공하고 있으며,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기관과도 협력 관계다.보안,국방,사이버 보안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힘입어 팔란티어 주가는 1년새 370% 급등했다.2년 전과 비교하면 6달러대에서 지난 9일 기준 117.30달러로 약 20배 폭등했다.엔비디아와 함께 나스닥 AI 대장주로 우뚝 올라섰다.

팔란티어는 미국 기술 기업 시총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지난 8일 미 경제 매체 CNBC 방송에 따르면 팔란티어의 시총은 2810억달러(394조9455억원)로 불어나며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2680억달러)를 제치고 기술 기업 시총 순위 10위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전쟁에도 올해에만 팔란티어 주가는 나홀로 58% 급등했다.올해 초에는 시스코(2375억달러)와 IBM(2361억달러)도 앞질렀다.팔란티어 시총은 삼성전자(2594억달러)도 넘는 수준이다.

떡잎을 알아보는 투자 귀재에서 팔란티어 회장에 이르기까지.틸 회장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미국 테크 역사의 변곡점마다 그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올 A’수재…하버드 대신 스탠퍼드 택한 까닭

틸 회장의 본명은 피터 안드레아스 틸이다.1967년 10월 11일 서독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지만,이듬해 미국 클리블랜드로 이주했다.틸의 아버지 클라우스 프리드리히 틸은 여러 지역의 광산 회사를 관리하는 화학 엔지니어였다.아버지의 직업 탓에 유년 시절 동안 이사가 잦았음에도 틸은 보기 드문 수재였다.1985년 샌마테오 고등학교에서 전 과목을 올 A로 졸업했을 정도였다.대학 진학을 앞두고 틸은 하버드대에 무리 없이 입학할 수 있었지만 집과 가까운 스탠퍼드대를 선택했다.평소 남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을 혐오했던 이유였다.그는 하버드대를 가혹한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뒤틀린 경쟁주의의 상징으로 봤다.이 같은 경쟁의 장에선 창의와 자율성을 놓치기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틸은 교내에서 보수파의 견해를 널리 알릴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그는 보수 성향의 학생신문을 창간하는 것에 눈을 돌렸다.1987년 6월‘스탠퍼드 리뷰’가 탄생한 계기였다.

스탠퍼드 리뷰에 몸 담았던 인물들 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가상화폐 실무그룹의 수장으로 있는 데이비드 색스가 있다.이 외에도 주(駐)덴마크 미국대사로 지명된 켄 하워리,코슬라 벤처스 전무 이사 키스 라보이스 등도 모두 스탠퍼드 리뷰의 일원이었다.스탠퍼드 리뷰의 일원들은 훗날 페이팔을 설립한 핵심 멤버들로 구성된‘페이팔 마피아’로 거듭난다.이 때문에 일각에선 스탠퍼드 리뷰가 틸의 첫 스타트업 벤처라고도 평가하기도 한다.

틸은 1989년에 20세기 철학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했고,1992년에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로스쿨을 졸업한 24세의 틸은 첫 직장으로 애틀란타 연방항소법원의 서기로 1년 동안 근무했다.이후 그는 뉴욕 대형 법무법인인 설리번 앤드 크롬웰과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에서 파생상품 딜러를 거쳤다.

틸은 스탠퍼드 리뷰에서 연을 맺은 켄 하워리,루크 노섹을 비롯해 맥스 레브친,마틴 헬먼,빌 멜튼과 합심해 1998년 12월 페이팔의 모회사인 콘피니티를 설립했다.이 회사는 암호화된 전자결제 시스템을 제공하는데,현금을 대신할 간편하고 안전한 지불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었다.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그 금액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는‘캐시백 제도’라는 바이럴 마케팅을 도입한 것도 이 때였다.콘피니티는 설립된지 2년도 되지 않아 100만명의 회원을 돌파할 정도로 성장했다.

2000년 페이팔 창업 당시 피터 틸(왼쪽)과 일론 머스크 [AP]

적→동지로…머스크와 인연,페이팔 출범‘결실’

이렇듯 승승장구를 달리던 콘피니티에게도 강력한 적수가 나타났다.일론 머스크가 당시 운영하던 온라인 은행 엑스닷컴이었다.틸은 엑스닷컴의 머스크와 경쟁 대신 상생을 택했다.

틸은 이듬해인 2000년 3월에 엑스닷컴과 합병을 발표하면서 그와 협력관계가 됐다.머스크의 엑스닷컴과 합쳐진 콘피니티는‘페이팔’이라는 사업명으로 거듭나게 된다.

페이팔은 인터넷 경매의 대표적 플랫폼인 이베이를 공략했다.이베이 이용자 대다수가 페이팔을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게 만든 것이다.그 결과 페이팔은 급성장을 맞이했다.2002년 2월 15일 마침내 상장에 성공했다.페이팔의 전신인 콘피니티를 설립한 지 4년도 안 된 시간이었다.페이팔의 성공비결은 틸이 스타트업에서 팀원 간의 깊은 유대감과 우정을 중시한다는 데 있다.

과거 페이팔의 모든 직원들은 틸이 헤드헌터를 통하지 않고 스탠퍼드 출신자들 중에서 직접 뽑은 사람이었다.페이팔은 훗날 미국 산업을 주무르는 다수의 거물급 기업가들을 배출한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이른바‘페이팔 마피아’라고 불리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페이팔의 성공신화를 일궜지만 틸은 결국 회사를 떠났다.페이팔 수입의 원천이었던 이베이가 페이팔을 15억달러에 인수하면서다.

틸은 한 가지 사업에 안주하지 않는 투자자였다.틸은 페이스북과 인연을 맺은 건 마크 저커버그가 아직 대학생 신분이었던 2004년이었다.틸은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에 투자 가치를 느꼈다.모두가 흥미를 느끼지 않을 때 홀로 투자 가치를 알아보는‘역발상가’다운 생각이었다.틸은 저커버그에게 신용 대출 형태로 50만달러를 빌려주고,나중에 이를 회사 지분 10.2%로 전환했다.

그 결과 틸은 2005년부터 페이스북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이사회 중에서도 임기가 가장 오래된 이사에 이름 올렸다.

‘9·11 테러’후 영감…팔란티어 탄생 비화

‘망가진 것을 찾아라’는 틸이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기준이다.틸이 팔란티어를 설립하게 된 계기에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사건이 있다.당시 미국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테러로부터 자유로운 국가가 아니라는 공포감이 확산하던 때였다.

틸은‘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신종 전쟁을 기술의 힘으로 예견하고 방지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세상을 더 안전하고 공정하게 만들겠다는 사명은 곧 사업 아이템이 됐으며,2003년 5월 팔란티어 창업으로 이어졌다.

틸은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하면서 받은 5500만달러를 기반으로 팔란티어를 창업했다.당시에 팔란티어처럼‘데이터 마이닝(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해 유용한 정보를 찾는 기술)’소프트웨어를 개발 판매하고 보안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회사는 없었다.전례가 없던 탓에 팔란티어에 투자하려던 기업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팔란티어는 이 같은 난관을 정보기관을 주요 고객으로 삼으면서 극복했다.그 결과 2005년에는 CIA가 운영하는 밴처캐피털 인큐텔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총 200달러의 투자를 받아냈다.이를 통해 첫 소프트웨어인‘팔란티어 거버넌트’를 제작했다.

팔란티어는 정부기관과의 제휴뿐만 아니라 금융업계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첨단 기술을 활용해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노하우를 이용해 금융업계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주식 분포도나 주식 차트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팔란티어와 제휴를 맺은 민간 대기업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JP모건,IBM 등이 있다.조지 W.부시 대통령의 보좌관 등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전 CIA 국장 조지 테닛 등 거물도 팔란티어 고문 리스트에 있다.

2016년 12월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열린 기술 리더들과의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페이팔 공동 창립자이자 페이스북 이사인 피터 틸의 모습 [로이터]

정계도‘역발상 투자’…‘트럼프 선택’이 옳았다

틸의 과감한 투자는 재계를 넘어 정계에도 뻗치고 있었다.모두가 등 돌리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2016년 일찌감치 베팅했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틸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에게 최소 125만달러를 선거운동 활동비로 기부했다.이후 틸은 2016년 7월 자신의 고향인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하고 트럼프의 인수위원회에 합류해 트럼프와 실리콘밸리 사이의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던 트럼프 대통령을 틸 회장이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사실 틸과 트럼프의 가치관은 여러 부분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관료주의에 대한 염세 ▷경제적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의지 ▷트럼프 대통령의‘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마가·MAGA)’사상은 틸의 평소 가치관과 일맥상통했다.특히 은행,보험,에너지,운송 등 주요 산업 부문에 대한 규제 강화가 혁신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은 틸과 트럼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틸은 미국 행정부에서 기술 정책 고문으로 기용됐다.이는 행정부 내 권력 위치에 자신의 추종자들을 배치하는 데 도움을 줬다.

2024년 대선에서도 틸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미국 제50대 부통령이 된 J.D 밴스 상원의원을 트럼프에게 부통령 후보로 추천한 것도 틸이었다.실리콘밸리에선 밴스 부통령과 틸의 관계를‘페이팔 마피아’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경쟁 혐오·블루오션 발굴…피터 틸의 성공비결

한 우물 안에서 경쟁하는 체제보단,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발견해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는 것.그것이 바로 틸의 투자 방식이다.

그의 이 같은 투자 철학은 과거 스탠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시절 접했던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모방 이론(mimetic theory)’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모방’과‘경쟁’을 다룬 이 이론은 다른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나머지 모방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틸에게서 욕망과 모방은 경쟁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그러나 경쟁 과정은 개인의 창의성을 파괴하고,대립하는 양측에게 피해만을 가져다줄 뿐이라고 여겼다.특정 산업 분야에서 경쟁자가 등장했을 때 맞서지 않고 협력을 택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신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찾는 것도 이 같은 철학에서 기인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틸에게서 경쟁은‘독보적인 영역’을 발굴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경쟁이란 패자가 하는 것’이라는 틸의 어록이 탄생한 배경이며,그가 현재는 보잘 것 없지만 미래 가치가 무궁무진한 분야에 투자하는 이유인 셈이다.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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