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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0만원으로 김환기·윤형근 그림을 소유할 수 있다’이와 같은 슬로건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미술품 조각 투자’가 국내에 도입된 지 6년째다‘조각 투자’는 그림을 물리적으로 조각 내는 대신 그 소유권을 분할하는 것‘부자가 아닌 사람도 유명 작가의 그림을 공동 소유할 수 있는 민주화’라는 긍정과‘예술을 오로지 투자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라는 비난이 엇갈리는 가운데,미술품 조각 투자는 지난해 말부터 기존의 공동구매 형태에서 투자계약증권 형태로 바뀌면서 제 2라운드를 맞고 있다.
평균 매각 수익 22%~39%에 달해
구사마 야요이 '호박'(2001).열매컴퍼니가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발행한 미술품 투자계약증권의 기초자산이다.[각 회사] 미술 조각 투자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를 운영하는 열매컴퍼니는 지난 21일~24일 제2호 투자계약증권 청약을 받았다.기초자산은 단색화(수행성을 강조하는 단색조 추상화)의 대가인 이우환의 대형 유화‘다이얼로그’다.총 발행 규모,즉 그림 값은 12억3000만원으로,
마작 히드라투자자마다 10만원 짜리 주(지분)를 최소 1주에서 최대 300주까지 구입할 수 있다.청약 결과를 보니 경쟁률은 1대 1에 약간 못 미친 98.7%였다.지난해 12월에 열매컴퍼니가 국내 최초로 발행한 제1호 투자계약증권의 청약 경쟁률 6.5 대 1에 비해 줄어든 모양새다.1호 증권의 기초자산은 유명한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아크릴릭 회화‘호박’이었다.
과거의 공동구매는 민법상의 공유물의 형태이고 자본시장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웠던 반면,투자계약증권은 자본시장법상‘신종 증권’의 일종으로서 제도권의 보호를 받는다.회사는 새로운 투자계약증권을 낼 때마다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뱅크시의 'Love Rat'.테사가 2021년 공개구매를 실시해 1분 만에 완판했다.[각 회사] 국내 양대 미술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자회사들도 미술품 조각 투자 사업에 뛰어든 지 수년 째다.플랫폼 소투를 운영하는 서울옥션블루는 최근 제2호 투자계약증권에 대한 증권신고서를 금감원에 제출한 후 효력 발생을 기다리는 중이다.기초자산은 또 다른 단색화 거장인 윤형근의‘무제’(5억2000만원)다.또한 플랫폼 아트투게더를 운영하는 케이옥션 자회사 투게더아트는 일본의 인기 작가 나라 요시토모의‘연못 소녀’(8억6700만원)를 기초자산으로 한 투자계약증권의 발행을 위해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들 회사는 그간 국내외 경매사나 화랑,딜러 등에게 작품을 구입한 후 평균 1년 전후로 보유하다가 판매하여 차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공동구매형 조각 투자 사업을 진행해 왔다.지금까지의 평균 매각 수익률은 열매컴퍼니 25%,서울옥션블루 22.4%,투게더아트 39%에 달한다.투자계약증권 형태로 전환한 뒤에도 이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앤디 워홀의 '달러 사인'(1981),서울옥션이 지난 1월 발행한 1호 투자계약증권의 기초자산.[각 회사] 그런데 투자계약증권 형태로 바뀌면서 투자자 보호 강화에도 불구하고 청약 미달이 속출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열매컴퍼니의 1호 투자계약증권의 경우,6.5 대 1의 높은 청약 경쟁률에도 실제 청약 납입 물량에서 공모가액에 미달해서 17.9%의 실권주가 발생했다.서울옥션블루는 미국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의‘달러 사인’을 기초자산으로 한 투자계약증권을,아트투게더는 구사마의 또 다른‘호박’과 미국 인기 작가 조지 콘도 작가의‘광기의 지평선’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했지만 모두 청약 한도를 채우지 못했다.또다른 미술품 조각 투자 회사 테사(Tessa)는 아직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옥션 블루 관계자는 “투자계약증권의 경우 증권사 계좌를 통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공동구매 투자자들이 달라진 절차에 부담을 느끼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며 “아직 초기이기 때문에 계속 발행하며 더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미술시장 양극화 더 심해질 우려”
투게더아트(케이옥션 자회사)는 조지 콘도의 '광기의 지평선'(2001) 투자계약증권을 지난 3월에 발행했다.[각 회사] 한편 키움증권의 심수빈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큰 이유는 미술 시장의 침체와 이에 따라 단기간 내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평했다.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은 최초로 1조원을 돌파한 2022년에 비해 위축되면서 거래 규모와 시장 규모가 각각 17%,12.8% 감소했다.심 연구원은 “다만,토큰증권 제도화 완료 시 장외거래시장을 통해 투자계약증권의 유통 시장이 만들어질 예정이고,유통 시장 형성을 기반으로 활발한 투자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토큰증권(Security Token)은 블록체인 같은 분산원장 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을 의미한다.토큰증권이 자본시장법상 증권의 형태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법제화가 필요하다.금융당국은 토큰증권 발행·유통 제도를 순차적으로 구축 중이지만,관련 법 개정안이 새 국회에서 언제 발의될지조차 아직 알 수 없다.
나라 요시토모의 '연못 소녀'(1995)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할 예정이다.[각 회사] 열매컴퍼니 김재욱 대표는 “한국거래소(KRX)에서 미술품 토큰증권을 유통시킬 수 있게 되어 유동성이 커지기를 바라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미술 시장이 1조원까지 컸는데 미술 금융 시장 규모는 500억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서구에서는 미술품 조각 투자가 미술 금융의 주류가 아니다.왜냐하면 서구에서는 아트펀드와 미술품 담보 대출이 활성화되어 주요 금융 회사들이 관련 전담 부서가 있기 때문이다.반면에 한국은 그간 아트펀드와 미술품 담보 대출이 성공하지 못했다.금융인들이 미술 지식이 거의 전무하고 적정 가격 선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그나마 성공적으로 미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미술품 조각 투자다.거래소 유통이 가능한 토큰증권이 도입되면 유통할 수 없는 지금의 투자계약증권보다 유동성 공급 효과가 훨씬 커질 것이다.”
한편 조각 투자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가는 이렇게 평했다.“조각 투자 대상 작품들을 보면 유명하고 인기 많은 소위‘블루칩’작가들이다.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대신 그 몇백만 원 돈으로 이미 성공한 대형 화가 그림의 소유권 한 조각을 사는 것이다.그러니 미술시장의 양극화는 심해지지 않겠는가?또한 수익 창출 목적으로 작품을 샀다가 곧 파는데,예술을 오로지 금융상품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서울옥션블루가 투자계약증권 발행 예정인 윤형근의 '무제'(1991).[사진 서울옥션블루] 이에 대해 열매컴퍼니 김 대표는 “저희 조각 투자 플랫폼에 오신 분들을 보면,
마작 히드라처음에는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호기심이 있고 그렇다고 덜컥 한 점을 사기는 부담스러워서 테스트 삼아 온 분들이 대부분이다.일단 자신들의 돈이 들어가니 작품과 작가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그러다가 진정한 예술적 관심을 갖고 즐기게 된다.그러면서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사기 시작하는 분들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을 역임한 이대형 큐레이터는 “확실히 작품에 대한 조각 투자는 금융상품 같을 수 있다”면서도 “이런 투자 방법이 작가 프로젝트에 대한 조각 투자와 함께 가면 진정한 예술 후원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평했다.“예를 들어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서 이완 작가의 설치미술‘고유시’를 제작하기 위해 벽시계로 가득 찬 방을 구축해야 했는데,이때 조각 투자를 받았고 투자자들은 전시가 끝난 후 투자액에 따라 작품의 일부인 시계를 받았다.창의적인 방법으로 운용하면 예술 상품화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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