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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장 없으면 실무자가 '대리 결재'…檢 "내부 관행" 지적
고객 계좌 아닌 '지점'으로 대출금 입금…은행권 "원칙 위반"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80억대 횡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직원 A 씨가 고객의 신뢰를 악용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질타하면서도 '은행의 관리·감독 미흡'을 함께 지적했다.이번 사건을 단순 개인의 일탈로 보기엔 우리은행의 시스템에 허점이 많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검찰은 30대 대리급 직원이 180억원대 횡령을 할 수 있었던,아시안컵 편성이른바 '대리 결재'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또 대출금을 '고객 계좌'로 입금해야 하는 원칙이 있는데도 '지점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짚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들은 "시스템 미작동"이라고 입을 모았다.금융사고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 원칙은 이미 겹겹이 마련돼 있으나,아시안컵 편성실제 현장에서 원칙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금융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 '180억 횡령사건' 전말…檢 "은행에 갖는 신뢰를 악용한 범죄"
9일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전날 '허위 대출'로 180억원을 편취한 우리은행 기업 대출 담당 직원 A 씨(34)를 재판에 넘기면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창원지검에 따르면 A 씨는 기존 대출 고객 17명의 명의를 도용해 '위조 대출 신청 서류'를 본점 담당자에게 전송하고 마치 정상적인 대출 신청인 것처럼 속여 177억7000만원을 편취한 혐의(사기·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를 받는다.
심지어 A 씨는 정상적으로 대출을 받은 고객 2명에게 연락해 "대출금을 잠시 인출해야 한다"고 속여 2억2000만원을 지인의 계좌로 송금받은 혐의도 있다.A 씨의 범행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약 11개월 동안 총 39회에 걸쳐 이뤄졌다.
검찰 수사팀은 "기업 대출 담당자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범행이 이뤄졌다"며 "고객이 은행 대출 담당자에게 갖는 신뢰를 악용한 범죄"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 지점장 없으면 실무자가 '대리 결재'…檢 "내부 관행" 지적
주목할 점은 검찰이 A 씨와 별개로 '은행의 관리·감독 미흡'도 지적했다는 것이다.은행권에 따르면 통상 기업 대출 결재권은 지점장이 갖고 있다.다만 해당 지점에서는 결재권자가 없을 시 실무 담당자가 시급한 대출 결재를 대신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벌어져선 안 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한 은행권 관계자는 "우선 지점장이 장기 부재인 경우가 많지 않다"며 "지점장이 휴가를 가더라도 미리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혹여 지점장이 결재할 수 없다면 준법 감시 담당자 등 책임자급에게 결재권을 넘긴다"며 "대리급에게 결재권을 넘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권에 대리 결재 관행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그러면서도 지점장이 다시 대출을 확인하거나,아시안컵 편성전날 시행된 대출에 대해 다음날 전수 조사를 하는 '전담 감사 제도'를 통해 충분히 걸러졌어야 할 사건이라고 했다.
◇ 고객 계좌 아닌 '지점'으로 대출금 입금…은행권 "원칙 위반"
검찰은 또 '고객 계좌 입금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은행권에 따르면 대출금은 '고객 명의 계좌'로 입금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그러나 우리은행 본점은 고객 계좌가 아닌 지점으로 대출금을 송금하고,아시안컵 편성이를 지점에서 처리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통상은 대출금을 고객 계좌로 받아야 하는데 지점에서 (지점 계좌로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A씨는 이 대출금을 지인 계좌로 넣어버렸다"고 설명했다.
대출 관련 업무를 8년 담당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말 흔치 않은 케이스"라고 밝혔다.대출금은 고객 명의 계좌로 입금되는 것이 '1원칙'이라는 것이다.이 관계자는 "모든 대출은 차주 계좌로 지급돼야 한다"며 "대출금을 지점이 받는다면 굉장히 사기 치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출금은 대출자에게 바로 입금돼야 하는 원칙은 당연한 것"이라며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