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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 충돌 사흘 만에 휴전

파키스탄 국민들이 10일 인도와의 휴전 소식을 자축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핵무기 보유국 인도와 파키스탄이 두 나라 영유권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에서 벌인 무력 충돌 사태가 미국 중재로 일단락됐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미국이 중재한 긴 협상 끝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완전하고 즉각적 휴전에 합의했음을 알리게 돼 기쁘다”며 “두 나라가 상식과 큰 지혜를 발휘한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트럼프는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불굴의 용기와 결단력으로 공격을 멈출 때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며 “(무력 충돌이 이어졌더라면) 수백만 명의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이 위대한 국가들과의 교역을 크게 늘릴 것”이라고 했다.자신의 중재에 따라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에게 호의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또 “수천 년의 갈등이 축적된 카슈미르 문제의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 두 나라와 협력하겠다”고도 했다.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 식민지에서 분리 독립한 뒤 수차례 전쟁이 벌어졌던 화약고 카슈미르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도 관심을 보인 것이다.이번 휴전 협상에는 최근 인도를 방문했던 국정 2인자 J D 밴스 부통령과 외교 사령탑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모두 투입됐다.트럼프가 소셜미디어로 휴전 합의를 알린 시간은 분쟁 당사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공식 발표보다도 빨랐다.

취임 후 조기 해결을 자신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좀처럼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이번 사태를 자신의 중재 역량을 과시할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이에 따라 지난달 22일 26명이 사망한 인도령 카슈미르 총기 테러로 촉발된 전쟁 위기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이 테러가 인도인을 겨냥한 파키스탄 무장 단체의 소행으로 드러나자 인도는 국경을 폐쇄하고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인더스강 물길을 차단하는 등 보복 조치를 연쇄적으로 취했다.이어 지난 7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무장 단체 거점 아홉 곳을 미사일로 타격하며 무력 충돌은 확대됐다.

그래픽=이진영
이 과정에서 국경선 역할을 하는 양측 점령 지역 간 경계를 사이에 두고 포격전까지 벌어졌다.인도의 미사일 저장 시설과 공군 기지를 겨냥한 파키스탄의 공격도 이뤄졌다.국제사회의 핵통제 체제인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두 나라가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 속에 트럼프가 일단 성공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그동안 80년 가까이 이어져온 두 나라의 갈등을 막후에서 중재하며 남아시아 지역의 긴장을 관리해왔다.그러나 고립주의 성향이 강한 트럼프는 사태 초기에는 해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지난 7일 양측의 무력 충돌로 최소 36명이 숨졌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에도 “그들이 멈추길 희망한다.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 것” 등 원론적 언급을 하는 데 그쳤다.밴스도 “근본적으로 미국과 관련이 없는 사안이며,미국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전쟁 한복판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며 불개입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후 입장을 180도 바꾸며 중재에 뛰어든 것은 핵보유국 간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인도와 파키스탄의 보유 핵탄두 수는 각각 170·172기다.NPT에 가입한 공식 핵보유국인 프랑스(290기)나 영국(225기)에 크게 뒤처진다고 보기 어렵다.뉴욕타임스(NYT)는 “양국 간 본격적인 공중전이 벌어지고,파키스탄 핵무기 부서가 있는 라왈핀디 누르칸 공군기지에서 폭발이 발생한 게 (미국 개입의) 결정적 계기다”라고 했다.

인도가 비동맹·중립 외교 노선을 취하고 있지만 중국 견제용 서방 국가들의 다자 안보 협의체인‘쿼드(QUAD)’등을 통해 미국과 공조하고 있고,파키스탄은 중국과 긴밀히 협력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미·중 간 대리전 양상을 띨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양측 간 벌어진 공중전에서 인도군이 운용하는 프랑스 최신 전투기 라팔 중 최소 한 대가 파키스탄의 중국제 전투기·미사일에 격추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산 무기의 위력이 재평가되고 있는 상황도 트럼프 행정부에 부담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다만 트럼프의 이번 중재는 두 나라의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실제로 합의 타결 뒤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폭발음이 들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두 나라는 상대방이 휴전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이번 중재가 노벨평화상 수상 같은 트럼프의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트럼프는 1기 때였던 2020년 9월 이슬람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바레인·모로코·수단이 적대 관계였던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앞장섰고 이들 국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골자로 하는 아브라함(이슬람·유대교·기독교에 모두 등장하는 선지자) 협정을 체결했다.현직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도 가졌다.트럼프는 선거 유세 등을 통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 차례 토로한 바 있다.이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노벨 평화상에 집착하는 트럼프가 수상을 위해 중재 외교에 다시 열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트럼프가 취임 직후부터 해결을 공언해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종전 또는 휴전을 위한 논의가 공전하고 있고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어 트럼프의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월스트리트저널은 10일 트럼프가 최근 플로리다주(州)에서 가진 한 후원자 모임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전쟁을 끝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