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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삼호식당
도토리묵·올방개묵 두 종류 선보여
표고버섯 자투리 넣어 씹는 재미 덤
볶고 무치고 조린 반찬에 손맛 가득
흑미와 더덕·칡 등으로 빚은 민속주
발효가 만든 새콤함과 약재향‘일품’
“김치가 지랄 맞구나.”
젓갈을 듬뿍 넣어 담근 며느리의 김치를 맛본 시어머니의 일성은 적나라했다.며느리의 고향은 전남 곡성이고 시어머니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태생이다.충청도 시어머니 입장에서 전라도 며느리의 풍미 강한 김치가 상당히 낯설었던 것이다.이른바 충청도와 전라도의 음식문화 충돌이었다.음식을 사이에 둔 두 여인의 갈등 혹은 불협화음이 얼마나 오래갔는지는 모르지만 타향살이와 시집살이를 동시에 겪어야 했던 며느리의 부담은 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부여군에 적을 두고 있지만 부여읍보다 보령시에 더 가까운 외산면 만수리에 자리 잡은 삼호식당은 1980년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사실 그전에도 이미‘영업 중’이었지만 동네 사람 중 누군가의 고발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 사람이 아주 고마워요.덕분에 정식으로 장사를 하게 됐고,챔피언스리그 리버풀열심히 번 돈으로 자식들 키웠으니까요.”
역사가 어림잡아 반세기에 달하는 관록의 식당을 지키고 있는,현재 일흔 중반인 바로 그 며느리의 담담한 회고다.삼호식당은 묵 명가다.도토리묵과 올방개묵 두 종류의 묵을 선보인다.올방개묵은 올방개(논이나 연못에서 자라는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의 덩이줄기를 갈아 녹말을 내어 쑨 묵이다.묵은 반반씩 주문 가능한데(가끔 한가지만 준비될 때도 있다) 비교적 단단한 껍질 쪽은 쫄깃하고 아래쪽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다.중간중간 표고버섯 자투리를 박아넣어 묵 표면이 우둘투둘하다.다소간 씹는 재미를 안겨준다.주인 부부는 한때 표고버섯농장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삼호식당 안주인은 그야말로 쉴 틈이 없다.묵도 쑤고 김치도 장만하고 장도 담근다.볶고 무치고 조려 만드는 반찬도 일일이 그의 손을 거친다.두루두루 솜씨가 빼어나다.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다.산채비빔밥을 주문하면 토란대볶음·고사리볶음·머위나물무침·취나물무침·더덕무침·묵말랭이조림·동치미·갓김치·배추김치·총각김치 등 10여가지의 찬(물론 그때그때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과 된장찌개가 딸려 나온다.다양한 나물과 달걀프라이·잡곡밥을 한데 묶어주는 고추장은 달거나 짜거나 맵지 않다.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용의 묘가 살아 있다.직접 담근 된장을 푼 물에 우렁이와 시래기·두부 등이 합세한 된장찌개는 짙은 색깔에 비해 염도가 높지 않다.격조 높은 국물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삼호식당의 비기가 아직 남았다.바로 주인아주머니의 민속주다.꺼먹쌀(흑미)·더덕·도라지·칡·뽕잎·감잎 등을 끌어들여 빚는다.재료만 보면 쓴맛이 득세할 것 같지만 발효가 만들어낸 새콤함과 거슬리지 않는 약재의 풍취를 겸비하고 있다.강원 태백 장성양조장의 막걸리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탁주다.
그런데 삼호식당의 이 아름다운 술맛을 음미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3년 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주인아주머니는 “아직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식당 계속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는데 6월 하순 세번째 뵀을 때는 정말 힘에 부쳐 보였다.2월에는 허리가 크게 불편해서 식당 문을 잠시 닫았을 정도다.마음이 조급해진다.이곳의 묵과 술,챔피언스리그 리버풀미주가효(米酒佳肴·좋은 술과 안주)를 맛보러 다시 채비를 꾸려야겠다.
참고로 식당 지척에 있는 무량사 경내 산책도 빼놓지 말기 바란다.말간 풍모가 사랑스럽다.
노중훈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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