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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중부에 있는 신석기 시대 도시 유적 차탈회위크.기존에는 농경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지로 알려졌으나,최근 발견에 따르면 수렵·채집과의 연관성이 더 강하다.ⓒ Murat Ozsoy 
문명 여명기에 대한 통념 반박
수렵채집 사회가 소규모라는
일반적 상식은 검증 안 된 허구
대규모 인원 동원 공사 흔적도
사적 소유도 농경의 결과 아냐
인류와 문명의 여명기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전형적 서사가 하나 있다.인류는 선사시대에 작게 무리를 지어 수렵채집을 하면서 평화롭고 평등한 삶을 살았으나‘농업혁명’이후 도시·국가·관료제가 출현하면서 불평등해졌다는 것이다.이 논리에 따르면 불평등은 인류가 문명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된다.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같은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가정 위에 서 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가 공동 집필한 <모든 것의 새벽>은‘인류의 새벽’에 대한 기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다.저자들은 최근 몇십년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고고학과 인류학 분야 최신 연구 성과들을 조합해‘신화 부수기’에 나선다. 
모든 것의 새벽
데이비드 그레이버·데이비드 웬그로 지음
김병화 옮김 | 김영사 | 912쪽 | 4만7000원
신화 부수기의 첫 번째 대상은 서양 계몽주의다.흔히 루소나 볼테르 같은 유럽 지식인들이 계몽주의의 산파라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저자들은 자유와 평등 같은 계몽주의의 이념은 유럽인들이 정복하려던 신대륙(아메리카) 선주민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17세기 예수회 신부들의 기록에 따르면,부족의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타인에게 행동을 강제할 수 없는 사회에 살았던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들은 계급적 제약에 속박돼 있던 프랑스인들을 “노예보다 나을 것이 없는 존재”로 여겼다.웬다트족 현인 칸디아롱크가 프랑스 현지에서 지식인들과 나눈 대화는 여러 언어로 번역된 출판물을 통해 유럽에서 “자유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촉진했다.
수렵채집인 사회가 단순한 소규모 공동체였다는 기존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허구에 불과하다.미국 루이지애나 파버티포인트에는 기원전 1600년경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벌인 200만㎡제곱미터 규모의 토목공사 흔적이 있다.파버티포인트의 선주민들은 농사도 짓지 않았고 문자도 사용하지 않았다.현장 규모로 보면 최소 수천명이 모였을 것으로 추측된다.게다가 미시시피 계곡 전역에 만들어진 이보다 작은 유적에선 이 일대 수렵채집인들이 복잡한 정보를 주고받은 증거도 있다.농업이 도시 건설의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저자들은 농업의 발달로 잉여 자산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도시와 국가가 탄생하고 사회의 불평등이 발생했다는 기존 학계 주장에 반대한다.“중동에서 최초의 농부가 출현한 때로부터 우리가 최초의 국가라 부르는 것이 등장할 때까지 대략 6000년의 간격이 있다.그리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농경이 그런 국가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어떤 것의 등장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우선 수렵채집과 농업 사이의 선후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수렵채집으로 축적할 수 있는 식량의 한계에 직면한 인류가 농업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캘리포니아 북서부 선주민들은 식물을 기르는 기술을 알고 있었는데도 농업을 식량 확보의 주된 수단으로 선택하지 않았다.“캘리포니아의 선주민들은 농업을 받아들이기 전의 상태가 아니었다.오히려 그들은 반농업적(anti-agricultural)이었다.”
인류가‘농업혁명’을 통해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급격하게 전환한 것도 아니다.농경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지중해 동부 지역과 중동 지역의 이른바‘초승달 지대’에서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데는 30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혁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사유재산도 농경에서 나온 잉여 생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은 아니다.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소유권은 신성한 물건에 대한 제의적 차원의 권리에서 출발했다.이뿐만 아니라 수렵채집인 사회 중에서도 사적 소유 관념이 존재한 곳이 있었다.
기존 학계에서는 농업을 위한 복잡한 관개 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 관료제와 국가가 생겼고,이 과정에서 위계적 권력이 발생했다고 주장해왔다.하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농부들이 전부 자체적으로 매우 복잡한 관개 시스템을 조정할 수 있었으며,초기의 관료들이 그런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관료제가 거대하고 복잡한,누누티비 카지노 시즌2 8국가 규모의 조직에서만 존재했다고 볼 이유도 없다.시리아의 락까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은 150명 정도의 소규모 공동체였지만 마을 중앙에 곡물 저장고와 창고 등 저장시설이 있었다.또 이 저장 시설을 관리하기 위한 문서고도 갖추고 있었다.
저자들은 책에서 전복적 주장들을 잇따라 내놓지만 그 모든 것이 확실한 증거에 기초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이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여명기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대단히 가변적인 전제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2020년 59세에 별세한 저자 그레이버는 무정부주의적 정치 신념 때문에 예일대에서 교수 재임용을 거부당할 만큼 반골 성향이 강한 지식인이다.인류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뤄낸 학자이면서 2011년‘월가 점령’시위를 주도한 진보적 활동가였다.국내에선 2021년 번역된 <불쉿잡>의 저자로 그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모든 것의 새벽>에는‘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는 그의 신념이 집약돼 있다.“이 모든 새로운 지식이 우리가 누구인지,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형성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다른 말로 한다면,우리의 세 번째 기본 자유,새롭고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사회적 현실을 창조할 자유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