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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주말]
[정동현의 pick] 돼지보쌈
할머니는 제주도 고씨 성에 황해도 출신이었다.서울 살던 할아버지를 만나 남쪽으로 내려온 후 서울과 경기도,충청도,강원도를 넘나들며 살았다.당신은 오며 가며 드물게 고씨 성을 만나면 마치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할머니는 오래된 성씨처럼 이북 입맛도 끝내 버리지 못했다.백석 시의 풍경처럼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한밤이면 예전에 살던 개성 근처 큰 기와집 이야기를 자주 했다.처녀 시절 웬만한 장정보다 더 많이,한 근씩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할머니의 목소리에도 기운이 올라갔다.할머니는 돼지 한 뭉텅이를 사면 한 번 삶은 후 전기밥솥에 넣고는 며칠을 먹었다.시간이 지날수록 고기는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마치 사탕 빼먹듯이 그 돼지고기를 끼니마다 조금씩 가져다 이북식으로 희멀건한 김치를 함께 내어 동생과 나를 먹였다.
푹 삶아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돼지비계와 촘촘한 살코기를 새우젓이나 쌈장에 찍어 신김치를 곁들여 먹으면,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는 포만감에 여전히 어릴 때마냥 흥이 난다.음식 만드는 것을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막상 잘하는 집을 찾으려 하면 그 또한 쉽지 않다.단순하기 때문에 작은 결점이 크게 느껴지고 또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맛 또한 올라가 버려서 그렇다.
그리하여 실패하고 싶지 않을 때 가게 되는 곳이 신사동‘산호’다.메뉴판을 보면 전국 팔도 식재료가 다 모여 있는 듯한데,공부하듯 천천히 읽어보니 본래 먹는 것을 좋아해서 식당을 차렸다는 주인장의 너스레가 진담이었나 싶기도 했다.시작은‘한우육회낙지탕탕이’였다.탑처럼 쌓은 육회에 달걀노른자를 올리고 산 낙지를 잘게 다져 해삼 내장과 함께 냈다.깍쟁이처럼 하나하나 맛을 봐도 좋지만 주인장이 추천하는 방식은 모든 재료를 섞어 김에 싸 먹는 것이었다.바다에서 나는 짠맛과 소의 듬직한 육질이 어우러져 가을 공기처럼 길고 느긋한 리듬을 뽑아냈다.
이어서 나온 소고기 육전은 기름기 없는 소고기를 얇게 저며서 달걀물을 살짝 입힌 후 가볍게 구워냈다.육전은 부침개 부치듯 지져 내면 맛이 떨어진다.달걀물의 노란색이 산뜻하게 남아 있도록 빠르고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 포인트다.개나리처럼 노란 이 집 육전은 소고기 사이로 달걀물이 스며들어 씹을수록 부드럽고 촉촉하게 이에 감겼다.다음으로 나온 것은 LA갈비였다.양념이 고루 배고 연하며 달고 짠맛이 진군을 하듯 전격적으로 밀려 들어오는 맛은 순하기보다 치밀했고 헐겁기보다 정밀했다.맛의 밀도가 높아 그에 맞먹는 독주가 어울릴 것 같았다.
그쯤에서 암퇘지 수육을 시켰다.자기 접시에 부채꼴로 곱게 펼쳐서 나온 수육은 상앗빛을 반짝이며 윤이 났다.껍질을 붙여 삶은 수육은 형태가 으그러지거나 삶은 지 오래되어 마른 부분이 없었다.물기를 머금은 삼베옷처럼 결이 탄탄하고 육질이 차올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을 때까지 그 찰나도 기다리기 아쉬웠다.이 고기를 묵은지와 함께 입에 넣었다.기름의 고소한 맛과 묵은지의 짜릿한 신맛이 불협화음을 내며 강하게 부딪쳤다.흡사 칼이 허공을 가르고 맨발이 그 사이를 걷는 듯 굿판 같은 신명이 났다.이 신명을 때로 해치는 것이 잡내다.아무리 비싸다는 것을 써도 때로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먹어보기 전까지 모를 그럴 개성이 돼지마다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 비결을 물었다.주인장이 넌지시 밝힌 답은 간단했다.스스로 여러 돈육 브랜드,산지,품종을 찾고 골라봤으나 결국은 근처 정육점 사장이 골라주는 돼지가 가장 나았다는 것이었다.그 집 고기 보는 눈이 남달라 그곳에서 받아 쓴 이후로는 잡내 난다는 말을 거의 듣지 않았다고 했다.음모를 꾸미듯,귀엣말을 하듯 목소리를 낮춘 주인장은 은근한 자부심에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자연히 옛사람이 떠오른다.누군가를 배부르게 먹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사람들.옹이 진 손가락을 힘겹게 펼쳐 가스버너에 불을 올리고 쭈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내던 그 모습이 쌓여 내 마음 어느 곳에 큰 섬을 만들었다.그 섬에는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긍지로,작지만 부서지지 않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삶이 있었다.얇은 벽 너머 들리던 달그락거리는 소리,작은 상을 들고 마루를 넘던 할머니의 나지막한 숨소리,이제는 누구의 것도 아닌 그 숨결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산호 : 한우육회낙지탕탕이 5만8000원,육전(중) 3만9000원,LA갈비 4만2000원,암퇘지보쌈 4만2000원,선거 도박02-517-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