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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청약 대기자 대혼란
신혼·신생아 특공 확대에
가점 쌓은 4050 당첨확률 뚝
납입한도 25만원으로 늘자
"언제까지 돈만 넣으란거냐"
全세대에 고른기회 주려면
부족한 공급부터 해소해야


◆ 누더기 청약제도 ◆



"공공분양 당첨만 기다리며 15년간 (청약통장에) 돈을 부었는데 이제 통장을 깨렵니다.아이를 더 낳을 수도 없고,(일반공급) 물량은 줄어 당첨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어요."

3기 신도시 경기도 고양 창릉지구 당첨을 노리고 지난해 일산으로 이사 온 40대 최 모씨는 "앞으로 25만원씩 넣으라는데 지금도 월세와 아이들 교육비에 살기 빠듯하다"며 "언제까지 돈을 넣어야 할지도 막막하고 청약제도가 바뀌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청약 포기자들이 속출하고 있다.12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청약통장 가입자는 2022년 6월 2703만1911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5월 말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는 2554만3804명으로 2년 새 148만명가량 줄었다.

분양가가 급등하면서 시세 차익 기대감이 낮아진 탓도 있지만,최근 청약 가입자 이탈이 심해진 것은 잦은 청약제도 개편 탓이 더 크다.오랜 기간 점수를 쌓으면 당첨되는 '가점제'를 준비해왔는데,특정 대상에 우선 당첨 기회가 돌아가는 '특별·우선 공급' 방식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자 가입자들이 청약 시장을 떠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취임 후 청약제도는 청년·신혼부부·출산 가구 등 2030세대에 당첨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되고 있다.

가장 먼저 도입된 것은 '청년 특별공급'이다.2022년 10월 정부는 2030세대에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기 위해 공공분양에서 청년 특별공급을 신설하고,가점제였던 일반공급에 추첨제를 도입했다.민간분양에서도 중소형 평수는 일반공급 추첨제를 확대했다.가점이 낮은 청년층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아이를 출산한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신생아 특별(우선)공급'을 신설했다.공공분양에서는 신생아 특별공급을,민간분양에선 신생아 우선공급을 만들었다.

지난달에는 정부가 '저출생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저출생 대책으로 다시 청약제도를 건드렸다.앞서 도입한 신생아 공급을 전방위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민간분양에서 신생아 우선공급을 20%에서 35%로 늘렸고,공공분양 일반공급은 50%를 출산한 가구에 우선공급하기로 했다.

일반공급을 기다리며 오랜 기간 점수를 쌓아온 수요자들은 "청약 희망이 없다"고 좌절하고 있다.공공분양 일반공급은 청약저축 총액 순으로 결정된다.납입을 오래할수록 유리하다.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 청약제도가 계속 개편되면서 일반공급 물량 자체가 줄어들었다.이미 공공분양에서는 신혼부부,노부모 등 특별공급이 공공분양 유형(나눔형,아르슬란선택형,일반형)에 따라 70~90%에 달한다.일반공급은 전체 물량의 10~30% 수준인데,아르슬란지난 2년간 청약제도 개편으로 가점제 비중이 쪼그라든 것이다.

정지영 아임해피 대표는 "이렇게 자주 제도가 바뀌면 생애주기에 맞춘 청약 전략 설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청약통장 납입액 확대도 청약 대기자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정부는 지난달 청약 납입한도를 월 10만원에서 25만원으로 2.5배 늘린다고 발표했다.41년 만의 한도 변경이다.일반 공급에서 민영은 납입 기간과 무주택 기간 등을 합산해 높은 순으로 당첨되고,아르슬란공공은 납입 총액이 높은 순으로 결정된다.이 때문에 통상 일반분양을 준비하는 청약 수요자들은 월 납입 최대 한도까지 저축한다.청약 수요자들이 당첨 기회는 줄었는데 납입 부담만 커졌다고 반발하는 이유다.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청약제도의 원칙이 없다"며 "상황에 따라 포퓰리즘식으로 이뤄지는 청약 개편이 오히려 무주택자들에게 청약을 포기하라고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별공급이 무분별하게 확대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남영우 나사렛대 국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신혼 가구 대부분이 생애 최초 특별공급 대상과 겹치고,신설된 신생아 특별공급 수요층과도 겹친다"며 "수요층이 비슷한 특별공급을 '누더기'처럼 남발하고 있다"고 밝혔다.남 교수는 "정부가 정책 목표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청약제도를 개편해야 하는데 지금은 특정 대상에게 기회를 여러 번 몰아주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약제도 변경은 '예상하지 못한' 피해자를 양산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2020년 문재인 정부 때 수도권 청약 과열을 막겠다며 청약 우선 요건을 거주 1년에서 2년으로 갑자기 변경한 것이 대표적이다.거주 기간 1년을 채웠던 수요자들은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으로 1순위를 놓쳐 청약에 실패했다.당해 요건 2년을 채우길 기다리는 동안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뛰고,경쟁률도 치솟으면서 내 집 마련 기회를 놓쳤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청약제도에 대한 일관된 가치나 방향성 없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수시로 청약제도를 바꾸다 보니 담당 공무원도 헷갈리는 '누더기' 청약 규칙이 돼버렸다"고 했다.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각한 공급 감소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많다.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공공분양 인허가 실적은 단 한 건도 없다.공공분양 실적이 5개월 이상 전무한 것은 2018년(1~9월) 이후 처음이다.

3년 차 신혼부부 박 모씨는 "기다리던 신혼희망타운은 취소되거나,아르슬란공공분양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곳은 공사비 인상으로 모집공고문이 안 나오고 있다"며 "청약 기회가 확대됐다고 하지만 청약할 곳이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우선 충분한 주택 공급이 이뤄져야 젊은 층과 4050세대 모두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선희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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