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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 워싱턴발 긴급 뉴스 하나가 터져나왔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했다는 소식이었다.왈츠 보좌관은 공석이던 유엔주재 미국대사로 옮겨갔다.형식적으로 보면 경질은 아니다.그러나 트럼프 집권 2기가 100일을 갓 지난 시점에서 왈츠는 경질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 언론은 왈츠 경질을 백악관과의 갈등 차원에서 다뤘다.필자가 본 이번 사태의 핵심은 트럼프 정부 내 얼마 안 되는 '동맹파 고관'의 추락이란 점에 있다.왈츠는 그린베레 특수부대 요원으로 중동,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한 하원의원 출신 인사다.전쟁을 피부로 느끼고 동맹국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현장 중시 인물이다.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세력들이 보면 이러한 세계관은 적과 다름없다.마가는 동맹보다 '아메리카 퍼스트' 이념을 절대시한다.

지난 3월 11일 예멘 공격에 앞서 시그널 앱을 통해 누출된 보안 사건은 왈츠에 대한 공격 명분으로 작용했다.트럼프 정부의 균열을 노리는 '리버럴' 미디어뿐만 아니라 마가파도 왈츠를 공격했다.공격하는 이유는 달랐어도 어쨌든 왈츠가 목표였다.왈츠는 동맹정책 지속을 위해 바이든 행정부 내 안보전문가를 기용했다.반중(反中)을 전면에 내세운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와 현장 중심 왈츠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있는 한 미국과 아시아 동맹국 사이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그러나 왈츠가 추락하고,루비오 장관만 홀로 남았다.가까운 시일 내 '마가파' 안보전문가가 왈츠 자리에 오를 전망이다.루비오 장관만 남은 상태에서 '아메리카 퍼스트'식 일방통행 안보구도가 한층 더 힘을 더해갈 수밖에 없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베트남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지난 4월 30일 남북통일 50주년 기념식이 베트남 전역에서 성대하게 열렸다.1975년 공산베트남은 탱크를 몰고 자유베트남 사이공을 완전 함락했다.20여년 주둔한 세계 최강 미군을 쫓아내고 달성한 통일이다.

그러나 50여년 전 실상을 알면 다른 생각도 가질 수 있다.베트남 통일은 미국이 자유베트남을 포기한 뒤 나타난 결과일 뿐이란 시각이다.공산베트남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미국이 손을 뗀 결과가 베트남 통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오해하기 쉬운데,베트남 공산당의 사이공 진입 당시 미군과의 총격전은 없었다.진입 당시,이미 미군이 베트남에서 전부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미군도 없는 무주공산 사이공에 밀려들어 통일 베트남 국기를 꽂은 것이다.

미군은 1973년 3월 29일 미국 대사관 경비 해병대만 남고 전면 철수했다.철군을 주도한 인물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다.1973년 1월 키신저는 베트남 공산당과 파리평화협정(Paris Peace Accords)을 체결한다.덕분에 197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지만,곧바로 미군 철수가 평화협정 체결 3개월 만에 완료된다.북부 공산당이 남부 수도 사이공을 완전 점령한 것은 미군 철수 종료 25개월 뒤다.키신저가 그러했듯이,왈츠가 맡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 나라의 운명을 가늠할 중대한 직책이다.

왈츠 경질이 의미하는 것

관세협상에 이어 7월 이후 열릴 한·미 군사안보협상이 걱정스럽고도 불안하다.마가파가 주도하는 일방통행 요구가 이어질 것이고,6월 3일 후 들어설 한국 새 정부가 그 같은 요구에 응할지도 의문이다.반트럼프,반미 분위기가 퍼지면 한반도 전체가 요동칠 수도 있다.'설마'라면서 부정하고 싶지만,트럼프 말 한마디에 따라 한국 경제는 물론 주식,외환,카지노 풀빌라부동산 전부 수직 추락할 수도 있다.

세계 지도를 보자.미군이 없는,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이 없는 나라는 불안전하고 불안정한 나라로 분류된다.경제에 오늘과 내일이 없다는 의미다.서방의 투자도 없고,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보듯 일단 자국민이 자국 정부와 통화를 신뢰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계엄쇼크 이래 한국은 '글로벌 정치 변방'으로 추락한 상태다.일단 한국을 상대하려는 나라가 한국의 누굴 만날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일본에 들렀다가 한국을 넘어뛰고 필리핀,베트남,인도,호주로 빠지는 식이다.한국 수뇌 대부분이 탄핵으로 무너지는 판에 외국이 상대할 카운터파트너가 누구인지 한국인 스스로도 헷갈린다.내부 사정이라면서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할 듯하지만,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한국만 특별히 봐줄 이유도 명분도 없다.한국 새 정부가 들어서는 순간 미국과 일본,유럽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유형·무형의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미 정부에 마가파가 득세하면서 각 국가의 각자도생도 활발해졌다.일본은 그 같은 대변화의 한복판에 선 나라다.유럽은 유럽연합(EU)을 통해 집단적으로 생존해 나갈 수 있다.아시아는 다르다.한국,일본의 번영과 평화는 1945년 이래 유지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 주도 평화)'의 결과물이기도 하다.중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위협하면서 한국,일본을 '늑대외교'로 대하고 있다.미·일 동맹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중국의 물리적 협박이 도를 더해가고 있다.일본의 선택은 무엇일까?

현재 일본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독자적 협력체제 구축에 모든 힘을 모으고 있다.크게 두 개 트랙,즉 동맹과 경제블록으로 나아가고 있다.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을 '국난'으로 규정했다.민·관·군을 하나로 엮은 수많은 비상대책위원회가 움직이고 있다.미국만 믿다가는 나라 전체가 떠밀려갈 것이란 위기감이 열도 전체에 퍼져나가고 있다.

관세폭탄의 핵심은 단순히 '관세 몇 퍼센트'에 국한되지 않는다.언제,어떻게,어떤 식의 관세가 책정될지에 대한 '무기한 불확실성'이 구체적 수치의 관세폭탄보다 더 무섭다.모든 것이 불투명해지면서 1년 뒤는 고사하고 한 달 뒤 계획도 잡을 수 없다.비즈니스 자체가 올스톱이라 보면 된다.

지난 4월 27일부터 시작된 이시바 총리의 필리핀·베트남 공식방문은 그 같은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다.간단히 말해 두 나라 방문은 1945년 이전 일본 군국주의가 보여준 '대동아공영' 구상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종전 80주년 기념을 겸해 이뤄진 양국 방문이지만,실제 보면 1945년 이전 아시아 질서재현이 이시바 총리의 방문 목적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대동아공영권의 적은 미국이다.2025년은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적이다.이시바 총리는 양국 정상과 만나 똑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다."동·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가 있다.(중략) 베트남·필리핀과 안보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싶다."

이시바 총리 이전까지 상황이지만,일본은 동아시아와 남중국해 문제의 원흉을 '중국'이라 못박지 않았다.이시바 총리는 다르다.중국을 주어로 내세우면서 지역 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는 적으로 규정했다.필리핀은 이시바 총리의 주장에 120% 찬성하면서 양국 간 군사안보협력에 적극 응했다.베트남도 자극적인 발언은 삼갔지만,양국 간 안보협력을 통해 '2025년 버전 대동아공영'에 찬성했다.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무기와 장비들이 필리핀과 베트남으로 들어갈 전망이다.

한국 새 정부의 선택은?

2025년 일본은 바이든 정권하의 인도·태평양 전선에 준할 대동아공영 안보전선을 구축해나가고 있다.일본이 선두에 서면서 호주,뉴질랜드,필리핀,인도네시아,인도가 공영권에 들어서 있다.아시아 외 나라로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도 일본을 통해 대동아공영 안보전선에 참여하고 있다.반중 전선의 핵심은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한 인도·태평양 전선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과 외교안보정책이 불확실하고 왈츠마저 실각한 판이다.앉아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직접 일본이 움직이면서 반중전선을 촘촘하게 엮어가고 있는 상황이다.구체적으로 최근 이뤄진 일본의 반중전선 행보를 살펴보자.차기 총리 물망에 오르는 자민당 중의원 다카이치 사나에의 4월 말 대만 방문과 5월 4일부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행보가 눈에 띈다.

한국은 일본 주도하의 반중전선 바깥편에 서 있다.중국의 서해 침탈이 가속화되고 있지만,일본 주도하의 지역협력체 참가에는 부정적이다.쥐를 잡더라도 검은 고양이,흰 고양이 족보를 따지는 나라가 한국이다.일본도 한국을 낀 반중전선 구축에 무심하다.한국이 없는 일본,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호주,인도로 이어지는 75년 전 '애치슨라인'이 2025년 대동아공영 안보전선으로 굳어지고 있다.중국의 서해 침탈 문제도 한·중 양국 문제일 뿐,일본이나 다른 나라들과 무관한 사안으로 넘어가고 있다.

일본은 군사외교뿐만 아니라 경제적 차원의 대동아공영 활동도 가속화하고 있다.2018년 12월 발족한 '환태평양파트너십(CPTPP)'이 주무대다.일본이 주창한 지역 내 경제체제로,관세완화,서비스 투자,지식재산에 관한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조직이다.현재 일본을 중심으로 영국,호주,싱가포르 등 11개 나라가 여기에 가입해 있다.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관세폭탄에 맞서 CPTPP를 통한 지역 내 경제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관세폭탄을 맞더라도 CPTPP 가맹국 사이의 수출입과 거래를 통해 살길을 찾자는 전략이다.중국은 2020년 11월 일본 CPTPP를 모방해 '지역적 포괄적 경제연대(RCEP)'를 발족한다.RCEP는 아세안 10개국이 중심이 된,중국 변방 국가 경제협력체란 성격이 강하다.일본 CPTPP는 아시아만이 아닌 서방에 연결된 경제협력체란 점에서 구별된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 CPTTP는 물론,중국 RCEP에도 무심하다.트럼프식 외교에서 보듯,집단이 아닌 1 대 1 회담이 미국의 협상 구도다.트럼프 정부 2기 출범 이후 한·미·일 3각 논의가 사라지고,한국과 미국,미국과 일본 1 대 1 협상만이 존재한다.놀랍게도 한국은 중국 RCEP에는 참가하지만,일본 CPTTP에는 미가입 상태다.한국은 한·중·일 3국 자유무역협정(FTA)에 기대를 걸면서 CPTTP 가입에 소극적이다.그러나 중국이 저작권 문제에 반대하면서 한·중·일 3국 FTA 발족도 순조롭지 못하다.

1894년 청일전쟁 때는 중국 편,1904년 러일전쟁 때는 러시아 편,1940년대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 편에 선 것이 한반도의 과거 행적이다.'선택과 결단'은 한 달 뒤 새로 들어서는 정부의

1차적 과제이자 책임이다.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과 시진핑 주석의 중국,나아가 일본과 중국 양국 중 어디를 한국의 미래로 잡을지에 대한 '선택과 결단'이다.양다리를 걸치면서 적당히 넘어가려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트럼프와 시진핑 누구 탓인지 모르겠지만,팍스 아메리카나가 저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한국을 변방으로 내몰 21세기 신(新)애치슨라인도 이미 한반도 주변에 성큼 다가선 상태다.로마 철학가 세네카가 말했던가?"진짜 보석은 수없이 갈고닦은 뒤에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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