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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러시' 현실화
작년 의원급 개원 1996곳 중 759곳
1년새 일반의 개원 94개소 늘어
대학 병원 이탈한 전문의도 개원
"전공의 이탈·전문의 사직 등 영향"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 병원 간판들의 모습.일반의 혹은 자신의 전공과목이 아닌 과목을 진료하는 의원의 경우 병원 이름 앞에 진료과목을 적을 수 없다./ 사진=김영리 기자 
"의사도 요즘 힘들어요.지난 황금연휴에 임시 공휴일 지정 안 된 것이 다행일 정도였어요."
서울 종로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김모씨(54)는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개원 러쉬가 일어 형편이 어려운 개원가가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문을 연 의원급 의료기관 중 3명 중 1명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일반의'인 것으로 나타났다.일반의 개원 수가 201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면서,의정 갈등에 따른 대학병원 내 전공의 이탈이 '개원 러시'로 이어졌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원 표시과목별 개·폐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지난해 문을 연 의원급 의료기관 수는 1996곳으로 전년(1798곳) 대비 11.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새롭게 문을 연 의원 중 가장 큰 비중(38%)에 달하는 759곳이 전문 진료과목이 없는 일반의가 개원한 것으로 확인됐다.일반의 개업의 경우 2019년 582곳,2022년에는 673곳,2023년에는 665곳 등으로 꾸준히 증가해오다 지난해 94곳이 늘면서 최근 6년 새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의사는 인턴 이후 진료과를 정하고 대학병원에서 3~4년간의 전공의 수련 과정(레지던트)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일반의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의사다.
통상 개원 업계에서는 전문의 자격이 없을 경우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이유로 자체 개업이나 일선 병의원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지난해 의정 갈등으로 인해 대학병원에서 이탈한 일반의들은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개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업계에선 의원급 의료기관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내다봤다.실제로 동네의원의 점 빼기 시술,보톡스,비타민 주사 등 인기 시술의 가격대가 낮아졌고,개원 시 자본이 부족할 경우 동업을 선택하거나,개원을 서두르는 분위기도 포착됐다.의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진료과목의 전문의 페이닥터를 추가 고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피부·탈모 전문 의원 개원의 성모씨는 "주변에 사직 전공의들이 선배들의 병원에 몇 달 '페이닥터'로 근무하면서 레이저,보톡스,정선 카지노 잭팟수액 등 간단한 술기를 배운 후 개원한 사례가 많다"고 했다.그러면서 "보톡스나 비타민 수액 치료의 가격대가 점점 저렴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학병원에서 업무 과중을 이유로 병원을 관둔 전문의도 다수 개원에 뛰어들었다.일반의를 제외하고 지난해 가장 많이 개원한 진료과목은 내과(212곳),정형외과(155곳),정신건강의학과(110곳),마취통증의학과(96곳) 순으로 집계됐다.
경기 용인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양모씨(60)는 "주변 지역 젊은 의사가 개업한 이비인후과 2개나 생겨 매출이 급감했다"며 "폐업 후 인근 요양병원의 관리 의사로 취업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근의 마취통증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는 원장 이모씨(65)도 "의정 갈등 이후 정형외과 사직의를 새롭게 고용해 휴일에도 영업하기 시작했다"며 "결국 지역 개원의들의 '손님 갈라먹기'라는 것을 알지만 경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필수 진료과 의사들의 낮은 보상과 열악한 근무 환경 문제와 의정갈등까지 겹쳐 지난해‘개원 러시’가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계에서는 앞으로 개원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 예상해 '빨리 개원할수록 좋다'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