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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라는 섬,잃어버린 땅
우리에겐 잃어버린 땅이 있다.사이 '간(間)' 섬 '도(島)',사이에 있는 섬 '간도'다.간도는 중국 길림성 동남부와 압록강·두만강 너머에 위치한 땅이다.고조선에 이어 고구려,발해까지 우리 조상의 얼과 문화,삶이 깃든 역사의 터전이기도 하다.
청나라는 자신들의 조상이 백두산에서 탄생했다는 신화를 앞세워 만주와 간도 지역을 신성한 영토로 지정하고 1658년 봉금령을 내렸다.그러나 조선인들은 봉금령 이전부터 생계를 영위해오던 만주와 간도를 포기하지 않았다.1869년 함경도,평안도에 대흉년이 들자 살기 위해 강을 건넜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1909년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체결했으며 간도를 청나라 영토로 인정했다.1910년 한일합방 후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독립지사들은 간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황무지를 개척하는 것과 동시에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고자 항일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 서려 있을까.만주와 간도를 개척해 왔던 수많은 조선인들의 땅,'곳'에 미약하게나마 우리의 발걸음을 포개본다.
◆중국 길림성(吉林省,지린성) 연변(延邊,옌볜) 조선족자치주 연길(延吉,옌지)로
대구에서 출발한 항공기는 약 3시간여 만에 연길공항에 도착했다.나라와 나라를 넘어오는 동안 우리는 아무도 경계를 가늠하지 못했다.지난겨울,첫 연변 방문 때 사회주의 국가로 진입하는 절차에 대해 적잖이 놀랐다.기내 창문 셔터를 모두 내리고 개방금지 스티커까지 붙이는 것도 모자라 불마저 끈 채 암흑 속에서 착륙했던 두려움은,한번 경험했던 탓일까 견딜 만했다.
연길공항을 빠져나오니 온통 새 푸르다.연길에도 여름이 온 것이다.계절만 바뀌었다 뿐이지 여전하다.조선족자치주답게 조선어를 쓰고,보란 듯이 조선어로 표기된 간판들이 맵시 있게 걸렸다.그도 그럴 것이 조선족자치주는 전체 인구의 약 40%가 조선족이다.중국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버드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부르하통하(河)를 건너,중국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조선족이 세운 연변종합대학 앞을 지난다.이 머나먼 땅에 뿌리내린 조선인들의 기상이 느껴져 자부심이 인다.
연길 시내를 벗어나니 풍경이 여유롭다.옥수수 밭이 끝없이 펼쳐지고,소와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광활한 들녘과 집과 집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은 우리네 시골과 많이 닮았다.이 너른 벌판에 사람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인간의 개척 정신에 놀라울 따름이다.
◆도문([圖們,투먼)에서 마주한 북녘 땅
연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달려 도문에 도착했다.도문은 두만강 중류에 자리 잡은 국경 도시다.인구의 약 60%가 조선족으로,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과 마주하고 있다.도문광장에 달려 나가니 두만강 건너 북녘 산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반갑다.아니 놀랍다.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헐벗어 적막함을 더하던 그 민둥산이 어찌 이리도 푸르단 말인가.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 상상할 수 없던 산이었다.헐벗은 땅도 씨앗을 품고,뿌리를 숨기고 있었던가.떨어져 나간 살점처럼 아프기만 하던 그 민둥산에 새살이 돋듯 푸르게 푸르게 돋아난 저 풀들의 눈부심을 무어라 표현하리.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산이 살아있는 것이다.개망초,싸리,엉겅퀴,씀바귀,쑥부쟁이,가시박이가 저 산에도 자라겠지.산 아래 살림집 담장마다 민들레 갓 털 바람에 날리고 물봉선화,과꽃이 예쁘게 피겠지.바람이 불면 풀과 꽃들은 초연히 흔들리면서도 의젓하게 자존심을 지키겠다.
국경을 따라 북녘의 헐벗은 산과 궁색한 접경 마을의 겨울은 적잖은 충격과 서글픔을 안겼다.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끝내는 아사하고 마는 꽃 제비의 실상만 떠올렸던 편견에 금이 가고 있다.산비탈마다 자연과 정갈하게 조화를 이룬 뙈기밭은,북녘 주민들의 바지런함을 그대로 보여준다.겨울의 단면만 보고 떠올렸던 그 애잔함은 간데없고 한여름 볕에 곡식이 자라는 소리가 씩씩하게 들려오는 듯하여 마냥 기쁘다.
◆두만강 521km,그 끝없는 흐름
꽁꽁 얼어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던 두만강이었다.강도 흐름을 기억하는지 날이 풀리니 제 흐름을 저리도 잘 가다듬었다.너그럽고 순조로운 기운으로 웅숭깊게 흘러가는 자태를 보니 백두의 기운임을 실감한다.
두만강은 백두산 천지 동남쪽 대연지봉(2,360m) 기슭에서 발원하여 무산,회령,온성,경흥을 적시고 동해로 가 뒤 섞인다.두만강엔 끊어진 두 개의 다리가 있다.중국 량수이와 함경북도 온성을 잇는 단교는 1945년 8월,일본군이 남하하는 소련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폭파했고,훈춘 슈아이완즈와 경원군 훈융리를 연결했던 다리는 1945년 8월,재철생선소련군이 일본군의 퇴로를 막기 위해 폭파했다.일본과 소련이 서로를 방어하기 위해 한반도로 연결된 다리를 하나씩 폭파한 것이다.
두만강은 하류 끝 15km 지점에서부터 조선,중국,러시아 3국의 국경지대를 이룬다.두만강 전체가 접경지대지만 강폭은 좁은 편이다.도문광장에서 어림잡아 400~500m로 강 건너 남양노동자구와는 지척이다.도문과 남양을 잇는 대교와 철교가 나란히 놓여 두 나라의 교류를 활발히 열고 있다.작년까지만 해도 남한 관광객이 대교 중간까지 통행할 수 있었지만,현재는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
도문광장에서 느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인 중국의 국경은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고요하고 평화롭다.중국과 북한은 한 번의 충돌도 없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서로 공유한다.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물줄기는 총 1334㎞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조약에 따라 강수면 너비의 중간을 국경으로 정하고 있다.
아픈 기억도,재철생선참담한 역사도 두만강은 모두 기억하리.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로서는 함부로 오갈 수 없는 저 건너의 땅을 마냥 슬픔으로만 읽어 내려 할 뿐이다.그래서인지 바로 눈앞인 북녘 땅을 두고 왠지 모를 참담함과 먹먹한 감정을 앞세워 바라볼 뿐이다.
어느 곳을 이토록 간절히 응시했던 적이 있었을까.흐르는 물결을 두고 이토록 침묵했던 적이 있었을까.이쪽과 저쪽을 공평하게 담그고 흘러가는 강을 두고,우리는 서로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 할까.
국경의 여름은 두만강으로부터 온다는 믿음을 품고 발길을 돌린다.'잘 있거라 두만강아,씩씩하고 호방하게 흘러라 물결아.뒤채이고 뒤채이다 동해 그 어디쯤에서 두만강 물결에 발 담그고 자라난 이를 만나거든 그저 반갑게,반가웁게 달려가 그의 늙은 발을 씻겨주렴.그의 눈시울 붉어지거든 북녘 땅 여전히 푸르게 푸르게 잘 있다고 일러주렴.'
두만강은 험악한 고해를 기억하지 않는다.더는 서러움의 몸부림도 품지 않는다.꽃봉오리 맺힐 때와 곡식 익어갈 때를 기억하며,들을 적시고 수많은 물고기를 키우며 술렁술렁 동해로 흘러가기를 기원하련다.
박시윤 답사기행 에세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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