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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회사 출근.

40대 중반 이후 직장인이라면 이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 수 있다.이른바 주 5.5일 근무제였다.

이 제도가 사라진 시기는 2004년부터 8년에 걸쳐서다.주 5일제가 확대하던 2006~2011년 사이에는 매월 둘째 주,넷째 주 토요일이 휴일로 지정되며‘놀토(노는 토요일)’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전 기업이 주당 40시간 일하는 현행 제도는 2011년에서야 정착했다.

14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새로운 근무 형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주 4.5일제다.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21대 대통령을 향한 레이스에서 이 공약을 내걸었다.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4월 30일 “노동 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4.5일제에 이어 장기적으로 주 4일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이에 질세라 국민의힘도‘주 4.5일제’를 공약에 담았다.

韓 과로사회에 대한 반성

AI 시대,시간 대신 창의성 중요해져

노동 시간 단축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그간 한국이‘과로사회‘피로사회’라는 오명을 들어왔기 때문이다.지난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 시간은 1872시간이다.예전보다 점점 감소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OECD 34개국 가운데 한국은 멕시코(2207시간),칠레(1953시간),이스라엘(1880시간) 등에 이어 5번째로 일을 많이 하는 국가다.

장기 근로가 한국의 초기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투여한 노동 시간만큼 성과가 뚜렷했기 때문에 오래 일하는 게 미덕이었다.섬유,토토정보통신신발,의류 제조업이 그랬고 이후 한국 경제의 부흥을 이끈 자동차,철강 등 중공업도 마찬가지였다.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했을 만큼 세계 경제는 호황이었다.야근이나 초과근무는 당연시됐다.그러나 노동 투입을 늘리면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명제는 4차 산업혁명 도래와 함께 힘을 잃었다.특히 AI(인공지능) 시대에서 근면성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게 됐다.어지간한 노동력은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근로 시간 증가만큼 생산성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알게 됐다.다니엘 쿡의 생산성 법칙에 따르면,주 40시간을 넘어 일하면 생산성은 더 떨어진다.미국 스탠퍼드대 역시 주당 근로 시간이 50시간을 넘어서면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된다는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재명 후보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그는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성공이 보장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AI 등장으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기계가 맡을 것이고,사람은 창의성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이 밖에 휴식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연구도 노동 시간 단축론자에 힘을 실어줬다‘워크라이프밸런스(Work Life Balance)’를 중시하는 풍토 역시 주 4.5일제의 근거가 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걸며 21대 행정부에서 노동 시간 단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사진은 여의도 직장인.(매경DB)민주당 “임금 감소 없는 감축”

국민의힘 “유연근로형 주 4.5일제”

6·3 대선을 앞두고 양당 모두‘주 4.5일제’를 꺼내들었지만,각론은 크게 다르다.

민주당은 무조건적인 노동 시간 단축을 주장한다.법정 근로 시간을 현행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줄이는 게 골자다.2022년 대선과 지난해 총선에서도 내세웠던 공약이다.근로 시간을 줄이면 원칙적으로 임금이 줄어든다.그러나 이재명 후보는 “포괄임금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겠다”며 “기존 임금 등 근로조건이 나빠지지 않도록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안은 쉽게 말해 유연근로형 4.5일제다.가령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에 4시간만 근무하는 형태다.법정 근로 시간(주 40시간)엔 변화가 없다.이 방식은 이미 대기업을 중심으로 몇몇 기업이 시행 중이다.국민의힘은 더 많은 일터에서 주 4.5일제를 활용하도록 저변을 높이겠다는 게 핵심이다.노동 시간을 줄이지 않고 주 4.5일제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 설명대로 이미 적지 않은 기업이 주 4.5일제를 시행 중이다.포스코는 지난해부터 상주 사무직을 대상으로‘격주 주 4일제형 선택적 근로 시간제를 시행해왔다.격주 주 4일제 방식이라 사실상 주 4.5일제다.그동안 포스코는 1개월 이내 단위 기간을 정하고,주 평균 40시간 이내에서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해 근무해왔다.이 같은‘선택적 근로 시간제’를 업데이트해 격주 주 4일제 근무 형태를 만들었다.2주 단위 평균 주 40시간 내 근로 시간은 유지하면서 첫 주는‘주 5일,사이판 베가스 카지노다음 주는‘주 4일’을 근무하는 식이다.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9시간,격주 금요일은 8시간을 기본 근무 시간으로 선택하면 2주에 총 80시간(1주 40시간)을 채울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월 1회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필수 근무 시간을 채우면 월급날(매달 21일)이 속한 주 금요일을 쉴 수 있다.SK그룹 일부 계열사들은‘해피프라이데이’를 도입했다.SK텔레콤과 SK㈜는 한 달에 2번 금요일에 쉬는 근무제를 채택했다.SK하이닉스는 월 1회 주 4일제를 한다.이 밖에도 ▲카카오 ▲CJ ENM ▲여기어때컴퍼니 등이 부분적 주 4일 제도를 시행 중이다.

국민의힘 공약 실현 가능성 ↑

민주당 방식은 기업 부담 가중시켜 재계 반대

공약만 보면 국민의힘 안이 실현 가능성이 높다.노동 시간 감소가 없어 기업 부담이 늘어나지 않아서다.유연하게 근로 시간만 조정하는 방식으로 공약 실현이 가능하다.국민의힘이 민주당 안을 비판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주 4일제,주 4.5일제는 근로 시간은 줄이지만 받는 급여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며 “근로 시간을 줄이면 받는 급여도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라는 비판에 민주당은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권 위원장 말대로 민주당 안은 고려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민주당 안의 핵심은‘임금 삭감 없는 근로 시간 단축’이다.이 경우 기업 비용 증가가 따른다.줄어드는 근로 시간만큼 사람을 더 뽑거나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이 후보는 주 4.5일제 도입 기업에 대한‘확실한’지원이라는 당근책을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일각에선 “주 5.5일제에서 주 5일제로 매끄럽게 넘어갔는데,주 4.5일제라고 못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주장한다.전문가들은 경제성장기와 정체기를 구분해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 이후 첫해인 1998년은 경제성장률이 -5.1%였다.이후 1999년 10%대 넘는 성장세를 기록하는 등 급반등했다.2000년대 초반만 해도 경제성장률은 5%대를 넘어섰다.이처럼 한국 경제가 급성장할 때는 노동 시간 감축이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올해 1분기 한국 경제는 역성장(-0.2%)했다.반짝 쇼크가 아니다.4개 분기 연속 0.1%에 못 미칠 정도로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내수 부진의 골이 깊은 데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예상치 못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은 “지금 한국 경제와 기업이 근로 시간 감축을 감당할 체력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짚었다.

당연히 재계에서는‘주 4.5일제’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높다‘소수 대기업’을 제외하면 주 4.5일제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한국경영자총협회가 노동 시장과 노사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 입법으로‘주 4일제 또는 주 4.5일제(34.3%)’를 첫손으로 꼽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제22대 국회에 바라는 고용노동 입법 설문조사).주 4일제나 주 4.5일제를 모든 업종,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정책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게 일관된 경총 주장이다.한 중소기업 대표는 “주 52시간도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 4.5일제 논의는 딴 나라 얘기 같다”며 “현실 불가능한 얘기”라고 일축했다.

김민석 고용노동부 장관대행(차관)도 최근 “(주 4.5일제,주 4일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근로 시간이 줄어드는데 임금이 똑같다면 시간당 임금이 오르는데 이러면 버틸 수 있는 곳(기업)이 많겠느냐”고 했다.이어 “주 4.5일제를 한다면 정부 재정 지원이 필요한데 정부가 얼마나 투자할 것인지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 단축 해외 사례 많지만

경제 규모·인구 등 韓과 달라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해볼 순 없을까.결론부터 말하면 국가별로 사정이 다르다.

2015년 공공 부문에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한 아이슬란드는 근로자 삶의 질과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했다.이를 토대로 2020년부터 산업 전체로 주 4일제를 확대했다.현재는 50% 이상 근로자가 참여 중이다.아랍에미리트(UAE)는 2022년 연방정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 4.5일제(주 36시간)를 전면 도입했다.

성공 모델처럼 보이지만,두 나라와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아이슬란드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1.7% 수준으로,인구도 40만명에 불과하다.산업 구조 역시 에너지와 어업 중심이라 제조업 기반인 한국과 차이가 있다.UAE는 대표적인 산유국이라 한국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

두 나라를 제외하면 대체로 국민의힘 공약대로 근로 시간에 손대지 않은 유연근로제 형태 주 4~4.5일제가 주류다.벨기에가 2022년 공식적으로 도입했고,영국·일본·뉴질랜드도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임금 감소를 동반하면 참여율은 크게 떨어진다.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는 2021년 임금 15%를 줄이며 근로 시간을 단축하려 했지만,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기계적인‘주 4.5일제’보다…

실제 근로 시간 줄여야…생산성 향상이 핵심 조건

전문가들은 기계적으로 실시하는 주 4.5일제가 아닌,실제 근로 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전 세계 대다수 국가의 법정 근로 시간은 주 40시간 전후로 큰 차이가 없다.예컨대 독일은 법정 근로 시간이 하루 8시간으로 한국과 같다.그런데 연평균 근로 시간은 1349시간으로 한국(1872시간)과 차이가 크게 난다.파트타임 등 단시간 근로자가 많고,풀타임이라도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해서다.실 근로 시간을 줄이려면 일할 때 일하고,쉴 때 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예를 들어 이번 주엔 일하고,다음 주엔 쉬는 식의 근무 환경이 가능해야 한다.

한국 근로 시간 체계는 주요 국가 중 가장 경직적이라고 평가받는다.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을 강조하다 보니 그 시간만 채우는 데 급급하다는 설명이다.예를 들어 독일은 1일 근로 시간이 똑같은 8시간이지만 6개월 평균 8시간이 기준이다.주 단위로 규제하는 한국과 다르다.일본 역시 연장근로 상한을 월이나 연 단위로 규정한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한국은 장시간 근로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높지 않다.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0.99달러다.아일랜드(132.43달러),룩셈부르크(111.14달러)는 물론 미국(83.62달러),일본(51.02달러) 대비 현저히 낮다.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34개국 중 26위다(2023년 기준).

일은 많이 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를‘공허노동(empty labor)’으로 설명하기도 한다.롤랜드 폴슨 스웨덴 사회학자가 처음 쓴 이 말은 근로자가 일과 무관한 업무 시간 잡담,모바일·인터넷 서핑 등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뜻한다.최근 들어선 비슷한 개념으로‘가짜 노동(fake labor)’이라는 용어를 쓴다.

노동 시간 단축에 나섰다 돌아선 기업도 있다.음식 배달 앱‘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5년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월요일에는 오후 1시에 출근하는 제도였다.그러다가 2017년 아예 주 35시간제를 도입한 데 이어 2022년부터는 주 32시간제를 운영했다.개발자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하지만 절대 근로 시간이 부족해지자 연장근로를 늘렸다.조직원 근로 시간은 사실상 주 5일제로 돌아섰다.회사는 인건비 부담만 늘어난 셈이 됐다.우아한형제들은 오는 7월 전면 재택근무를 폐지하고 주 2회 사무실 출근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오는 2028년 서울 잠실로 사옥을 이전한 뒤에는 사무실 출근이 주 3회로 늘어난다.배달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실적이 떨어지자 내린 결정이다.

결국 주 4.5일제가 안착하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일관된 목소리다.근로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되 효율성을 높여 임금을 보전하며 생산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식이다.

해외에서도 이를 입증할 만한 사례가 나왔다.스웨덴의 예테보리의 살그렌스카 대학병원은 2015년 의료진 89명의 임금은 그대로 둔 채 하루 6시간 근무를 실시했다.15명 추가 고용에 비용이 더 투입됐다.하지만 수술 건수가 20% 더 늘어날 정도로 효율이 좋아져 환자 대기 시간이 대폭 단축되는 효과를 거뒀다.

노동 시간은 노사가 자율로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근로 시간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기보다 업종·근무 특성 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생산성 혁신과 산업 구조 개편 없이 정치적 인기몰이만을 위한 정책은 다음 세대의 몫을 갉아먹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명순영 기자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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