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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한국의 친생부모 찾았지만 만남 거부당하는 해외의 입양인들"
"죽기 전에 친생부모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암투병중인 입양인도 있어"
"입양과정 불법은 수사해야"…몽테뉴입양연대 배진시 대표 등 3인 인터뷰
편집자 주=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와 같은 단체 이승훈 사무국장,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의 공동 인터뷰 기사는 네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이번이 세 번째 기사로 주로 해외 입양아동들이 한국의 친생부모를 찾는 사연 등을 다뤘습니다.첫 번째 기사는 3월17일 프랑스 입양인 장성탄 씨의 사연을 담은 것으로 [삶] "국가가 보낸 입양아 죽어가는데…국가 수수방관,말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두 번째 기사는 3월31일 [삶] "서양 양아빠,한국자매 6년간 성폭행…일부러 뚱뚱해진 소녀"라는 제목으로 나갔습니다.해외 입양인들이 당하는 성폭력 등을 담았습니다.조만간 송고되는 네 번째 기사는 입양과 관련한 구조적 문제점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입양인 고통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이승훈 몽테뉴해외입양연대 사무국장(왼쪽),같은 단체 배진시 대표(가운데),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오른쪽) [진성철 기자 촬영]](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PYH2025031701040001300_P4_20250512062116678.jpg?type=w860)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이승훈 몽테뉴해외입양연대 사무국장(왼쪽),같은 단체 배진시 대표(가운데),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오른쪽)
[진성철 기자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프랑스로 입양 가서 그곳에서 성장한 40대 딸은 친엄마가 보고 싶었다.딸은 입양기관을 통해 간신히 엄마를 찾아냈다.딸은 2005년 입양기관 사무실에서 15분 정도 친엄마를 만났다.너무 아쉬웠기에 다시 보고 싶었던 딸은 2010년 친엄마한테 연락했다.그런데 친엄마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대신,딸이 서울 동대문의 큰 도로 건너편에 서 있으면 자기는 도로의 반대편에서 얼굴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당일 어머니는 길 건너편에 서 있는 딸을 봤다.그런데 딸은 반대편의 어머니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그쪽 도보에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엄마를 한참 찾던 딸은 자신을 응시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옆모습과 실루엣만 잠깐 봤다."
위의 내용은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MOAA) 대표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실제 사례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모녀가 상봉하는 모습은 1950년대,1960년대 소록도의 수탄장(愁嘆場)을 연상시킨다.당시 소록도는 한센병을 가진 부모에 의해 아이들이 감염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부모와 아이의 생활공간을 분리했다.다만 한달에 한번씩 수탄장 도로(가운데는 철조망) 양옆에 부모들과 자식들이 각각 줄지어 서서 1시간가량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아이들은 엄마 품에 안기고 싶어 다가서다가 감시 요원한테 제지당하곤 했다.손 한 번 잡아아줄 수 없는 엄마는 자식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다 떠나야 했댜.수탄장은 말 그대로 탄식과 울음이 가득한 곳이었다.
!["우리 아가야,아픈데는 없지?" 1950년대,1960년대 소록도의 수탄장 모습 [SNS 캡처 사진]](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AKR20250511013700546_02_i_P4_20250512062116683.jpg?type=w860)
1950년대,1960년대 소록도의 수탄장 모습
[SNS 캡처 사진]
몽테뉴해외입양연대의 배 대표,같은 단체 이승훈 사무국장,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 소장과의 공동 인터뷰는 3월 12일부터 5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해외 입양인들은 성장기에 외국의 낯선 곳에서 정서적,신체적,성적인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면서 "성인이 돼서 한국을 찾아오는데,친생부모의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고,있다고 하더라도 내용이 사실과 다른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입양인의 비극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면서 "정부는 해외 입양전반에 대해서는 공식 사과해야 하며,불법 행위를 저지른 기관과 관계자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고 했다.
![1955년 당시 홀드아동복지회 설립자인 해리 홀트 씨와 양자들 [국가기록원 자료]](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PYH2013011709750001300_P4_20250512062116688.jpg?type=w860)
[국가기록원 자료]
<다음은 3인 공동 인터뷰 3차 기사 질문-답변>
※ 인터뷰이=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같은 단체 이승훈 사무국장,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
-- 외국으로 입양 간 아이들이 겪는 또 다른 학대가 있다면.
▲ (배 대표) 양부모가 성폭력,언어적 폭력,신체적 폭력을 하지는 않지만,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밥을 주는 등의 부모 역할은 하지만 사랑으로 키우지 않는 것이다.내가 프랑스 유학 시절 입양인 집에 가는 경우가 있었다.어떤 집은 으리으리하게 크고 아이의 방도 있었지만,방안에는 침대와 책상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과거의 하녀 방처럼 썰렁했다.
-- 사랑받는 아이의 방은 다르다는 건가.
▲ (배 대표) 사랑받는 아이 방을 보면 벽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 붙어있고,방바닥에는 장난감 등이 어질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방안에 아이들의 낙서가 있는 것도 정상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 1989년 1월 해외로 입양 가기 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홀트 임시 보호소에서 대기 중인 아이들 [연합뉴스 사진]](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2021010_0095_P4_20250512062116695.jpg?type=w860)
1989년 1월 해외로 입양 가기 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홀트 임시 보호소에서 대기 중인 아이들
[연합뉴스 사진]
--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한국 출신 입양인에 대한 차별도 줄어들지 않았나.
▲ (배 대표) K-팝을 비롯한 K-문화 영향으로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감소하다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다시 늘었다.중국인이 코로나를 퍼트렸다는 소문이 돌았는데,덩달아 한국인까지 혐오 대상이 된 것이다.내가 아는 한 입양인은 유럽에서 바텐더로 일했는데,그만둬야 했다고 한다.손님들이 올 때마다 코로나를 퍼트린 사람처럼 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서양 사람들은 동양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인가.
▲ (배 대표) 그들은 신체적 외양이 동양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중세 시대 유럽에 쳐들어왔던 몽골인들에 대해 묘사한 내용을 유럽 책에서 본 적이 있다.그 책은 '진흙을 뭉친 것 같은 동그란 것이 눈코입도 보이지 않았는데,말을 타고 빠르게 날아왔다.다리는 말에 착 달라붙어 있었는데,너무 짧아서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다.혐오스러운 묘사다.
▲ (권 소장) 우생학은 특정 인종이나 유전형질을 '우수하다'고 봤는데 이때 '우수한' 인종이 백인으로 전제되는 경우가 많았다.심지어 서양인,동양인,원숭이 등의 뇌 무게를 비교하여 가장 무거운 뇌를 가진 서양인이 가장 우수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머리 무게가 많이 나가면 머리가 좋은가.
▲ (권 소장) 그건 아니다.뇌의 무게와 지능 사이에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일반적 견해다.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잘못된 과학적 근거를 이용해 백인의 우월함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유럽 열강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해 선주민(원주민)을 학살하거나,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것도 이 같은 인종적 우월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독일 나치즘도 우생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열등한' 인종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했고,이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됐다.현재 우생학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에밀리 씨의 모습 [본인 제공]](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AKR20250511013700546_03_i_P4_20250512062116700.jpg?type=w860)
[본인 제공]
-- 잠을 못 자는 질병을 겪고 있는 프랑스 입양인 장성탄 씨처럼 유전자 정보가 필요한 입양인이 또 있나.
▲ (이 국장) 미국으로 입양 간 에밀리 씨도 애타게 부모를 찾고 있다.유두암 투병 중인데,친생부모의 병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미국 병원들은 질병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가족력을 중시한다고 한다.
-- 에밀리 씨의 친생 부모에게 연락이 갔나.
▲ (이 국장) 홀트아동복지회는 친모의 주소지를 확인했지만,친모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밀리 씨에게 인적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에밀리 씨는 조만간 아동권리보장원에 다시 요구할 생각이다.
-- 홀트아동복지회는 에밀리 씨 친모에게 어떻게 연락했나.
▲ (이 국장) 등기로 우편물을 보냈다고 한다.아동권리보장원NCRC)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데,적절하지 않다고 본다.친부모가 거부감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 에밀리 씨는 왜 입양 가게 됐나.
▲ (이 국장) 당시 친부모는 20대 대학생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아기를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안 돼서 입양을 선택했다고 한다.친부모는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다.
-- 장성탄 씨와 에밀리 씨처럼 질병 때문에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를 찾는 입양인이 늘어날 듯한데.
▲ (배 대표) 1980년대에 해외로 입양 간 아이들이 많았는데,cns 토토지금은 중년의 40대가 됐다.이들이 친생부모의 가족력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에밀리 씨에 따르면 미국에 사는 한국 출신 입양인 중에서도 암에 걸린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고 한다.이들은 자신의 병이 유전적 영향인지에 대해 궁금해한다고 한다.
![한자리에 모인 세계 한인 입양인 2023년 7월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 주최 세계한인입양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연합뉴스 사진]](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PYH2023071111210001300_P4_20250512062116706.jpg?type=w860)
2023년 7월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 주최 세계한인입양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을 찾는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건 무엇인가.
▲ (이 국장)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친부모를 보고 싶어 하는 해외 입양인도 있다.노르웨이로 입양 간 어떤 분은 2년 전에 우리한테 연락을 해왔다.본인은 암에 걸려서 죽을 가능성이 있는데,죽기 전에 친부모님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다.그 이후 연락이 끊겼다.이분이 살아 있다면 올해 나이가 48세다.
-- 정체성 때문에 친생부모를 찾는 사람들도 많은데.
▲ (권 소장) 누구나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자신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 한다.한 입양인은 친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자주 왔지만 찾지 못했다.입양기록 등을 볼 수도 없었다.그래서 그는 K-팝 오디션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TV를 보고 친엄마가 연락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놀랍게도 엄마가 TV를 보고 연락해왔다고 한다.
-- 그 친엄마는 TV에 나온 사람이 자기 자식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 (권 소장) 그 입양인이 TV에서 자기 사연을 소개했는데,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식인 것 같아 연락했다고 한다.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금방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생김새가 닮았기 때문이다.

2025년 4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해외 입양인과 국내외 단체 관계자들이 해외 입양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황광모 기자]
-- 해외 입양인이 어렵게 친생 부모를 찾았는데 친생부모가 만남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 (배 대표) 40대 프랑스 입양인이 친생부모를 찾는 데 성공했다.다행히 아빠가 입양기관에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이 입양인은 아버지를 만났고 지금도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그런데 엄마는 만남을 기피하는 듯했다.
-- 친생 엄마는 왜 그랬나.
▲ (배 대표) 엄마는 딸을 버렸다는 자책감에서 만남을 피한 듯하다.당시에 엄마와 아빠는 결혼해 살다가 아기를 낳았는데,어머니가 집에서 나갔다고 한다.가출인 셈이다.아버지는 홀로 아이를 키우다가 힘들어서 입양을 결정했다고 한다.

한국을 찾은 한 해외 입양인이 배진시 대표의 도움을 받고 돌아갈 때 남겨놓은 감사 메시지
-- 결국 이 딸은 엄마를 만나지 못했나.
▲ (배 대표) 그렇지는 않다.딸은 2005년 입양기관 사무실에서 15분간 친엄마를 본 적이 있다.딸은 2010년에 다시 한국에 와서 친엄마한테 연락했다.엄마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다만,서울 동대문에 있는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만 보자고 했다.실제로 그렇게 했다.딸은 엄마를 자세히 못 보고 실루엣만 봤다고 했다.동대문 지역에는 대형 상가도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다만,엄마가 자기를 응시하는 듯하다가 몸을 돌리는 옆모습을 봤다고 한다
-- 부모가 자식을 버렸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을 텐데.
▲ (권 소장) 1960년대,1970년대에는 가난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키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그 이후에는 미혼모여서 아이를 입양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아무튼 원가족과의 분리는 입양인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해외입양인의 고통,정부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이승훈 국장(왼쪽),배진시 대표(가운데),권희정 소장(오른쪽) [진성철 기자 촬영]](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AKR20250511013700546_05_i_P4_20250512062116724.jpg?type=w860)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이승훈 국장(왼쪽),배진시 대표(가운데),권희정 소장(오른쪽)
[진성철 기자 촬영]
-- 자식이 찾아왔을 때 아예 그런 자식을 낳은 적이 없다고 하는 부모도 있다고 하던데.
▲ (배 대표) 40대 초반의 유럽 입양인이 있다.그녀는 사립탐정의 도움으로 친아빠의 소재지를 찾았다.그런데 친아빠를 직접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고민 끝에 사립탐정은 업무차 방문하는 사람으로,딸은 업무 보조자로 가장했다.이들은 지방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딸은 옆에 가만히 앉아서 사립탐정과 친아빠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대화를 마치고 사립탐정은 딸에게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하고는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방금 옆에 앉아있었던 여성은 당신의 딸이라고 했다.
-- 아버지 반응은 어떠했나.
▲ (배 대표) 그는 화를 냈다.본인은 자식을 입양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 딸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 (배 대표) 딸은 1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면에서는 가만히 있었다.그런데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자기 아빠가 맞다고 확신한 듯했다.
-- 그 후에 부녀는 다시 상봉했나.
▲ (배 대표) 아빠에게 당분간 시간을 좀 주기로 했다고 한다.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연구소장 [윤근영 기자 촬영]](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AKR20250511013700546_06_i_P4_20250512062116729.jpg?type=w860)
[윤근영 기자 촬영]
-- 이런 비극에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했는데.
▲ (이 국장) 정부는 입양기관에 허가를 내준 주체다.정부는 입양기관에 대한 관리와 감독 책임도 갖고 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게다가 한국의 아기와 아동을 해외로 보내는 것에 대한 허가도 내줬다.정부 책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 정부가 직접적으로 해외 입양에 개입했다는 근거가 있나.
▲ (권 소장) 박정희 정부 때 북한으로부터 '남한은 아기를 팔아 돈을 번다'는 비판을 계속 받았다.이에 정부는 해외 입양 쿼터제를 도입해서 단계별로 해외 입양을 줄여나가고 1985년에는 전면 금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하지만 1980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며 이 계획은 폐기됐다.당시 국무회의 자료를 보면 해외 입양을 전면 개방한다는 기록이 있다.또 언론을 통해 해외 입양 대상국 확대 계획을 발표기도 했다.1980년대 해외 입양의 급증은 정부의 이런 친 입양 정책이 있기에 가능했다.
-- 이제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 (권 소장) 최근에 행정자치부 산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외 입양과 관련해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한 4대 입양기관의 불법행위가 있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해외입양인에 대한 피해보상,부모 찾기 지원 등도 절실하다.
(인터뷰 3차 기사 끝)
![장성탄 씨와 딸 엘로이즈 [부인 로리안 씨 제공]](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12/AKR20250511013700546_07_i_P4_20250512062116734.jpg?type=w860)
[부인 로리안 씨 제공]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국가가 보낸 입양아 죽어가는데…국가 수수방관,말이 되나요"(2025년 3월17일 송고)
마티유 성탄 푸코(38·한국이름 장성탄)씨는 1986년 12월 한국 익산시(당시 이리시)에서 태어났고.4개월 만에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로 입양됐다.장씨는 잠 못 자는 질병을 앓고 있다.
부인 로리안 시몬 씨는 이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효율적 치료를 위해서는 남편 친부모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그렇지만 한국의 아동권리보장원은 입양특례법상 친부모의 동의 없이는 인적 정보를 줄 수 없다고 했다.인적정보는 전화번호,주소지 등을 말한다.
국가가 입양 보냈는데,그 아이가 성장해서 죽어가고 있다.국가가 이걸 방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좀 더 적극적으로 입양인의 입장에서 법률을 해석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부모의 비밀보다는 입양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쪽으로 법률이 바뀌고 있다.1975년 영국은 입양아가 18세가 되면 자기 출생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아동법에 명시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주마다 다른데,입양아가 원하면 친생부모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 더 많아졌다.유엔(UN)도 친생부모의 삶보다는 아동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천명하고 있다.한국도 입양특례 법령을 비롯한 관련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입양인 장성탄 씨의 부인 로리안 시몬 씨의 편지내용>
[삶] "한국서 입양온 남편 생명 위험…제발 우리 가족 도와주세요"(2025년 3월17일 송고)
저의 남편 장성탄(Jang Sung-Tan)은 1987년 4월에 프랑스로 입양됐습니다.남편은 최대 21일 연속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 남편은 혼수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때때로 의식을 잃은 듯한 상태(코마 상태)를 보입니다.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환각(후각 및 청각적 환각),망상 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생물학적 부모의 유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이 병이 유전적 원인인지 더 정확히 조사할 수 있습니다.가족력 여부를 확인하고,보다 신속하게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또 해당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다면 병의 진행을 늦추는 임상 시험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우리는 단순한 삶을 꿈꿨습니다.자연 속의 작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예술,음악,스포츠를 즐기며 조용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남편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하지만 지금,우리의 꿈은 완전히 부서졌습니다.남편은 저와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서양 양아빠,한국자매 6년간 성폭행…일부러 뚱뚱해진 소녀"(2025년 3월31일 송고)
해외로 입양 간 아동은 정서적 학대,신체적 학대를 겪는 경우가 있다.양부모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인 3자매가 있었다.중산층의 유럽 가정으로 입양을 갔다.첫째 아이가 13살이 되자 양아빠는 성폭행을 시작했다.둘째 아이가 성장해서 그 나이가 되자 양아빠는 둘째도 성폭행했다.둘째 아이는 "내가 못생겨지면 아빠가 덜 건드릴 것"이라면서 매일 초콜릿 크림 1∼2통씩 먹었다.
양아빠는 그 지역에서 신망 있는 전문직 종사자였고,동양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입양해 잘 키운 사람으로 알려졌다.그는 집안 행사 때 자기가 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여러 사람 앞에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어떤 아이는 미국에 입양 가자마자 오줌을 쌌다고 한다.적응이 힘들었기 때문이다.목사였던 양아빠는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훈육이 덜 됐기 때문이라면서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고 한다.
1970년대에 3살 때 미국으로 입양 간 사람이 있다.양부모는 입양 6개월 만에 자기들의 아기를 낳았는데,그때부터 이 입양아는 한 달에 한 번씩 집에서 쫓겨났고,혁대로 맞기도 했다고 한다.양부모가 집세를 내라고 해서 중학교 때부터는 햄버거 가게 점원,주방 보조일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정부 통계로는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해외로 입양 간 아동은 2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그렇지만 입양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 대 개인으로 아이를 주고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이런 경우는 입양통계로 잡히지 않는다.1953년 이후 해외로 보내진 입양인은 35만∼40만명에 이른다는 의견도 있다.

왼쪽부터 이승훈 몽테뉴해외입양연대 사무국장,배진시 이 단체 대표,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
<인터뷰이 소개>
인터뷰에 참여한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MOAA) 대표는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철학 박사학위를 위해 2005년 프랑스에 유학하러 갔는데,그곳의 대학교 등에서 한글을 가르치다 많은 한국 출신 입양인을 만나게 됐다.귀국 후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입양인들을 돕기 시작했다.부모를 찾는 해외 입양인들을 위해 지방 곳곳을 함께 다니며 통역을 해주는 등 도움을 많이 줬다.작년 1월에는 몽테뉴해와입양연대(MOAA)를 창립해 입양인에 대한 도움을 확대하고 있다.그는 몽테뉴인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집필과 강연도 하고 있다.
이승훈 MOAA 사무국장은 약대를 졸업한 후에 한약국을 운영하는 시민이다.입양인들이 한국에 오면 직접 승합차를 운전해 이동시켜주고,특정 지역 방문과 행정기관 서류 처리 등을 돕고 있다.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 소장은 2008년부터 5년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다.그는 미혼모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작년에 현재의 연구소를 창립했다.미혼모 문제에 대해 18년간 연구하고 글을 쓰다 보니 입양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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