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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첫 시작 후 12년 만…지역 산악인 31명 참여
2015년 에베레스트 네팔 대지진 땐 인명구조 적극 나서기도

"안개로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사방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어요.푸모리,눕체 등 에베레스트 주변 산들에 달려 있던 얼음과 눈,바윗덩이들이 떨어지는 소리였죠.울부짖는 소리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득 메웠습니다.죽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구미 산악인 6명이 머물고 있었다.장헌무 원정대장은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당시 베이스캠프에는 거의 1,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머물고 있었다.등반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기 위한 셰르파와 포터들이 우글거렸다.

그래서 새가 살 정도다.이곳은 원래 눈과 바위밖에 없는 빙하지대라 새가 살지 않는다.그런데 하도 사람들이 많고,음식물 쓰레기도 많이 발생하자 이를 먹으려고 새들이 찾아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4시30분~5시가 되면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가 새소리입니다.여명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깹니다.텐트가 방음이 안 되니까 소리가 엄청 커요.그런데 그 날은 새벽 5시가 넘어서도 고요했죠."

이상한 기분을 느낀 장 대장은 대원들에게도 이 위화감을 전하며 아침을 보냈다.베이스캠프 아래에 있던 운해는 오전 내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베이스캠프를 채웠다.가시거리는 약 30m.그리고 오전 11시가 됐을 때,사단이 났다.3만 명의 사상자,수백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던 2015년 네팔 대지진이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흔들림이었어요.워낙 크게 흔들리니까 본능적으로 '아 지진이 났구나'라고 생각하고 일단 텐트 밖으로 뛰어나왔죠.주변 산들에서 눈사태가 났는지 온갖 굉음들이 360°에서 들려왔어요.그런데 안개 속이라 도통 뭐가 보이지 않아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죠.그래서 더 공포스러웠어요."

대원들은 물론 셰르파들까지 모두 텐트 밖으로 뛰쳐나와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몰랐다.한 번 큰 지진이 난 이후에도 여진이 계속됐다.그러다 어느 순간 살짝 잦아든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대원들 하나하나 말을 걸며 안위를 살피는데 그때 짙은 운해 너머로 느닷없이 거대한 실루엣이 다가든다.체감 상 63빌딩만 한 크기다.하늘 끝까지 치솟은 채 원정대를 덮치는 건 눈사태가 만들어 낸 충격파.이른바 눈사태 구름이다.

"모두 땅바닥에 엎드려서 버텼습니다.세찬 바람에 눈과 먼지,자갈들이 섞여서 온 몸을 때렸어요.그게 얼마나 강한지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죠.엎드려서 그저 헉헉거리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죠.그러다 거짓말처럼 싹 멈추더라고요.다 지나간 거죠.온몸이 밀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하얘졌습니다.눈,귓구멍은 물론 우모복 안주머니까지 눈이 가득 찼어요."

텐트는 다 부서진 상태.주변 사태 파악이 필요했다.구미 원정대 텐트는 베이스캠프에서도 가장 상단에 있었다.아래쪽으로 내려가는데 1,000명 넘게 있던 사람들이 한데 섞여 아비규환이다.이미 재빠른 사람들은 짐을 챙겨 산 밑으로 도망가고 있다.

장 대장은 구미원정대 셰르파들의 우두머리인 시다와 둘이서 그 현장으로 갔다.그리고 구조 활동을 펼쳤다.머리를 다친 사람에게 붕대를 감아 주기도 했고,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은 침낭을 경건하게 덮어 줬다.사망한 사람만 19명,부상자는 수십여 명에 달했다.

"천운으로 우리는 모두 멀쩡했어요.그러나 상당수의 장비가 파손돼 등반을 계속할 상황은 아니어서 빠르게 짐을 챙겨 마을로 내려갔죠.피란민처럼 걸었습니다.가장 가까운 고락셉은 이미 먼저 도망간 사람들로 가득해 그 아래 로부체까지 갔죠.거기 로지엔 자리가 있었어요."

그렇다고 편한 잠자리가 되어주진 못했다.여진이 수백 번은 족히 더 왔다.너무 피곤해서 눈을 감고 싶은데 땅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그대로 집이 무너지며 파묻혀 죽을 것 같았다.그래서 실제로 자다가 2~3번은 여진에 놀라 집 밖으로 튀어나가기도 했다.그렇게 힘든 밤을 보냈고,구미 원정대원들은 모두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대로 등반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에베레스트 원정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7대륙 최고봉 완등 릴레이에 뜬금없이 제동이 걸린 셈이다.하필이면 원정비용이 적은 대상지도 아니고 에베레스트다.게다가 물론 그땐 아무도 몰랐지만 곧 코로나란 질병이 발생해 전 세계의 문이 잠길 운명이었다.

장기 등반 프로젝트는 이렇게 한 번 삐걱거리며 그대로 사장되곤 한다.실제로 지금껏 지자체는 물론 개인,학교,단체 등의 많은 7대륙 최고봉 완등 프로젝트들이 그렇게 조용히 묻히곤 했다.

장 대장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2000년에 처음 에베레스트 원정에 참여했었는데 본래 정상 공격조에 속했고 컨디션도 쾌조였으나 탈진한 선배 한 명을 돌보라는 지시를 받아 결국 눈물을 머금고 하산해야 했다.그리고 그 이후 십 수 년간 해외고산등반 최전선에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베레스트 정상과는 연을 맺지 못했다.

구미 산꾼들의 대장정도 그렇게 막을 내릴 것만 같았다.

네팔 대지진 제외하면 등정률 '100%'

하지만 구미 산꾼들은 포기를 몰랐다.장 대장은 "여기가 경상도의 진수"라며 "사람들이 포기를 모르고 정신력이 강하다"고 봤다.김장호 구미시장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겠다는 대원들의 도전정신과 집념이 굉장했다"고 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흐른 지난 2024년 12월 23일,미도리 클락 호텔 카지노구미 산악인들은 마지막 남극 빈슨 매시프 정상에 오르면서 기어코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성공하게 된다.지금껏 여러 지자체들이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해 보겠다고 나선 적이 있으나 이를 끝까지 성공해 낸 것은 구미가 최초다.구미 산악인들의 도전정신과 결속력을 제대로 보여 준 것.

김 시장은 "이번 원정으로 전국에 불굴의 도전정신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지친 구미 시민들에게 이번 성공 소식이 위안도 되어줄 것이며 한편으론 자긍심도 높여 줄 것"이라고 전했다.

구미 원정대의 7대륙 최고봉 완등 릴레이는 2015년 에베레스트 대지진 때를 제외하곤 모두 한 번의 시도 만에 성공했을 정도로 완벽했다.원래 목표는 1년에 하나씩 7년 동안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자는 것이었다.

2012년 엘브루스,2013년 킬리만자로,2014년 매킨리를 그렇게 바로바로 등정했다.2015년에 주춤했지만 2016년에 그래서 아콩카과와 칼스텐츠를 연달아 등정했고,2017년에 에베레스트에 재도전해 등정했다.그리곤 남극 빈슨 매시프만 남겨뒀던 것.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기약 없이 원정을 뒤로 미루고,또 미뤄야만 했다.

"첫 시작은 2008년부터입니다.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해 결성된 '예스구미' 원정대가 초오유를 올랐었어요.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예스구미 조형탑'을 정상에 매립했었죠.이어 2011년에 다음 시 승격 40주년인 2018년까지 한 해에 하나씩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해 이를 기념하자는 계획이 나왔죠."

총 8번의 원정을 31명의 구미 산꾼들이 나눠 참여했다.장 대장은 모든 원정에 참여했고,강경숙 구미시 산악구조대장과 백종득 대원 등이 그 다음으로 많은 5번이다.이렇게 대원들이 자주 바뀌는 가운데서도 큰 사고 없이,높은 완등률을 기록한 것이 경이롭다.장 대장은 먼저 대원들에게 공을 돌린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그래도 대장이라고 잘 따라줬어요.그래서 형제같이 등반했죠.또 강경숙 구조대장이 많이 도와줬어요.디테일한 부분들을 잘 잡아 주셨고,산에 가고자 하는 전투적인 의지력과 마음이 대단해서 절로 동화됐죠.

저는 계획만 짰습니다.등반속도와 산소 양,예상되는 지체 등을 계산 범위 안에 다 넣었죠.그렇게 산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대원들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와 눈에 보이는 컨디션 등을 총합하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집니다.등반선을 따라 정상까지 오르는 그림이면 출발,아니면 안 가죠.그게 잘 맞아 떨어져서 사고 없이 잘 등정한 것 같아요."

한편 장 대장이 7대륙 최고봉 완등을 전개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정상 등정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는 것'이라고 했다.2000년,정상에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막내라 당한 설움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정확한 데이터를 담은 조언만 해줬다.현재 그런 컨디션이면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식이다.그렇게 모든 대원에게 기회를 줬다.그 기회를 잡은 사람도 있고,포기한 사람도 있다.물론 포기를 했더라도,본인이 납득하고 판단한 것이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후회는 없어도 아쉬움은 남은 등반이 여럿 있다.매킨리가 대표적이다.원정기간을 25일 정도 잡고 갔는데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다.장 대장은 "자고 일어나면 눈이 1m 50cm가 와 있어 텐트가 눈에 잠긴 채로 기상하곤 했다"고 전했다.

계속 지연되다가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출발하기까지 고작 닷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됐다.장 대장 포함 5명의 대원들은 결정을 해야 했다.일단 가장 좋은 건 비행기편을 미루는 것.하지만 다들 생업이 있었다.회사에 휴가를 내고 온 대원도 많았다.살펴보니 2명은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제안했어요.먼저 날씨에 상관없이 귀국해야 하는 2명은 내일 무조건 정상공격을 하고,성공하면 모두 즉시 귀국하자고 했죠.만약 성공 못 하면 그 다음날부터 나머지 3명이 유지를 이어받아 등반하고,귀국파 2명은 그냥 먼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걸로 정리가 됐습니다."

다음날,귀국파인 2명이 정상을 향했다.하지만 역시 악천후에 막혔다.장 대장은 하산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며 그 다음날을 맞이했다.그런데 그 하루 차이로 운명이 갈렸다.나머지 3명은 정상에 무탈하게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장 대장은 "하루만 더 있었어도 모두가 함께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자기 치적도 아닌데'…선뜻 나선 두 조력자

한편 구미가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성공한 것엔 숨은 조력자 두 명의 공이 크다고 한다.한 명은 현 구미산악연맹 최병식 회장.그가 당선됐을 땐 코로나가 4~5년의 세월을 지워버린 탓에 연맹 내부에서 7대륙 최고봉 완등 릴레이를 추진하던 이들이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이었다.당연히 그도 이에 대해 잘 몰랐다.

이런 장기 프로젝트는 이럴 때 유야무야 무산된다.전임자 흔적 지우기라긴 과하지만 본인이 벌인 일도 아닌데 나서서 노력할 의무는 없다.장 대장은 어려운 발걸음으로 최 회장을 만나 프로젝트에 대해 말했다.그러자 그는 단번에 "그건 우리 구미가 꼭 완등을 해야 한다"며 "필요한 것은 다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최 회장은 김장호 구미시장을 찾아갔다.김 시장도 최 회장과 마찬가지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주인공도 아니고,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하지만 그도 "구미가 시작한 도전은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했다.김 시장은 프로젝트를 다가오는 5월 27일 닷새간 열리는 '2025구미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와 겹쳐봤다.

"구미시의 전국 최초 7대륙 최고봉 완등 프로젝트는 기초지자체 최초로 개최하는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유치 과정과 꼭 닮아 있습니다.구미시는 대회 유치 경쟁을 인구 500만의 거대 도시 중국 샤먼과 벌여야 했습니다.'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지만 열세를 뒤집고 인프라,위기상황 대응능력을 내세워 유치를 확정지을 수 있었습니다.'포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과 일맥상통인 셈이죠."

김 시장은 "구미시민들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 모든 대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뜻하지 않게 프로젝트가 멈춘 상황에서도 계속 도전해 기어코 완등한 열정을 언제나 응원한다"고 전했다.장 대장은 "잘 따라와 준 31명의 대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전한다"며 "그 외에도 본국에서 원정 추진을 도와준 모든 이들과 현지에서 땀 흘린 셰르파,가이드,매니저들에게도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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