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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석열 퇴진집회 프로 자봉러 김나영님을 만나다 ▲ 지난 4월 24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김나영(31)씨를 만났다.그녀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주최한 집회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한,일명‘프로 자봉러’다.인파관리와 질서유지를 비롯해 안전한 집회를 만들기 위해 애쓴 그녀의 감상을 들어보았다.ⓒ 강홍구 
"웃긴 비유이긴 한데 제가 인천에서 퇴근해서 계속 집회에 출근하고,서울을 오갔던 게 만화 속 마법소녀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평범한 직장생활과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온라인,집회라는 다른 세계가 공존했다고 해야 할까요?"
나영씨는 지난 3월에 특히 바빴다.'내란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씨의 기묘한 석방이후 평일집회가 매일 이어졌다.퇴근하고 경복궁역에 도착하면 저녁 7시반.집회도 중반부를 넘어가고 행진을 준비하는 시점이었다.
그녀도 함께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뛰어갔다.그 순간에도 손은 바빴다.투쟁띠를 꺼내고 응원봉을 챙겼다.그렇게 김나영 대리는 만화 속에 등장하는 마법소녀처럼 자원봉사자로 변신했다.
지난 4월 24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김나영(31)씨를 만났다.그녀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주최한 집회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한,일명 '프로 자봉러'다.인파관리와 질서유지를 비롯해 안전한 집회를 만들기 위해 애쓴 그녀의 감상을 들어보았다.
정보라 작가와 작은 관심
"약간 추운 바닷물에 뛰어들 때요.이거 뛰어들어도 되나 좀 무서운데 하다가 딱 뛰어들고 오히려 시원하다 느끼는 감정처럼,어떻게 보면 하나의 선을 넘었다는 생각도 들어요.한 발 내디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던 과정이었죠."
그녀가 집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정보라 작가의 책 한 권이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유명작가가 왜 일종의 집회 참여기를 책으로 냈을까 궁금함이 앞섰다.
"이런 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거에 삶을 바치는 걸까,어떻게 일상생활을 이렇게 내려놓으면서도 계속 그 현장으로 가실 수 있는 걸까?거기에 대한 답은 아직 안 나왔고 답을 좀 얻어가는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며 돌아온 감정은 죄책감이었다.사람이 나이를 먹고 안정감을 갖게 되면 몸이 무거워진다는데,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일조차 망설이게 되는 것 같았다.1m만 가면 되는데 못 가겠다고 말했던 것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그녀는 외국에서 대학교를 다녔고,코로나19의 대유행 직전에 귀국했다.불안정했던 유학생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은 세상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현실을 자각하는 계기였다.여러 현안들에 대해,관심을 살짝 열기는 했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인 나영씨는 늘 바쁨의 연속이었다.여유도 없었고 직접 행동에 나선다는 게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상대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주변 지인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그래서 번역을 비롯해 할 수 있는 역할들로 기여하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의 생각은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에 송두리째 바뀌었다.이제 서야 돌아보면,일상이라는 변명에 안주했던 오만한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길었던 내란의 밤,말 카지노그리고 죄책감
▲ 지난 4월 24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김나영(31)씨를 만났다.12월 7일 나영씨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김나영 
"그날 밤 여의도에 안 간 것에 대해서 근본적인 죄책감이 있어요.가서 뭐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마음보다,정말 갔어야 했는데."
지금도 그녀는 그날 밤,당연히 여의도에 있었을 사람으로 회자된다.온라인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하지만 그녀도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외국에 계셨던 부모님을 챙겨야 했다.새벽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잠이 들었다.그래서 그날은 마음 한 켠의 빚으로 남았다.
이는 집회에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2차 계엄에 대한 우려가 횡행하던 6일,금요일에 반차를 내고 의료상자를 챙겨서 무작정 광장으로 갔다.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그 생각밖에 안 들었다.초과근무로 인한 보상휴가도 이후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과감하게 털어버렸다.
잊을 수 없는 광장의 기억들
그녀는 특별히 2024년 12월 7일 여의도 주말집회의 상황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국회에서 발의된 탄핵소추안에 대한 투표가 여당의원들의 집단 퇴장으로 인해 불성립된 날이었다.그러자 동시다발적으로 구호가 터져 나왔다.
"탄핵,탄핵,탄핵"
"투표해,투표해,투표해"
"돌아와,돌아와,돌아와"
콘서트장에서 주로 나오던 "앵콜"과 "울지마"의 비트를 살짝 바꾼 그들의 함성이 국회 앞에서 파도처럼 흘러다녔다.그때가 '이 광장은 내 또래가 대다수'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 뭉클했던 순간이었다.
3월 15일은 마음이 쓰라린 날로 기억했다.거통고(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의 철탑 고공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 때문이었다.이들은 한화오션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단체교섭 결렬 이후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나영씨도 그와 일면식은 없었지만,남태령과 다양한 현장에서 김 지회장이 입고 있던 조끼가 낯이 익었기에 참담한 심경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 지난 4월 24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김나영(31)씨를 만났다.4월 4일 철야집회에서 나영씨가 거리농성을 하고 있다.ⓒ 김나영 
헌법재판소의 파면선고가 있던 4월 4일도 결코 잊을 수 없던 순간이다.
나영씨도 전날 철야를 하며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아침 6시 12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철야집회를 주관했던 민주노총의 기상음악이었다.고요한 아침이었다.해는 천천히 뜨고 안개는 자욱했다.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좁은 안국동의 집회장소로 몰리는 인파와 일부 시민들의 돌발행동으로 스트레스도 몰려왔다.그 사이 결정문이 낭독되기 시작했다.
22분이 지나고 주문이 울렸다.그리고 직후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흘러나왔다.노래의 첫 8마디는 가사가 없다.찰나의 순간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그러다가 나영씨는 펑펑 울었다.끝까지 고개를 못 들었다.
"그제야 우리가 살았다는 게 와닿은 것 같아요.만약 파면선고가 안 났다면…."
그 '살았다'라는 단어와 감정을 외국의 친구들에게도 설명하려 해봤지만 세이프(Safe),이제 안전하다는 말로밖에 번역이 안 되었다고 말했다.얼마나 많은 위협과 불안 속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빼곡한 일기장과 연대의 이유
▲ 지난 4월 24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김나영(31)씨를 만났다.빼곡한 그녀의 일기장 ⓒ 강홍구 
나영씨는 일기를 좋아한다.그녀의 일기장에는 지난 네달의 순간과 감정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연대를 눈송이에 비유한 대목도 있었다.
"겨울에 눈이 내릴 때는 아름답잖아요.눈은 쉽게 녹고 사라져서 뭔가 덧없는 것도 같아요.땅도 질퍽해지지만,구조대 토토다시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어떻게든 자국은 남잖아요.연대도 그런 과정 아닐까요?사람도 어떤 마음에 남은 자국이 안 변할 것 같아요.영혼과 마음에 남아 있는 자국이."
내란세력에 대한 처벌과 함께 다양한 연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그녀는 사회에 누적된 불안과 무력감을 언급했다.
"계속 쌓여왔던 사회에 대한 불안함과 불만이 결국에 뛰쳐나갈 사람들을 만든 게 아닐까요.80년대 민주화와는 다른 양상이긴 하지만 각자 경험했던 차별들이 쌓이고 쌓여서,계엄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고속도로가 생겨버린 거죠."
투쟁현장과 거리가 있던 그녀의 시각에서도,윤석열 정부 3년의 무기력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설명이었다.노동자들의 투쟁,소수자들의 투쟁이 많았는데 폭력과 차별에 노출되는 상황이 지속되어 온 게 현실이었다.나영씨는 아닌 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점에서,광장의 연대가 속이 시원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런 연대는 누적된 무기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부딪히는 과정이었을지 모른다.다양한 깃발들을 들고 나온 기수단과,느슨하지만 넓은 연대를 보여준 시민들이 함께 공유했던 감정 아니었을까.나영씨는 차분하게 회상했다.
현장을 나옴으로써 느껴지는 작은 해소감을 타고 연대의 물결은 커져 갔다.나영씨는 떠올랐던 감정들을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무언가에 저항해본 감각,다행히 상흔은 없고 흉터도 없지만 일단은 맨몸으로 한 번 시스템을 덤벼본 자국은 영혼과 마음에 남았고 계속 두 발로 단단하게 딛고 앞으로 똑바로 볼 수 있지 않을까,약간 이런 경험이 생긴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의외의 발견과 춤
▲ 지난 4월 24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김나영(31)씨를 만났다.김나영씨가 집회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춤을 추고 있다.ⓒ 송혜영 
의외의 발견도 있었다.나영씨는 요즘 들어 춤을 추게 되었다.
원래 흥이 많기는 했지만 춤을 즐기지는 않았고 살짝 리듬을 타는 '콩콩콩' 정도였다.동십자각에서 진행한 주말집회 당시,행진을 출발하는 시민들을 안내하며 자원봉사자들이 좌우로 서 있던 상황이었다.행진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응원봉을 흔드니 시민들이 호응해주었다고 했다.배웅하는 느낌으로 나영씨도 계속 응원봉을 흔들다가 흥도 나니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파면선고가 있던 5일 주말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차올랐다.분명 기쁜일인데 더 이상 이 광장과 깃발들을 이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걸까.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그래서 더 열심히 춤을 추었다.안무를 배워 본 적이 없어서 곁에 있던 이들을 따라했다.막춤에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춤이라는 게 사람이 본인을 표현하는 근본적인 방식이잖아요.이 몸짓이라는 게 그러니까 춤을 잘 추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순간 저를 그냥 표출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이번 기회에 좀 더 배워보려고요"
일상의 복귀보다는 새로운 길을 향해
▲ 지난 4월 24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김나영(31)씨를 만났다.나영씨의 집회 굿즈들.ⓒ 김나영 
"저는 일상으로의 시차적응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만화 속 마법소녀의 변신처럼 세계를 넘나들다 돌아오는 주인공이 다시 현실 세계에 적응을 한다는 설정은 이해가 안 갔어요."
나영씨는 이제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새로운 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문학이나 이야기의 인물들도 돌이킬 수 없음을 경험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잖아요?지난 네 달 동안 돌이킬 수 없는 경험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제는 일상으로의 시차적응을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앞으로의 지속가능한 방향을 어떻게 맞춰갈지 고민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모든 사람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중략) 그건 수많은 1인칭들을 경험한 경의의 순간이었습니다."
나영씨는 마지막으로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을 인용하며 작은 바람을 남겼다.
"다양성을 계속 얘기하잖아요.우리 사회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억누르는 것 같아요.이미 다양한 삶들이 존재하고 그게 잘못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만약 개헌을 한다면,이제는 각자의 1인칭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강홍구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