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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의 첫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이 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강복의 발코니’에서 교황으로서 군중에게 첫인사를 하고 있다.[로이터]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새로운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미국 출신의 미국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선출됐다.미국 출신으로선 처음이고,아메리카 대륙 출신으로선 전임자인 프란치스코에 이어 연달아 맡게 되며 새로운 역사가 쓰인 것이다.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그가 전쟁,비트코인 etf극우 정치 등 세계적 과제에 어떤 목소리를 내고,보수와 개혁으로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묶을지 주목된다.

133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은 8일(현지시간) 제267대 교황으로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선출했다.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이틀 만이자,네 번째 투표만의 결정이다.또 전임자인 프란치스코가 선종한 지 17일 만에 이뤄졌다.

그는 교황 즉위명을‘레오 14세’로 택했다.라틴어로‘사자’를 의미하는‘레오’는 강인함과 용기,리더십을 상징한다.

195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레오 14세 교황은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교황청립 안젤리쿰 대학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따고 1982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교황을 배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학과 별개로 펜실베이니아주 빌라노바대에서 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공부를 마친 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와 가까운 페루 북서부 추루카나스 교구에서 10년간 사목했다.

2001년부터 12년간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시에 따라 2014년 페루 북서부 치클라요 교구로 파견됐다.이 교구는 빈민가와 농촌 지역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미국 국정인 그는 페루 빈민가에서 사목 활동을 하기 위해 2015년 페루 시민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3년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교황청 라틴아메리카 위원회 위원장과 주교 선발 등 인사를 총괄하는 주교부 장관을 맡겼다.

미국 출신 교황의 탄생은 예상 밖의 결과다.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세속적’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사실 바티칸에선 미국인 출신 교황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어서다.그럼에도 레오 14세가 선출된 데에는 빈민가 등 변방에서 사목한 이력이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바티칸 소식통을 인용해 그는‘가장 미국적이지 않은’미국인이라고 표현했다.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신학적으로는 중도 성향이어서 교회 내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인물로 기대된다.

그는 주교 후보자 명단을 결정하는 투표단에 여성 3명을 처음으로 포함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조치를 주도했다.소외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교회에서 평신도들의 역할을 확장하려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력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보다는 중도적이고 신중한 스타일로,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다가 보수파와 충돌한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다른 길을 갈 것으로 전망된다.영국 BBC는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을 이어가면서도 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며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교계 안팎에서도 레오 14세는 보수파와 개혁파 중 한쪽 편에 서기보다 중재역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기대한다.영국 일간 가디언은 레오 14세가 침착하고 현실적인 스타일로 여러 분파 사이에서 중재에 능하기로 교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고 전했다.

레오 14세는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강복의 발코니’에서 교황으로서 군중에게 첫인사를 하며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La pace sia con tutti voi)”이라고 이탈리아어로 말했다.레오 14세 교황은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첫인사였다”며 자신의 평화 인사도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지만 이날 첫인사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만 말했다.

또한 레오 14세는 “대화와 만남을 통해 언제나 평화롭게 하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다리를 건설하자”고 말했다.그는 자신이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여러분을 위한 주교”라며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함께 걸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후 전 세계인에게 내리는 첫 사도적 축복인‘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전 세계에’를 라틴어로 하며 첫 일성을 마무리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선출 당시 너무 화려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교황의 전통적인 복장인 진홍색 모제타(어깨 망토)를 착용하고 등장했다.이는 전통으로의 회귀를 어느 정도 암시한 것이라고 AP는 해석했다.

새 교황명‘레오 14세’는 19세기 말 노동권과 사회 정의를 강조한 레오 13세 교황(재위 1878~1903)을 계승한다는 의미다.레오 13세는 회칙‘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새로운 사태)’을 통해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과 인간다운 노동 조건 보장,노동조합 설립 권리,사유재산 등을 인정하되‘공동선’을 위한 사회적 책임 등을 강조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레오 14세라는 교황명의 선택은 레오 13세의 회칙‘레룸 노바룸’으로 시작된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라며 “또한 인공지능(AI)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는지 교회가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한편 교황 즉위 미사는 일반적으로 선출 후 일주일 내 이뤄진다.레오 14세 교황은 9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들과 미사를 공동 집전하고,11일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발코니에서 첫 축복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12일에는 전 세계 언론인과 처음으로 공식 대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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