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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이주인권단체 활동가의 질문-어느 죽음들
가까운 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비통함은 어떻게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그리고 그 비통함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랍 이주여성들,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알리고 싶다
작년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우리 센터에서 운영하는‘와하’공간의 아랍 여성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행사를 하고 싶어했다.시리아,스페치아 대 밀란예멘,이집트,수단,팔레스타인계 요르단 국적의 9명의 여성들과 팀을 꾸려 여러 가지 의논을 한 끝에,와하 공간을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전쟁에 관한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서 처음으로 외부에 개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하마스(가자 지구에서 실권을 잡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가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열린 페스티벌과 마을을 습격한 것 관련한 생생한 영상이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었고,나 역시 그 영상들을 본 충격이 남아있던 상황이었다.모든 생명은 다 소중한 것이 아닌가,하마스의 급습으로 가족을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터뷰가 연일 언론을 통해 들려오고 있는 상황에서,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우리 와하 팀원들은 이 폭력을 바라보는 시간대를 넓히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폭력에 동원되는 힘의 크기에 대해서 자각할 것을 요구했다.결국,나는 그들의 인식과 감정에 완전히 동화됐다.이 사태를 바라보는 팀원들의 눈에 하마스의 습격은 전쟁의 서곡이 아니라,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폭력과 그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응 과정 속에 놓여져 있었다.
팀원들은 자신들의 SNS상에 공유되고 있는 사진과 그림들을 인화하자고 제안했다.그 중엔 나도 언젠가 본 적이 있던,탱크에 돌을 던지는 아이의 사진도 있었다.예전에는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장면인지도 모르고 무심코 봤던 사진이었다.팀원들은 그 사진이‘이스라엘은 탱크로 공격을 하지만,팔레스타인은 어린아이가 돌멩이로 맞서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그제서야 우리 팀원들이 결코 동등하지 않은 폭력의 크기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팀원들은 또한 테러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어린아이를 체포해서 성인이 되어서야 풀어주고,여성을 체포해서 고문하기도 한,그들의 체포 이전과 이후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인화하자고 했다.누군가를 체포하고,그들의 몸과 시간을 가둘 수 있는 공권력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갖고 있지 못한 힘이었다.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전쟁의 잔혹함,특히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사진들을 전시하는 것에 대한 거였다.팀원들은 전쟁의 폭력으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전달하고 싶어 했다.집단으로 이뤄지는 장례식의 비통한 분위기,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절규,마지막으로 아이의 얼굴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기도 같은 것이었다.
죽은 아동의 몸이 드러나는 적나라한 사진과 영상들도 있었기 때문에,이런 이미지들은 모아서 한 방에서 전시하고,문 앞에‘관람에 주의를 요함’이라는 문구를 붙여놓자고 제안했다.하지만 일부 팀원들은 엄연한 전쟁의 현실을 보여주는 건데 왜 선택적으로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사진 배치에 대한 회의 자리에는 내가 함께했지만,실제로 배치할 때는 함께 있지 못했는데,뒤늦게 와보니 결국은 모든 사진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
전시회를 하는 와중에,한 한국인 관람객이 어떤 사진에 대해 한국의 뉴스에도 보도된 AI 만들어진 조작된 사진이라고 일러주었다.한 아버지가 아이들을 구해내 등에 엎고 있는 이미지였다.당시에는 조작된 사진을 걸러내지 못한 것이 우리 전시회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폐허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팔레스타인들의 바람이 만들어낸 결과로,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가 끝나고 평가회의를 했는데,팀원들 모두가 아쉽게 느꼈던 부분이 있었다.막상 관람객들이 와서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팔레스타인계 팀원을 제외하고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해줄 만한 역사적 지식이 충분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그 경험은 이번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을 맞아,팔레스타인계 가자 지구가 고향인 여성에게서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가자 지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자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날,연사는 다시금 전쟁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다.1947년 이후(1947년 11월 유엔이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를 가결,이듬해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크바’(대재앙)라고 부르는 추방을 겪었고 75만명 이상 난민화되었다) 오늘날까지 되풀이된 피난의 역사,자신의 무너진 집,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굶주리는 아이들,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죽은 사촌,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숙모 이야기…
우리의 연사는 다시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 비통함이 세상에 알려지고 전달되기를 원했다.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길 바라냐는 질문에,그녀조차도 과연 해결이 될 수 있을까,이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상태가 지속될 거 같다는 씁쓸한 답변을 하면서도 말이다.
비통한 죽음…또다시 이주민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거대한 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과 죽음들에 대한 비통함.이 비통함은 우리의 인식과 마음을 어디까지 확산시킬 수 있을까.비통함의 확산은 왜 이렇게 더디고 또 어려울까.혹은 비통함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비통함을 나는 2018년 김포의 건설현장에서 법무부의 토끼몰이식 미등록 체류자 단속을 피하다가 추락하여 숨진 미얀마 출신 노동자 고(故) 딴저테이 씨 사건을 통해 느꼈다.당시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그나마 한국 사회에 사건을 알리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딴저테이 씨와 일상을 함께 했던,단속에서 살아남은 친구들이 그들의 불안한 체류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말하기’를 했던 덕분이었다.
또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하청업체 소속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고(故) 탄저테이 씨의 아버지 깜칫 씨가 만나면서,오늘 지금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국적이 다른 두 청년의 죽음이 개인적 사고가 아닌,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의 문제임을 알려주었다.
그들의 비통함을 옆에서 함께 했던 나 역시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하고,매번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등장할 때마다 그 날들로 소환된다.손을 덜덜 떨며 자신이 할 말을 메모하던 깜칫 씨,잊지 않겠노라고 외쳤던 그 날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 2024년 6월 25일,화성의 일차전지 제조공장 화재에서 23명의 노동자가 희생되었다.그 중 다수인 18명이 이주민이었다.또 15명이 여성이었다.한국의 노동 현장에서는 가장 위험한 곳에 언제든 교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외주/이주 노동자들이 배치된다.교체 가능하다고 여기기에,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교육은 불필요하다 여겼을 것이다.그래서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위험에 속수무책 노출된 채,화재가 났는데 바로 피신하지 못하고 탈출구도 알지 못해 집단 희생되었다.
비통함에 어떤 힘이 있을까.왜 비통함은 확산되지 않을까.왜 누군가는 명백해 보이는 이 비통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그런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만난 비통한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이번에 가자 지구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던 연사는 얼른 전쟁이 끝나서 가족과 함께 무너진 집을 복구해서 살고 싶다고 했다.고 딴저테이 씨의 동료들은 단속이 있던 그날 미처 다 먹지 못한 닭고기가 놓인 점심 밥상을 떠올렸다.
나는 아직 이 비통함을 통찰할 능력은 부족하다.어떤 때는 누군가의 비통함을 간과하기도 할 것이다.하지만 비통함을 기꺼이 전달하려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적어도 비통함은 쉽게 잊혀지지 않음을,스페치아 대 밀란언제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말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한다.
[필자 소개] 박정형.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현재는 아랍여성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위해 센터에서 만든‘오아시스 와하’의 공간지킴이 역할이 크다.이주민들이 처하는 어려움들을 상담하고 이주민들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면서,우리의 존재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쌓여갔다.그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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