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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이 넉 달째다.환자들은 가슴을 졸이고,간호사는 신규 채용이 중단됐다‘비상경영’에 들어간 병원에서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으로 내몰리는 건 의료기사와 청소 노동자들이다.
6월26일,가와사키 프론탈레 선수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32일째 되던 이날에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처음으로 대면했다.13시간 넘게 청문회가 이어지는 동안 누가,언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결정했는지를 두고 공방이 오갔지만 정작 의료 공백 상황을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지방의 한 국립대학교병원에서 신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한 60대 환자는 TV로 청문회를 지켜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말 그대로 우리는 새우다.새우가‘그만 싸우라’고 외쳐도 고래 귀에 들리기나 할까.등이 다 터져 죽어도 안 보일 텐데.”
이번 전공의 파업으로 회복할 수 없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주체는 의사도 정부도 아닌,환자다.청문회 당일 참고인으로서 짧은 발언권을 얻은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고 간곡하게 말했다.“환자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도‘환자를 위해서’라고 하고 의료계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것도‘환자를 위해서’라고 하는데,그 와중에 지금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안기종 대표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의료 파업이 일어날 경우 환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의사들이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응급실·중환자실·수술실·분만실·투석실 등 생사가 갈리는 중요한 곳에는 최소 의료 인력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2020년 의료 파업 때도 환자들이 피해를 봤다.그래서 지난 21대 국회 때 필수유지 의료 행위를 규정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그때 법이 통과되지 못해 이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안 대표와 환자들의 염원과 달리,해당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이번 22대 국회에 발의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환자를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간호사들도 지난 넉 달 동안 숨 돌릴 틈이 없었다.수도권 내 한 대학병원에서 7년째 일하는 한 간호사는 “의료 공백이 커지니까 지난 3월에 갑자기 PA(Physician Assistant,진료 지원 인력) 간호사 2715명을 증원한다고 발표해버리더니,가와사키 프론탈레 선수대한간호협회에 가서 80시간 교육 듣게 하고‘이제부터 PA니까 가서 전공의 역할을 대신하라’며 등을 떠밀었다.간호사가 없으면 병원이 안 돌아간다고 메르스 때도,코로나19 때도,의료 파업 때도 추켜세우지 않았나.그런데‘병원을 돌아가게 만드는’그런 역량 있는 간호사들에게 제대로 된 제도 속에서 전문성을 쌓아나갈 기회를 주기는커녕,누군가의 땜빵 취급만 하니 너무 모욕적이다.전공의들 자존심에 상처 난 건 알겠는데,그럼 우리 자존심은 누가 지켜주나”라고 말했다.
‘땜빵’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간호사들은 실제로 불법을 넘나들고 있다.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서 지난 4월24일부터 한 달간 113개 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응답한 의료기관의 62.3%가 대리 처방,59.1%가 대리 동의서 서명 행위,45.1%가 대리 시술·처치,24.7%가 대리 수술을 하고 있었다.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간호사,간호조무사,의료기사 등 다른 직종이 떠맡고 있는 것이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예비 간호사들도 진로가 막막해졌다.소위‘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라는 수도권 대형병원은 통상 6월 말인 이맘때면 내년에 입사할 간호사들의 채용 절차를 마무리한다.올해는 채용 공고 자체가 뜨지 않았다.지난해에 합격해서 올해 2~3월부터 첫 출근을 했어야 할 간호사들도 전공의 파업 시기와 맞물려 대기 발령 상태다.4개월 동안 지속된 전공의 파업이 2년치의 간호사 채용 일정을 꼬이게 만든 셈이다.
간호사들이 빅5나 상급종합병원이 아닌,전공의 파업 영향이 덜한 병원에 취업할 수는 없을까?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현실적으로는 어렵다.국내 상급종합병원 중 85%가 관행적으로‘대기 간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이를테면 빅5는 한 해에 신규 간호사를 200~300명씩 뽑아놓고 대기 발령을 낸다.강도 높은 업무에 지친 신입 간호사가 그만두면,대기 발령 중인 간호사를 불러 대체한다.대기발령제가 일종의 상시 인력 풀로 기능한다.대기 발령을 받은 간호사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부를 때까지 중소병원에서 몇 달 동안 일을 하다‘자리가 났으니 오라’는 연락을 받으면,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떠날 수밖에 없다.중소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질이나 간호사를 대하는 처우는 더욱 열악해지고,그럴수록 간호사들은 상급종합병원 출근에 매달리게 된다.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번 전공의 파업은 상급종합병원이 간호사를 묶어놓고 독식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을 뿐이다.가뜩이나 대기발령제 때문에 신규 간호사 채용 정체가 심했는데,2년 동안 취업 문이 닫혔으니 더욱 심해질 거다.정부가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간호대학(과)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장이 말했다.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 신규 간호사 최종 면접을 같은 기간 실시해 중복 합격을 막고,그만큼 대기 발령 인원을 줄이겠다’는 시범사업 방안을 내놓았다.하지만 간호계에서는‘중소병원 간호사 처우 개선 이야기는 쏙 빼놓고 간호사가 원하는 곳에 취업할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거냐’는 반발이 나왔다.한 달 뒤인 2월부터 전공의 파업이 시작되자 정부의 그 시범사업조차 무산됐다.
“택시 타면 미터기밖에 안 보인다”
병원 계약직 종사자들도 불안한 상황이다.임상병리·영상의학·재활의학 등 진료 지원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년 근무하고 다시 1년을 재계약한 뒤 정규직 전환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은데,지난 넉 달 사이에 계약기간이 만료된 직원들은 대부분 짐을 싸서 떠나야 했다.그들이 맡던 업무는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중됐다.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방사선사는 “병가나 육아휴직을 떠난 사람들의 자리를 채워주지 않고 있다.인원이 부족해 검사가 늦어지면 환자들에게 컴플레인을 받는데,그냥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임상병리사는 “이제 연장근무 수당조차 지급해주지 않는다.대신 탄력적으로 쉬면서 일하라는데 쉴 시간이 없다.병원은‘비상경영’이라면서 전공의·교수들과 중재에 나설 의지는 없고 우리만‘비상근무’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청소 노동자들은 월급마저 삭감됐다.수도권 대학병원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한 청소 노동자는 4월부터 강제로 월차를 쓰다가 6월부터는 월급 15만원이 깎였다.대신 날마다 30분 일찍 퇴근하지만,이튿날 그만큼 일찍 출근해야 한다.“우리가 일찍 퇴근한다고 사람들이 휴지를 적게 쓰나,가와사키 프론탈레 선수쓰레기를 덜 버리나.퇴근하기 전에 못 끝낸 일을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끝내려면 더 일찍 갈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 버스 첫차를 타고 출근했던 그는 이제 1만원씩 내고 택시를 탄다.더 빠른 첫차가 없어서다.208만원 받는 월급에서 15만원이 깎였다지만,매일 나가는 택시비 1만원을 고려하면 삭감 폭은 그보다 훨씬 크다.“그나마 친한 간호사에게 용기 내서 물어봐도 월급 깎였다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비상경영이라더니 그 부족한 돈을 긁어모을 데가 제일 하층에서 일하는 우리 주머니밖에 없었나 싶다.그 새벽에 평생 안 타본 택시를 타면 미터기밖에 안 보인다.”
의사가 없으면 병원이 안 돌아간다.하지만 의사만 있다고 병원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전공의 파업 넉 달이 지나고 있는 현재,병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부담과 고통을 견디고 있다.정부 관계자와 의료계 대표자,여야 의원들이 2000명 증원 근거와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두고 다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들은 진료 일정을 잡으며 마음을 졸이고,간호사와 의료기사들은 격무에 시달리고,청소 노동자들은 깎인 월급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택시요금을 떨리는 손으로 결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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